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과한인소년병학교
 
 도서분류 한국사
지은이 : 안형주
옮긴이
면 수 : 452
:  \22,000
출간일 : 2007/01/30
판 형 : 신A5
ISBN : 978-89-423-10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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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주문권수 입력: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책을 내면서



이 책은 미국 네브래스카 주에 있었던 한인소년병학교(韓人少年兵學校, 1909~1914)의 민족
운동에 관한 저술이다. 한인소년병학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제일
먼저 세워진 무관학교로, ‘민족운동’을 전개할 젊은 선비들을 양성한 교육원이었다. 졸업
생들은 각 전문 분야에서 민족운동가로 활약하였다. ‘민족운동’이란 ‘독립운동’보다 넓
은 뜻으로, “다른 민족의 국가로부터 압박을 받는 약소민족이 독립하려고 하는 운동이며,
여러 다른 나라에 산재하는 같은 민족이 힘을 모아서 한 민족국가를 건설하려고 하는 운
동”이라고도 풀이된다. 그러므로 민족운동을 하려면 그 민족의 특유한 문화와 민족성을 밝
히고 발전시켜야 하며, 동포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문화의 가치를 확립해야 한다. 한
인소년병학교의 교과목과 졸업생들의 삶을 살펴보면, 이들이 민족문화를 연구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려 힘썼으며 또 이를 실행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한인소년병학교 출신들은 한국 근대사에서 훌륭한 민족운동가들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광
복 뒤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의 반대파라는 이유로 일시 귀국도 허용되지 않았고, 미국에
서 영주한 탓에 그들의 활동은 역사의 그늘에 묻힌 경우가 많았다. 지금까지 발표된 한인소
년병학교 관련 연구논문은 두 개가 있는데, 모두 독립운동을 위한 ‘무관학교’라는 데 초
점을 맞추고 있다. 나는 기존 연구를 좀더 진전시켜, 미국으로 유학한 개화파 선비들이 모
인 소년병학교가 우리 겨레의 민족주의와 그 구현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나아가 이를 꾸준
히 연구·실천했다는 것을 밝히려고 한다.
현재 전하는 한인소년병학교 사진들은 거의 대한인국민회 회장을 역임한 문양목의 삼남 한
소[Dr. William Moon]가 소장하고 있던 것들이다. 또한 한인비행학교 사진은 대한인국민회
회장 강영소의 막내동생으로 하와이 한인 영자보 <<영 코리아(Young Korea)>>의 편집인을
지낸 강영각의 부인 강메리 여사가 소장하고 있던 것들이다. 그리고 정양필과 관련한 자료
와 사진들은 맏딸 로잘리 깅(Rosalie Ging) 여사가 나에게 기증한 것이며, 유일한의 사진들
은 유한양행에서 제공한 것임을 밝혀둔다. 20세기 초 커니 시와 헤이스팅스 시 풍경은 네브
래스카 주립역사박물관에서 구입한 것이다. 아울러 한말 한국의 사관학교·규율·무기 등
에 대한 부분은 나의 고교 동창인 구상모(具相謨) 장군과 서진태(徐鎭泰) 장군이 자문을 맡
아주었음을 밝혀둔다.
이 연구에 재정적 지원을 해준 유한양행(柳韓洋行)의 연만희(延萬熙) 고문과 연강재단(蓮崗
財團) 그리고 혜양섬유(惠陽&#32330;維)의 고(故) 양문현(楊汶鉉) 회장께 깊이 감사를 드린
다. 아
울러 2차에 걸쳐 원고를 꼼꼼히 읽고 적절히 수정해주신 목포대학교 정병준(鄭秉峻) 교수
와 보충할 점들을 지적해주신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윤병석(尹炳奭) 님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07년 1월 10일
지은이 안 형 주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보도자료



박용만과 한인소년병학교
안형주
신국판 반양장/ 452쪽/22,000원

지식산업사 전화 734-1978 팩스 720-7900 홈페이지 http://www.jisik.co.kr

독립운동가 박용만(1881~1928)이 주도하여 미국 네프라스카 주에 세웠던, 우리겨레가 해외
에 최초로 세운 무관학교인 한인소년병학교(1909~1914)를 본격적으로 추적한 집중취재기가
나와 눈길을 끈다.
전 미국을 두루 돌아다녀 흩어진 자료를 찾아 내 사진만 120 여점을 수록한 이 책은 20세
기 초 재미동포 유학생들의 뜨거운 애국심과 그들의 삶이 그대로 들어난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노선이 달랐다는 하나의 이유로(박용만은 이승만과 의형제였고 이승
만의 네 살짜리 아들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기도 했다), 소년병학교 출신들은 일시 귀국도
허용되지 않았고 미국에 영주한 탓에 역사의 그늘에 묻힌 경우가 많았다.
박용만은 강원도 철원 태생으로 일찍 개화에 눈을 떠 일본을 거쳐 미국에 가서 고학으로 공
부하면서 네프라스카 주립대학에 편입, 여름방학 동안 고교 교사를 빌어 여름군사학교
(Summer Military Camp)인 한인소년병학교(Young Korean Military School)를 세우고 1기 13
명을 모아 유학 온 젊은이들에게 군사훈련을 실시한 것이 첫 출발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단
순한 군사교육만이 아니라, ‘조국 광복을 이끌 젊은 선비 양성’에 뜻이 있었기에 군사교
육 외에 우리말과 우리 전통문화도 가르쳤으며, 박용만과 그의 동지 백일국 등은, 미국 독
립전쟁 당시 자급자족하면서 둔전병을 양성했듯이, 언젠가 때가 되면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남만주나 연해주로 가서 광복의 지도자로 일하도록 길렀던 것이다.
소년병학교 관련자들은 소수의 순수 유학생 외에도 노동이민자들의 자제나 노동이민자까지
포함된 모두가 고학생들이었다.
대학생들은 중고등생들에게 우리 말과 우리 선비관을 가르친 한편으로 화학과 농학, 상학
등도 가르쳐 그들이 나중에 과학자ㆍ기술자ㆍ경영자들이 되게 했다. 그리하여 소년병학교
졸업생(모두 100명 미만)들은 거의 고등학교를 나왔고, 학사 36명, 박사 2명, 의(약)사를 6
명이나 배출했으며, 그들은 거의 미국에서 활동했고, 유일한(유한양행 창설자)ㆍ정한경(정
치학자) 등은 조국에 와서도 활약했던 것이다.
저자 안병주는 서울대학교 국문과 출신으로 1960년대 중반에 미국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지
난 10여 년 동안 박용만과 소년병학교의 미국 전역에 흩어진 자료를 모으기 위해 그 후손들
을 찾아 소중한 자료들을 모았으며, 이 저술은 제4회 <나라안팎 한국인 기록문화상> 집중취
재기 부문의 당선작으로 뽑힌 것이다.

 목    차
차 례



책을 내면서

제1장 머리글
한인소년병학교의 뿌리
상동청년회
상동청년학원
한인소년병학교의 ‘선비’ 양성운동
구한말 도미 유학생들
소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간 청년 지도자들
19세기 말 극동 삼국의 소년 구미 유학생들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와 재미 보황회(保皇會)
간성학교(干城學校)
간성학교의 종말
<<중서일보>>와 재미 한인들

제2장 네브래스카 주의 한인들
셔먼 부인의 한인 전도관
커니 시의 한인 ‘스쿨보이’들
정한경(鄭翰景, 1890~1985)
정양필(鄭良弼, 1893~1974)
유일한(柳一韓, 1894~1971)
이관수(1897~1917)
이노익(李魯翊, 1878~?)
커니 시의 한인들

제3장 재미 한인들의 초기 독립운동과 한인소년병학교의 태동(1905~1908)
포츠머스 강화회담
주미 한국공관의 철거
부역자를 다룸
헤이그 세계평화회의
스티븐스 사건
애국동지대표회
한국인 밀정의 보고

제4장 한인소년병학교(1909~1914):생도들, 일과, 그리고 교과목
목 적
커니의 소년병학교(1909)
구한말의 두 군인과 한국식 산병교련
미국 무관학교의 분류
소년병학교와 헤이스팅스 대학
소년병학교 구성원
소년병학교의 일과
과목들
무기와 군복
군 가
정신교육
소년병학교와 두 미국 군사고등학교

제5장 한인소년병학교의 과외활동
육상반
야구반
연극반
한국유학생회 창립과 영문잡지 출판
지방사회 미국인들과 교류

제6장 한인소년병학교의 종말
일본 정부의 한인소년병학교에 관한 보고서들
한인소년병학교의 단기적 영향
군민군단
한인비행사양성소
소년병학교와 간성학교의 비교
다른 한인 무관학교와 비교
소년병학교와 신흥무관학교

제7장 네브래스카 한인사회와 네브래스카 문화
네브래스카 대한인거류민회
대한인국민회와 교섭
링컨 시의 한인 학생 기숙사
헤이스팅스의 한인 학생 전도관
소년병학교의 후원자들
1910년대 초 커니와 헤이스팅스의 경제와 문화
헤이스팅스 시의 경제와 문화
사회기구와 각 교파 교회들
소수민족들
문 화

제8장 한인소년병학교 교사와 생도들의 글
<<제국신문>>에 실린 소년병학교 교사들의 글
소년병학교 교사들의 한시(漢詩)
박용만의 시조(時調)
박용만의 <<신한민보>> 사설
소년병학교 교사들의 글
생도들의 글

제9장 한인소년병학교와 민족운동
학업의 성취
대학원을 마친 생도들
독립군 양성을 위하여 헌신한 소년병학교 출신
김장호 극동 방문의 의의와 영향
3·1 운동과 구미위원부
네브래스카 주 주민들의 한국을 위한 청원서
박용만의 한글 연구와 소년병학교 생도들
재미 한인 신문의 언론인으로 활약한 이들
중국음식 도매업을 창업한 이들
의사가 된 소년병학교 출신들
사진사가 된 소년병학교 출신들
출판된 저서들
소년병 출신들의 귀국과 활동
태평양전쟁과 그 영향
김용성과 맹호군
유일한과 재미 한족연합회 그리고 납코(NAPKO) 작전
의견의 차이와 타협 그리고 인내
태평양전쟁 뒤

제10장 맺는 말

참고 문헌
부록 1_ <상동청년회>(보고서 <조선 독립운동의 근원> 가운데)
부록 2_ 우운선생츄도문(憂雲先生追悼文)
부록 3_ 우성(于醒) 박용만 연보(1881~1928)
 저  (역)   자   약   력
지은이 안형주(安炯株)는

1956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1964년에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턴스쿨을
졸업하였다. 그 뒤 캘리포니아 도밍거스 주립대학에서 경영학 석사과정(1976)을, 캘리포니
아 풀러턴 주립대학에서 역사학 석사과정(1995)을 수료하였다. 로스앤젤레스 록히드 항공사
와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 사회복지부에서 근무하였으며, 1995년 은퇴한 뒤에는
UCLA Asian American Studies Center에 Korean American Research Project를 세우고 총무간
사로 일하면서 1,500점에 이르는 재미 한인 이민사와 독립운동사 사료를 수집하였다. 그
뒤 한림대학교 아세아문화연구소 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와 국가보훈처 미주 지역 사료조사
위원, 단국대학교 한국민족학연구소 연구원 등을 거쳐, 지금은 인천광역시 이민사박물관 해
외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Four Ahns from Village of Simgeunsol”, “The Local Preachers from
Chemulpo Wesley Church”, “Syngman Rhee and Education of Young Koreans in Hawaii
(1913~1923)”, “The Early Korean American Women and Their Daughters” 등이 있으며,
주요 저서로 Between Two Adversaries: Korean Interpreters at Japanese Alian Enemy
Detention Centers During World War II, Faithful Witness: Centennial History of Los
Angeles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외국의 보훈제도(미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