조선후기정치사상사연구
 
 도서분류 한국사
지은이 : 김준석
옮긴이
면 수 : 672
:  \33,000
출간일 : 2003/05/27
판 형 : 신A5
ISBN : 89-423-1070-2 9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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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주문권수 입력: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이 책은 본교의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고 김준석 교수의 유고집이다. 김 교수는 대학 학
부시절 홍이섭, 손보기, 이종영, 김용섭 선생 등 여러 스승으로부터 연세 국학의 학문적 전
통과 의미를 배운 이래 2002년 5월 작고할 때까지 오직 연세국학의 전통 위에서 올바른 한
국사학의 정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식민지시기 연희전문 국학의 선구자들이 조선후기의 실
학과 그 전통을 재발견하여 일제하 한국사회의 민족문제 해결을 모색하려던 학문적 자세를
견지했던 바와 같이, 한국사의 체계화를 통하여 우리 사회전반의 민주적 발전과 남북문제
를 학문적으로 녹여내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김 교수는 1980년대 초 한남대학
교 역사교육과 교수를 거쳐 1993년 모교인 연세대학교로 옮긴 뒤에도 학문연구에 정진하였
다.
김준석 교수는 오랫동안 조선후기의 실학사상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유교사상사를 정열적으
로 연구하였다. 실학사상의 정치적 의미를 깊이 천착하여, 주자학을 극복하고자 했던 조선
후기의 진보적 사상활동의 역사성을 체계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자연스럽게 김 교수의 학
문적 관심은 주자학의 역사적 의미를 밝히는 작업에 모아졌고, 모교에서 후학을 가르친 약
10년 동안 사회사상·정치사상으로서 주자학을 조선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연관시켜 밝히고
자 하였다. 그 일환으로 김 교수는 주자사상연구회를 조직하여 후학들과 함께 방대한 주자
의 글들을 꼼꼼히 읽으면서 주자사상을 역사학적인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기초를 다지고
자 했다. 그 결과 김 교수의 조선후기 사상사연구는 조선후기 사회변동에 대응하는 보수개
량과 진보개혁의 논리를 밝혀, 이 시기 사상사의 역사적 성격을 거시적으로 살필 수 있게
하였다.
이 유고집은 김 교수의 갑작스러운 작고 이후 이를 아쉬워하는 동료, 후배 교수들의 논의
과정을 통하여 세 권으로 기획되었고, 김 교수의 연세국학에 대한 사랑을 기려서 이를 연세
국학총서의 일부로 간행하기로 하였다. 제1권은 김 교수의 박사학위논문과 이를 보완하는
글 몇 편을 묶었는데, 여기에서는 조선후기 사회변동에 대응하는 國家再造論을 각 정파와
학파별로 나누어 계통적으로 살폈다. 제2권과 3권은 김 교수의 한국유학사·한국중세사상사
를 바라보는 문제의식, 현대적 관점이 투영된 글들을 담고 있으며, 중세사상사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특정 주제와 인물에 대한 사상사적 의의 그리고 유학에 관한 시론적인 관점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발간으로 우리 학계는 한국사·한국정치사상사 연구가 이룬 훌륭한 성과를 또 한번
확인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나아가, 이 책을 통해 한국사연구자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혼신의 열의를 다하며 한국사 이해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자 했던 김
교수의 학문적 깊이와 문제의식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이 고인이 남
긴 학문적 유업을 확인하고 이를 매개로 우리 역사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보람된 일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본인의 손으로 직접 정리하
지 못하고 동료 교수와 후학들이 체제를 갖추어 출간하게 되어 고인의 구상이 온전히 드러
나지 못할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김 교수의 한국사·국학 연구의 열정과 사랑은 고인이 세상을 떠난 뒤, 본 국학연구원의 "김
준석문고"로 오롯이 이전되었다. 김 교수의 유족들은 고인의 평생 손때 묻은 귀한 도서와
자료 6천 4백여 점을 국학연구원에 기증하여 국학을 연구하는 학자와 후학들이 늘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으며, 국학연구원에서는 이를 "김준석문고"로 정리해서 그 뜻을 기리고
있다. 문과대학의 동료로서 본인은 김 교수가 국학연구에 열정을 쏟았던 것을 지켜본 바 있
었고, 다시 국학연구원의 원장직을 맡아 그의 遺作을 간행하게 되니 여러 면에서 감회가 새
롭고 또 이를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
지금은 본 연구원이 국학 진흥의 활황기를 맞고 있는 때여서 모두들 신명이 나 국학연구발
표회를 꾸리고 있다. 이때 김 교수와 함께 일한다면 좀 더 내용을 알차게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더욱 진하게 남는다. 그러나 김준석 교수는 높은 하늘 위에서 굽어보며 오
늘 우리의 모습에 기뻐하리라 믿으면서 안위해 본다.
본서의 출간을 위해서 많은 분이 애를 쓰셨다. 사학과의 김도형, 방기중, 하일식, 도현철
교수는 이 글의 출판을 처음부터 기획하고 또 출판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하였고, 정호훈,
구만옥, 원재린 연구교수를 비롯한 김용흠, 정두영, 김정신 박사생 등 학과의 여러 제자들
은 원고 정리와 교정에 많은 공력을 기울였다. 또한 어려운 출판계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출
판을 맡아주고 훌륭한 책으로 완성되도록 정성을 다한 지식산업사에 감사드린다. 특히 김경
희 사장은 평소 국학진흥에 뜻을 두고 있었고, 이런 점에서 김 교수 생전에 저서를 간행하
기로 약속하였던 바 있었지만, 어려운 여러 사정도 돌아보지 않고 더 많은 정성을 들이고
또한 직접 교정까지 보면서 좋은 책으로 만들어 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2003년 5월
연세국학연구단장
국학연구원장 전 인 초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 서평문화 51집(간행물위원회 발간,2003년 9월) 중에서 =


김준석 교수는 연세대에서 주로 김용섭 교수의 지도를 받으면서 한남대에서 10년간¸ 연세
대에서 9년간 재직하며 실학과 주자학을 중심으로 조선후기 정치사상사를 연구하신 분이
다.
조선후기를 임진왜란 이후 피폐해진 나라로 보고¸ 이를 복구하려던 광해군도 인조반정으
로 밀려나고¸ 인조반정 이후 정권을 잡은 송시열 등 주자학자들이 반청(反淸)을 하다가 정
묘호란¸ 병자호란을 당하여 다시 피폐해지고¸ 효종대에는 무리하게 북벌론으로 복수설치
를 주장하다가 국가 재건에 실패하고¸ 현종대에는 예송(禮訟)으로 분열되어 나라가 붕괴
위기에 빠지고 있다고 보았다. 숙종 영조대에는 한원진 등이 송시열의 주자학을 고수하다
가 개혁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를 다시 재조(再造)
해보려고 했던 세력으로 남인계 허목¸ 유형원이나 소론계 박세당¸ 정제두를 들어 조선후
기 정치사상의 개혁파로 연구하였다.
이러한 방향에서 이전에 주자학과 실학자의 대립으로 보던 입장에서 한 단계 발전시켜¸ 주
자의 토지론을 긍정하여 지주제를 기반으로 한 예로부터 내려온 농업체제의 안정을 추구하
는 입장의 송시열¸ 한원진 등의 노론 주자학자와¸ 이와 반대로 정전제(井田制)의 정치 경
제 이념에 환원하여 지주제의 개혁을 통해서 자영소농경제(自營小農經濟)를 확립하고 이 기
조 위에서 정치 사회 개혁까지도 전망하려는 입장의 허목¸ 유형원 등의 남인 북인학자로
구분하고 있다.
철학에서도 허목¸ 유형원은 실리론(實理論)을 주장하고 송시열¸ 한원진은 의리론(義理論)
을 주장하고¸ 현실 인식에서도 전자는 진보적인 체제개혁론을 내세우고 후자는 체제 보수
적인 개선론을 내세우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추진 주체 운영 방식에서도 허목은 군주 군
권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질서의 재정립을 적극 모색하여 예송에서도 왕자예부동사서(王者禮
不同士庶)의 3년설을 주장했다고 하였다. 유형원도 과거사족(科擧士族)보다는 공거사족(貢
擧士族)을 주장하면서¸ 정치 운영 방안에서 허목과 같이 존군비신론(尊君卑臣論)을 주장하
고 있다고 하였다.
반면에 송시열은 군주성학론(君主聖學論)을 내세워 신권(臣權) 중심의 정치 운영을 실현해
가기 위한 군주권 제약의 방편으로 삼고¸ 세도정치론(世道政治論)을 내세워 신료권(臣僚
權)을 대표하는 덕망가가 세도대권을 장악하여 정치를 이끌어 가는 신권중심정치론(臣權中
心政治論)을 주장하였다 하였다. 그리고 한원진은 이를 이어 받아 노론(老論) 전권정치론
(專權政治論)을 주장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노소분당을 윤증의 송시열에 대한 배반행위
로 규정한 배사설(背師說)¸ 경종 영조의 왕위계승 과정을 둘러싼 노소대립을 소론의 반역
패륜 행위로 몰아간 충역(忠逆) 시비 등 주자학의 명분론을 통해서 노론전권정치를 이끌어
갔다고 하였다.
보론(補論)으로 소론 계통의 박세당과 정제두의 정치사상을 연구하였다. 박세당은 정치사상
에서는 실학의 군주관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하였고¸ 사회경제사상에서는 오랜 양반층의
신분적 특권을 부정해서 새로운 사대부상을 추구한 점은 유형원과 같은 남인계 개혁 방략
에 가깝지만 토지개혁을 보류하고 양반호포제 실행에 중점을 둔 점에서는 서인계의 개량적
방략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영조대의 정제두는 양명학을 바탕으로 한 탕평론을 주장하여 근
대를 여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박세당과 정제두는 송시열¸ 한원진의 주
자학에 반대하고 허목¸ 유형원의 논리를 보강하는 것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처럼 김준석 교수가 60년대 70년대 연구에서 주자학은 보수¸ 실학사상은 개혁이라고 했
던 연구 동향을 이어받아¸ 80년대 90년대 노론 주자학자 개량파¸ 남인 실학자 소론 양명
학자를 개혁파로 보고 정책을 비교 검토하고 있는 동안에¸ 학계의 연구 동향도 많이 변하
고 있었다.
60 년대 70년대에는 다 알다시피 망국의 책임을 조선후기에 주자학을 고수하면서 당쟁과 사
대주의에 찌들려 있던 주자학자들에 돌리면서¸ 양란 이후 조선후기를 피폐한 시기로 보았
다. 그러면서 이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미미하나마 민중과 실학자들에게 있어¸ 그래도 자
본주의 맹아가 있었지만¸ 결국 주자학을 고수한 봉건지배층들의 잘못으로 망했다는 논리
로 연구되었다.
이러한 연구 동향은 80년대 이후 식민지사관의 당쟁론을 극복하면서 붕당정치론을 주장하면
서 조선후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연구에 위해 극복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중세사상으
로 한계가 있지만 성리학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연구도 나오면서 예학(禮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조선후기 문화를 진경문화라고 하여 사대주의 문화가 아니라
고유색이 짙은 독창적인 문화로 보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러한 80년대 90년대 연구동향은 사회경제정책에서 율곡 이이¸ 우암 송시열로 이어지는
조선 성리학자들이 양반호포론¸ 노비종모법¸ 대동법¸ 궁방전 축소 등에서 개혁세력으로
등장하고¸ 그 동안 실학 개혁파로 알았던 남인들이 오히려 이러한 개혁을 반대하는 보수파
였다는 것이 밝혀져 가고 있었다. 김준석 교수는 이러한 연구 동향에 반대해 노론 주자학자
를 체제 유지적인 개량파¸ 남인 실학자를 체제 개혁적인 개혁파라는 입장에서 정책을 비
교 검토 하기 시작하였다.
저자가 주자학을 연구하며 서인과 남인의 철학 정책을 비교 검토하여 간 것은 70년대까지
의 연구 동향을 극복한 연구 업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조선후기 사상을 주자학이라고 규정
하면서도 이를 고수하는 입장과 이를 탈피하려는 입장으로 본 것도 60년대 70년대 연구 동
향을 극복한 연구 업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조선전기는 주자성리학이 이끌어 갔지만¸ 조선후기는 중국에서 주자학을 양명학이
대신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심학(心學)을 중심으로 한 조선성리학이 주자성리학을 대
신하였다. 이를 위한 논쟁이 심성(心性) 논쟁으로 일어나 율곡학파¸ 퇴계학파로 나뉘어졌
던 것이다. 그래서 조선전기에 주자성리학의 교과서이던 대학연의(大學衍義)¸ 소학(小學)
을 공부하던 것 대신에¸ 조선후기에는 조선성리학의 교과서인 성학집요(聖學輯要)¸ 격몽
요결(擊蒙要訣)을 주교재로 공부하는 것으로 바뀌어 갔고¸ 심학의 교과서로 심경(心經)이
중요한 경연 과목으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조선성리학자들이 심성논쟁 과정에서 율곡학파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과 퇴계학
파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으로 나뉘어 개혁 보수로 논쟁을 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일원
론¸ 이원론의 철학 차이를 실리론(實理論)¸ 의리론(義理論)으로 보는 것은¸ 당시에 주자
성리학이 심학에 입각한 조선성리학으로 변천해 간 것을 간과하여¸ 이러한 철학의 차이를
애매하게 하는 것이라 본다.
그리고 사회정책에서도 신권(臣權)¸ 왕권(王權)으로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리(順理)
를 따라 개혁하려는 왕도(王道)인가 아니면¸ 국유제를 전제로 인위적으로 개혁을 하려는
패도(覇道)인가를 구분하는 것이 사회경제정책에서 개혁 보수를 나누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세조(世祖) 같은 전제왕권¸ 즉 독재를 확립하여야만 개혁이 가능
하다는 논리가 나오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진보적인 체제개혁론이라면 노비제 개혁같은 신분제를 개혁하는 일이라고 보고¸ 이
를 어느 쪽이 시행하려고 하고 어느 쪽이 반대했는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기존
에 이미 밝혀진 노비제 연구에서는 허목 등 남인이 이를 반대하고 송시열 등 서인이 이를
추진한 것으로 되어있는 데도 이에 대한 고찰은 미흡한 것 같다.
결국 왕권¸ 신권 등 애매한 기준으로 개혁과 보수를 나누다보니¸ 신분제 개혁같은 사회개
혁정책을 소홀히 하여 서인 개혁 남인 보수를¸ 남인 개혁 서인 보수로 혼동하지 않았나 생
각된다. 그리고 영정조 문예부흥기를 이룬 것이 실학자가 아니라¸ 율곡학파를 이은 노론
낙파(洛派) 계열이었다는 문화 부문의 연구를 반영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정전제는 성리학자들이 요순사회 이상사회를 이루기 위해 꼭 시행해야 하는 것이기
에 노론 성리학자들도 정전제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조선후기 사회에 맞게 시행해 갔다.
그 방법이 10분의 1세를 이루는 대동법 균역법인가¸ 아니면 균전론인가 차이로 나타난 것
뿐이었다. 그래서 노론 주자학자들이 정전제를 반대했다는 것은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
각된다.
이러한 학계의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김준석 교수의 조선후기 정치사상사는 노론과 남
인의 정책 차이를¸ 주자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철학에서부터 정치사상¸ 사회경제사상
까지 규명해나갔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지 두 환
-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문학박사.
- 저서 : 『조선시대 사상사의 재조명』¸ 『명문 명답으로 읽는 조선과거실록』(역서) 등.
 목    차
차 례



간행사 3

제1장 緖 論 11

제2장 南人 古典儒學派의 社會·政治改革論 23

Ⅰ. 許穆의 禮樂觀과 尊君卑臣論 25
1. 朱子學에 대한 수정적 思惟의 성립 27
2. 禮樂論的인 政治觀 36
3. 古禮說과 尊君卑臣論 48
4. 北伐反對論과 地主制 抑制策 56
1) 反北伐論의 기반:禮法主義와 保民意識 56
2) 兵事·屯田·戶布法 反對論 67

Ⅱ. 柳馨遠의 變法觀과 國家制度改革論 93
1. {磻溪隨錄}의 이념과 방법 94
1) "實事求是"·古典主義의 채용 94
2) {磻溪隨錄}의 變法理念 103
2. 理氣觀의 轉回:"實理"論의 성립 121
3. 均田制的 農業改革論 139
1) 均産均賦論:均田制의 農政理念 139
2) 均田制下의 農業生産論 149
3) 財政制度의 개편과 貨幣流通論 168
4. 科擧制 廢止와 貢擧制 實行論 186
5. 政治·國防體制改革論 202
1) 政治·官僚制度 改編論 202
2) 兵農一致의 兵制·國防論 213

제3장 老論 正統朱子學派의 社會·政治運營改善論 225

Ⅰ. 宋時烈의 世道政治論과 賦稅制度釐正策 227
1. 反淸北伐論의 人倫構造 228
2. 君主聖學論과 王權의 견제 246
3. 世道政治論의 형성과 전개 266
1) "世道"와 君主責務 266
2) 世道宰相論 272
3) 朋黨肯定論 283
4) 世道擔任運動의 전개 292
4. 賦稅制度釐正과 農民統制策 301
1) 地主制 維持論의 시각 301
2) 內需司革罷·軍營縮小論 308
3) 農民把握對策과 社倉論 316
4) 貢法改正(大同法)과 戶布制論 331

Ⅱ. 韓元震의 異學批判과 老論專權政治論 341
1. 義理觀:朱子­宋時烈 理氣說의 絶對化 342
2. 異說·異學批判論의 전개 354
1) "華夷無分"說의 비판 354
2) "儒釋無分"說의 비판 362
3. "人物性同論" 批判과 "湖洛"論爭 373
4. 老論一黨政治論의 구조 388
1) "背師", "忠逆", "春秋大義"說의 政治理念 388
2) 朋黨觀:反"蕩平"의 논리 411
3) 儒者仕宦論:老論의 使命意識 422
4) 君主道理論:君主聖學論 429
5. 均賦均稅論과 治安對策 441
1) "時宜變通"論의 法制觀 441
2) 賦稅制度釐正策:戶布制論 450
3) 關防意識과 治安維持策 456

제4장 結 論 467

제5장 補 論
: 少論 反朱子學派의 社會經濟·政治運營論 483

Ⅰ. 西溪 朴世堂의 爲民意識과 治者觀 485
1. 머리말 485
2. 野人生活과 정치지향 487
3. "守成"의 개혁논리와 爲民意識 497
1) 時局認識과 守成論의 전개 497
2) 爲民論의 구조와 분화 503
4. 治者責務意識과 君主·大臣論 507
1) 君主聽政論 507
2) 大臣輔弼論 516
5. 맺음말 523
Ⅱ. 17세기의 새로운 賦稅觀과 士大夫生業論
­朴世堂의 賦役論과 稼穡論­ 527
1. 머리말 527
2. 保民意識과 軍事·財政制度 개혁론 529
1) 軍制改編論 532
2) 財用節減論 536
3. 均賦·均役理念과 兩班擔稅論 540
4. 儒者稼穡論과 士大夫觀의 전환 548
1) 儒者稼穡論의 구조 548
2) 生利型 儒者像 556
5. 맺음말 561

Ⅲ. 朝鮮後期의 蕩平政治와 陽明學政治思想
­鄭齊斗의 陽明學과 蕩平政治論­ 565
1. 머리말 565
2. 인식태도의 전환과 陽明學의 수용 568
1) 學問方法과 인식태도의 전환 568
2) 陽明學의 수용과 朱子學의 비판 581
3. 정치 인식과 建極蕩平論의 전개 596
1) 出處觀·時局觀과 정치 인식 596
2) 建極蕩平論과 對話政治의 지향 612
4. 맺음말 634

영문요약(abstract) 639
참고문헌 641
찾아보기 657
 저  (역)   자   약   력
1944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하여 2002년에 작고하였다. 1969년 연세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
여, 1991년 같은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83년부터 한남대학교 역사교육과,
1993년부터는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유교집으로는
1. 조선후기 정치사상사 연구
2. 한국중세 정치사상사론 (1)
3. 한국중세 정치사상사론 (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