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천하, 중국을 뒤흔든 이탁오
 
 도서분류 전기 평전
지은이 : 신용철
옮긴이
면 수 : 468
:  \20,000
출간일 : 2006/01/10
판 형 : 신A5
ISBN : 89-423-2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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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주문권수 입력: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길고 긴 중국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누가 이탁오처럼 뼈아픈 자기 성찰의 돌을 던질
수 있었던가? 그리고 어느 누가 이탁오만큼 역사 시비(是非)의 붓끝을 두려움 없이 종횡무
진으로 휘두를 수 있었던가?
그가 죽은 지 2세기 반을 지나, 서양에 따른 정치․문화적 충격으로 중국은 역사상 최
대 위
기에 맞닥뜨렸고, 이에 중국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지난날의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전통
을 과감하게 버려야 했다. 20세기 초 중국의 젊은이들은 이미 화석화해버린 유교사회의 고
질적 인습과 사상에 대해 “공자의 상점을 부수라[打孔家店]”고 과감하게 외쳤다.
5․4신
문화운동의 영웅들은 16세기의 역사 속에서 ‘반(反) 전통의 진주’로서 유교에 대한 ‘투
쟁의 선구자’ 이탁오를 불러낼 수 있었다.

독자적인 시비(是非)의 새로운 ‘저울과 거울[衡鑑]’을 내세우고 {장서(藏書)} {속장서(續
藏書)} 등의 여러 역사서를 썼던 이탁오의 학문과 삶은 바로 그런 자유의 실현이었다. “내
가 나의 곁에 있을 때(das bei sich selbst sein), 그것이 자유”라는 헤겔의 논리와 “50
세 전까지 나는 한 마리 개”였다는 이탁오의 반성적 선언은 바로 그를 자신의 진심에서 분
리시키지 않고, 세상의 일들과 함께 다루자는 뜻이었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의지였고, 또
한 자유의 선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의지는 그의 새롭고 독특한 역사서술과 종횡무진의 역사평가에서 주옥같
은 결실을 맺었다. 이것이 공자와 유교로부터 자유로운 역사의 시비였고 남을 의식하지 않
는 두려움 없는 비판이었다. 따라서 《장서》는 바로 그의 자유의지의 꿈을 펼치는 무대였
고 시험대였으며, 또한 역사 시비의 법정이기도 했다. 그것은 그의 자유의지의 시험이었
고, 중국사의 과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를 “18세기 헤겔이나 20세기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마르쿠제나 아도르노보다 앞선 해체주의자 또는 자유인”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
이다.
그러면 이탁오의 사상과 자유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탁오는 자기자신으로부터 철저하게 자
유로워지려고 몸부림쳤다. 그래서 50세 이전의 자신을 남이나 따르는 주체성 없는 “한 마
리 개”라고 질책하며 자유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속성을 “충직한 개만도
못하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그는 주변의 여러 가까운 관계를 냉정하게 끊어버렸다. 머리
를 깎아버렸고 벼슬을 내던졌으며, 자기를 도와주는 친구를 물리치고 부인을 고향으로 쫓아
버렸다. 자기자신과 주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자신의 이상이 당장 실현될 수 없음을 안 이탁오는, 언제일지 모를 새 시대를 기다리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역사의 시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하는 것으로, 천편일률적인 공
자의 시비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책을 읽는 것은 독자 여러분에게 맡기지만, 내 경계해
서 말하거니와 제발 공자의 시비로서 세상사의 시비를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는 《장
서》의 서문에서 선언하였다. 당시의 사회윤리와 국가 이념의 원류인 ‘만세의 모범[萬歲師
表]’과 ‘지극히 성스러운 스승[至聖先師]’인 공자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이것은 이탁오의 자유를 위한 권리장전이며 대선언이었다. 이 자유를 바탕으로 공자나 맹
자, 그리고 주자 등 유교의 성인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성인들의 저술이라고 숭배
하던 경전의 권위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독자적인 선악의 기준으로 역사와 세상과 사람을
평가하고 싶었다. 차별 속에서 굴종적 삶을 이어가던 여자에 대해 재능을 긍정하고 자유로
운 결혼을 찬양하였다. 즉, 기존의 사회윤리와 형식화한 전통이나 형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고자 몸부림쳤다.
그래서 그는 탄핵받고 체포당했다. 공자 같은 성인을 모독하고, 유가의 역사가들이 부정적
으로 평가한 인물들을 좋게 추켜올리고, 여자에게 글을 가르치고 도덕적으로 문란하였다는
죄목이었다. 그는 옥중에서 죽음마저 스스로의 의지대로 결정하였다. 뒷날 그의 저서들은
태워지고 금지․억압되었다. 청나라 초 역사가 기윤(紀昀)은 그의 {사고전서총
목제요(四庫
全書總目提要)}에서 “천고상전(千古相傳)의 선과 악의 자리를 뒤바꾸지 않은 것이 없다”
고 이탁오를 정죄하면서 이탁오의 저술들을 금서목록에 넣어버렸다.

그러면 봉건 중국을 파괴하는 데 매우 유용했던 이탁오의 사상은 이제 역사적 사명을 다하
였는가? 그의 구실은 이제 더 이상 없는 것인가? 특히 한 세기의 대토론 주제로서 타도의
대상이었던 유교와 공자도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구실이 모색되고 있는 시기에, 이탁오
의 사상 역시 그 참된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리는 커다란 관심을 갖는다.

이탁오는 400여 년 동안 커다란 논란의 대상이었고, 특히 지난 한 세기 중국사상사에 큰 영
향을 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이야말로 그의 사상이 여전히 중국과 우
리에게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의 사상은 앞으로도 자유로운 현대 중국문명의
건설을 위해서 계속 영향을 끼칠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폭풍과 같던 그에 대한 찬양
과 평가를 뒤로 하고, 이제 조용한 시점에서 우리는 그에게 좀더 다가서서 그를 더욱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진정한 그의 사상을 더욱 뚜렷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울러 이것은 곧 공자사상의 시대적 가변성과 포용성을 함께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20세기가 필요로 했던 16세기 사상가

“따라 짖는 한 마리 개는 되지 않겠다!!” 이렇듯 자아의 주체를 선언한 이탁오는 자아와
사회의 모든 구속으로부터 과감하게 탈출하려 했던 투철한 자유인이었다. 그의 자유는 역사
서술과 역사평가로 나타나 그 시대를 지배한 유교나 사회윤리와 심하게 충돌했다. 그는 자
유의 실현을 위해 그 시대와 힘겨운 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관직을 버린 뒤, 《분서(焚書)》에서, 당시 유교학자들의 고질에 대해 전투하듯 공격을 퍼
부었다. 현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 것이다. 그리고 역사서인 《장서(藏書)》와 《속장서
(續藏書)》에서는 역사 속의 여러 인물들을 불러내 평가를 뒤엎거나 새롭게 하였다. 공자
와 유교, 경전 등이 모두 공격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그는 16세기 공자의 천하, 중국를 뒤
흔들었다.
놀란 유교 관료들이 그를 감옥에서 죽게 하고, 책을 불태우면서 금서목록 속으로 파묻어버
렸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꺼진 불 속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20세기에 다시 타올랐다. 또 한
번 공자의 천하를 더욱 세차게 뒤흔든 것이다.
화석화한 허구적 전통을 부정하고 송곳처럼 예리한 비판을 하던 자유인 이탁오. 자유를 향
한 그의 열정과 정신은 진한 감동과 지혜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목    차
머리말
들어가며-20세기가 필요로 했던 16세기 사상가 이탁오

제1장 나는 한 마리 개였다
이탁오와 그의 시대
가계와 청소년 시절
25년 동안의 관직생활

제2장 내 책을 태워버려라
구도의 길, 황안에서 마성으로
유교 공격을 시작, 《초담집》 간행
유교 공격의 전면전, 《분서》의 간행

제3장 천만세의 시비를 모두 뒤엎어라
박해와 투쟁 속에서 계속되는 발분의 저술
자유이념의 실현, 《장서》의 역사세계
시대의 사회통념을 초월한 여성관
선교사 마테오 리치와 교류

제4장 죽음으로 삶을 완성하다
몸을 죽여 삶을 이루다
20세기를 다시 살다

마무리하며-이탁오는 열정의 자유인이었다

부 록
이지 연보
이지의 저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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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역)   자   약   력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
고, 같은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
였고,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장을 지냈다. 경기도 문화재위원, 국사편찬위원으로 활동했
다. 현재 경희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주요 저술로는 〈비림비공운동 중 중국에서 이탁오 사상의 정치적 수용〉(석사 논문) 〈이
탁오의 역사관시론〉 〈초횡의 생애와 사상〉 〈20세기 중국의 유교논쟁〉 〈서독 사회민주
당의 동방정책〉 《이탁오의 사회비평-그의 여성관을 중심으로(독문)》(페터 랑), 《세계
의 역사와 문화》(탐구당) 《동양의 역사와 문화》(탐구당) 《통일시대의 민주시민교육론》
(탐구당) 《홍콩은 어디로 가는가》(우석) 《마카오 1999년》(우석) 《하이델베르크의 추
억》(우석) 《운허 스님의 큰 발자취》(동국역경원)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중국의 문화혁명》(볼프강 프랑케, 탐구당), 《중국현대정치사》(W. 로진
스키, 탐구당), 《중국인민해방군》(平松茂雄, 탐구당)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