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남하와 일본의 한국 침략
 
 도서분류 한국사
지은이 : 최문형
옮긴이
면 수 : 376
:  \23,000
출간일 : 2007/10/15
판 형 : 신A5
ISBN : 978-89-423-2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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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주문권수 입력: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책을 내면서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한국 정황은 100여 년 전 구한말의 국
제 환경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구미 열강은 청국에 뒤이어 한국에 수교를 강
압, 저마다 권익 확보를 위해 경쟁을 벌였으며, 이에 대응해 우리는 국권을 지키려고 안간
힘을 썼다. 그러나 우리는 식민지로 전락했고, 그것도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우리
의 노력은 끝내 실패로 끝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그 실패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올바로 구명하는 일은 우리의 간절한 연구 과제
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불상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이고, 그러기 위
해서는 열강의 침략 행태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도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100여 년 전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 야욕을 밝히고, 우리의 뼈아픈 실수와 실패
의 원인을 구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저자는 먼저 일본의 한국
침략에서 흔히 간과되고 있는 러시아의 침략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보기로 했다.
영·러의 세계적 규모의 패권 경쟁은 나폴레옹 실각 이후 그 막이 올랐다. 그렇지만 동아
시아를 무대로 한 영·러의 대결은 영국의 아편전쟁 도발로 시작되었다. 러시아가 시베리
아를 개척한 뒤 남하의 향방을 동아시아로 정하자, 이를 예견한 영국이 러시아 견제에 나
섰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영·러의 대결이 표면화한 것은 한러수호조약이 체결된 1884년 이후의 일이
다. 그러나 러시아가 시베리아철도를 착공(1891)함으로써 침략의 방향을 동아시아로 확정
짓자, 한반도에서는 영·러의 대결보다 러·일의 대결이 더 확실하게 부각되었다. 청일전
쟁은 일본이 피할 수 없게 된 러시아와의 전쟁을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서전(緖戰)
이었다.
한반도에서 러·일 대결 시대가 본격화한 것은 일본이 청일전쟁에 승리, 청국을 한반도에
서 몰아낸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이 모두는 러시아가 시베리아 개척을 끝내고 연해주를
점취하고 나서야 비로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책에서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 과
정부터 살핀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은 거대 모피업자 스트로가노프(Stroganov) 가(家)
에 고용된 코사크 지도자 예마르크(Yermak Timofeevich)에 의해 시작되었다(1582). 이후
개척자들은 동진(東進)을 계속해 불과 70년 만에 태평양 연안에 도달했다. 이는 아무르 강
을 비롯한 하천망(河川網)을 효과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러시아 모피업자들을 시베리아로 내닫게 한 원동력은 모피 독점에 있었고, 농민들을 움직
인 동력은 전제군주 차르의 폭정과 중세(重稅)를 피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진
출 활동은 결과적으로 “차르에게 아무런 수고도 없이 ‘과실’의 수확을 가능하게 해주었
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모피는 스페인 사람들이 멕시코에서 추구했던 금·은과 맞먹는 귀중품
이었다. 모피는 서유럽과 교역을 가능하게 한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따라서 그들
은 교역 증진을 위해 더 많은 모피를 얻어야 했고, 이 목적을 위해 멀리 아메리카 대륙으
로 파고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러시아 사람들의 진출 활동은 모두 아무르 강이라는 수로(水路) 이용 없이
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무르 수로는 이미 네르친스크 조약(1689)으로 말미암
아 이용에 제동이 걸려 있었다. 캬흐타 조약(1727)으로 육로 통상의 여건은 개선되었지
만, 수로 이용에서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실로 아무르 수로는 청국과의 통상을 위해서도 물론 그러했지만, 태평양 진출을 위해서도
러시아에게는 혈로(血路)와도 같은 것이었다. 시베리아 총독 무라비요프와 네벨스코이가
아무르 진출을 선도하며 태평양 탐험에 앞장선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영국은 바로 이런 국제 환경에서 아편전쟁을 도발(1840)함으로써 러시아의 아무르
진출에 위협을 가한 것이다. 따라서 이 위협은 영국에 대한 러시아의 경계심을 극도로 고
조시킬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시아에서 영·러 최초의 대결 무대는 일본 땅이었다. 영·불 연합함대가 캄차카 반도를
침공한(1854) 뒤, 두 나라는 저마다 일본과 먼저 수호조약을 맺기 위해 앞을 다투었다. 그
러나 러시아의 대마도 점령이 영·일의 저지에 부딪혀 실패로 끝나자(1861), 영·러 대결
의 무대는 일본 땅을 떠나 자연스럽게 한반도로 옮겨갔다.
한반도에서 영·러의 대결은 이홍장이 한국에 미·영과 수교를 주선함으로써 크게 속도가
붙었다. 청국의 리바디아(Livadia) 조약 파기로 인해 1880년 초부터 청국에 대한 러시아
의 해상 위협이 고조되자, 이홍장은 미·영을 한반도로 끌어들여 러시아를 견제하려고 했
다. 이는 이홍장식 ‘이이제이(以夷制夷)’ 외교의 한 전형(典型)이었다.
한편, 미·영도 한국과 수교함으로써 러시아를 견제하겠다는 정치적 목적만은 일단 달성했
다. 그러자 영국은 곧바로 경제적 욕구 충족이라는 다음 과제로 접어들었다. 그들이 임오
군란의 혼란을 틈타 ‘한영조약’의 비준을 거부하고, ‘한영신조약’을 강압한(1883.
11. 26) 것은 바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영·미를 이용해 청국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김옥균 등 개화파의 소박한 외
교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1884. 5). 이것이 민 왕후가 한국 외교의 전면에 나서게
된 계기였고, 그 첫 작품이 바로 한러수교(1884. 7. 7)였다. 이는 ‘조선책략’적 외교 노
선의 전면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한국 땅에 발을 붙이자 청국 견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청일전쟁 뒤에는 다시
일본을 견제하는 데 앞장섰다. 그들이 탐내온 한국을 이들 청국과 일본이 선취(先取)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가 아니었음은 재론의 여지도 없는 일이다.
러시아 역시 일본과 조금도 다름없는 침략자였다. 일본이 민 왕후 시해로 한국에서 세력
을 만회하자, 러시아는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이에 대응했다. 러시아와 일본의 주
한 공사는 한국 땅에서 한국 문제를 협의하면서 한국 왕을 철저하게 따돌렸다. 양국의 대
표도 모스크바에서 한국 처리 문제를 협의하며 한국 땅을 분할 점령하자는 논의마저 서슴
지 않았다.
러일전쟁이 한국과 만주를 차지하기 위한 대결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 나라의 침략성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러시아도 일본의 한국 병합과 결코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에도 우리 학계에서는 청국과 일본만이 한국에 침략 야욕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기술하
고 있다.
침략 야욕은 한국과 수교를 맺은 제국주의 열강 모두가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경우에 따
라 야욕의 표출 방식만을 달리했을 뿐이다. 특히 러일전쟁 이후 러시아는 ‘어제의 적’
일본과 야합해 일본의 한국 병합을 돕기도 하고 묵과하기도 했다. 영·불은 이를 묵과했
다. 러시아는 만주에서 자국의 권익을 유지하기 위해서였고, 영·불은 독일 포위망 구축
에 일본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일본의 한국 병합은,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이 저마다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일본의 야욕을 도운, 제국주의자들의 합작품이었다.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의 침략성도 결
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침략성이 그만큼 감소되는 것은 물론 아
니다. 한국 침략의 최선봉에 선 나라는 어디까지나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 과정을 구명함으로써, 일본의 한국 침략에서 러시아가 수
행한 역할을 분명하게 밝히려고 한 것이다. 그 방법으로서 먼저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
경위와 그 과정부터 일별했다.
제1부에서는 러시아가 시베리아 개척을 시작한 이래 한국과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맺게
되는 1884년까지를 다루었다. 제2부에서는 영·러 대결이 한반도에서 러·일 대결로 바뀌
어 이들의 이해 대립과 야합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한국이 일본에 병합되는 과정을 밝혔다.
그러나 이 책도 지금까지의 연구 경향을 극복함으로써 앞으로 후학들의 연구를 위한 초석
을 마련하려는 것일 뿐, 완벽한 것일 수는 없다. 다만 일본의 한국 병합은 러시아와의 관
계를 비롯해 국제관계와의 관련 없이는 올바로 구명될 수 없다는 관점만은 분명히 했다.
앞날의 위기관리를 위해서도 우리가 국권을 상실하게 된 원인과 경위만은 똑바로 구명해
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신념이다.
그렇지만 이 작업도 생각처럼 결코 간단하지는 않았음을 고백한다. 집필을 끝낸 이 순간에
도 저자의 마음은 조금도 가벼운 느낌이 없다. 내용과 체재에 미흡한 점이 있지 않을까 걱
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후학 여러분의 보완을 기대하며, 독자 여러
분의 기탄 없는 질정을 바라 마지않는다.

2007년 9월 20일
최 문 형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이 책은 <한국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2001),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
(2001), <러일전쟁과 일본의 한국병합>(2004) 에 이어 내어 놓은 일련의 노작 가운데 하나
로서, 평생동안 우리나라를 들러싼 국제관계사를 천착해온 저자가, 구한말 대한제국이 일
제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과정을 일본에만 초점을 맞추어 파악하는 기존의 설명 틀을 벗어
나서 영국을 비롯한 프랑스 미국 등 구미 열강의 자국 이해에 우선한 정책과 맞물려 빚어
진 결과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출간하였다.
구미 제국주의 열강, 그 가운데서도 특히 러시아의 정책과 행보에 대해 저자는 주목한다.
모피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한 시베리아 개척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동아시아를 제국 팽창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한 러시아의 정책들을 밝히고, 구한말 한반도를 가운데 놓고 벌어진
제국주의 열강들의 힘의 역학관계와 그 속에서 러시아의 의도와 정책의 구체화 과정, 그 뒤
의 행보와 귀착점에 대해 저자는 천착한다.
흔히들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같
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때만 유용한 경구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저자는 오늘의 독자들이 100여 년 전 구한말 한반도를 가운데 놓고 벌어졌던 열강들의 의도
를 들여다봄으로써,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미ㆍ일ㆍ중ㆍ러의 정책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
인지를 알아내는 해법의 실마리를 이 책에서 찾았으면 희망한다.
 목    차
차례


책을 내면서


제1부 러시아의 동아시아 침략과 영·일

제1장 러시아의 동방 진출과 아무르 탐험
1.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과 모피 추구
2. 러시아인의 태평양 진출과 하천 이용
3. 러·청의 타협과 네르친스크 조약의 성립
4. 네르친스크·캬흐타 체제
5. 러시아의 유럽 우선 정책과 아무르 강 이용 문제
6. 아편전쟁과 러시아의 아무르 강 수로 이용 본격화
7. 무라비요프 총독과 네벨스코이의 탐험 성공 (1)
8. 무라비요프 총독과 네벨스코이의 탐험 성공 (2)

제2장 영·러 대결과 동북아시아
1. 러시아의 발칸 및 동북아시아 진출
2. 크림 전쟁과 영·러 대결
3. 영·불의 캄차카 침공과 영·러 대결의 동아시아 확장
4. 러시아의 캄차카 철수 성공과 영·러의 대일수교 경쟁
5. 영·불 해군의 제2차 캄차카 침공 실패와 그 여파

제3장 영·러 대결과 중국 대륙
1. 중국 대륙에서 영·러 대결과 한국의 항만
2. 러청천진조약과 아이훈조약
3. 천진조약의 비준과 북경조약
4. 러시아의 동아시아로의 팽창과 러·청 국경분쟁의 연원

제4장 러시아의 남하와 동아시아
1. 북경조약 체결과 러시아의 입지
2. 러시아의 대마도 점령과 일본의 공러의식
3. 러시아의 대마도 점령과 영일의 대응
4. 한국령에서 부동항 획득 기도와 야욕 자제
5. 영·러의 충돌 자제와 일본의 한국 침투
6. 이리분쟁과 한국에 대한 일본의 개국 강압
7. 영국의 대청공러의식 고취와 ‘조선책략’

제5장 한국과 구미 열강의 수교와 그 여파
1. 러시아의 리바디아 조약 파기와 청국의 한미·한영수교 주선
2. 한미수교와 한영수교
3. 임오군란에 대한 청·일의 대응과 한국
4. ‘한영신조약’의 체결과 그 경위
5. 한영신조약의 의미와 한반도에서 열강의 세력 관계
6. 한국에 대한 미국의 관심 감퇴와 한국 정황


제2부 한반도에서의 영·러 대결과 일본

제1장 한러수교와 그 여파
1. 한러수호조약의 성립과 묄렌도르프
2. 러시아의 대한(對韓)접근과 그 의미
3. 갑신정변과 그 여파
4. 한성조약과 ‘한러밀약’
5. 영국의 거문도 점령과 그 여파
6. 천진조약의 성립과 그 의미
7. 청국의 거문도 철군 외교와 러·청의 외교교섭
8. 한국에서의 청국의 우위와 일본
9. 공러의식의 실체와 러시아의 시베리아철도 착공 논의
10. 러시아의 대한정책 기조와 러·일의 ‘협조’
11. 코르프-지노비예프 회담과 러시아의 대아시아 외교
12. 러시아의 판단 착오와 일본의 대청·대러정책

제2장 일본의 대청개전과 러시아
1. 일본의 대러강경책과 러·일 협조의 파탄
2. 청·일 갈등의 연원과 일본의 개전 여건
3. 러시아의 시베리아철도 착공과 일본의 대청도발
4. 러시아의 개전 견제와 일본 (1)
5. 러시아의 개전 견제와 일본 (2)
6. 영국의 개전 견제와 일본
7. 미국의 개전 방관과 일본의 전쟁 도발

제3장 청·일 강화와 러·일의 대결
1. 청일전쟁의 경위와 러·영·미의 대응 (1)
2. 청일전쟁의 경위와 러·영·미의 대응 (2)
3. 시모노세키 조약과 러·불·독 3국의 대일간섭
4. 3국간섭과 일본의 간섭 극복
5. 일본의 민 왕후 시해와 사건의 본질
6. 민 왕후 시해 이후의 일본과 러시아의 ‘아관파천’
7. 베베르-고무라 각서와 로바노프-야마가타 의정서
8. 러시아의 만주 우선 정책과 고종의 환궁
9. 러시아의 여순·대련 점령과 영·일의 대응
10. 로젠-니시 협상과 일본의 우위 확보

제4장 러일전쟁과 일본의 한국 병합
1. 러시아의 만주 점령과 일본의 대응
2. 러시아의 철병 약속 불이행과 ‘1901년 3∼4월의 전쟁 위기’
3. 영일동맹과 러시아의 대응
4. 러시아의 ‘러청만주철병협정’ 위약과 일본의 대응
5. 러시아의 고립과 일본의 대러개전
6. 전쟁의 추이와 포츠머스 조약
7. 러일전쟁과 한국

제5장 전후의 정황과 일본의 한국 병합
1. 러시아의 대일견제와 을사보호조약 이후의 한국 정황
2. 미국의 대일압박과 러시아의 대일복수
3. 러·일의 접근과 제1회 러일협약
4. 러시아의 대일외교 지원과 정미7조약
5. 미국의 대일견제와 루트-다카히라 협약
6. 태프트 정부의 반일정책과 일본의 동향
7. 일본의 만주 독점 기도와 러시아의 대미·대일제휴론
8. 녹스의 만주제철도중립화 제의와 그 실체
9. 제2회 러일협약과 일본의 한국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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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역)   자   약   력
지은이 최문형(崔文衡)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문학석사)
서강대학교 대학원(문학박사)
미국 시카고대학 수학
한양대학교 문리대 교수
한양대학교 인문대학장
역사학회 회장
현재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저서
列强의 東아시아 政策(일조각, 1979)
帝國主義時代의 列强과 韓國(민음사, 1990)
한국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지식산업사, 2001)
韓國をめぐる帝國主義列强の角逐(東京:彩流社, 2007. 10. 출간 예정)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지식산업사, 2001 / [개정판] 2006)
閔妃は誰に殺されたのか(東京:彩流社, 2004)
국제관계로 본 러일전쟁과 일본의 한국병합(지식산업사, 2004)
日露戰爭の世界史(東京:藤原書店, 2004)
韓英修交 100年史(공저/1982)
韓美修交 100年史(공저/1982)
韓露關係 100年史(공저/1984)
露日戰爭前後 日本의 韓國侵略(공저/1986)
明成皇后 弑害事件(공저/민음사, 1992)
淸日戰爭 前後 韓國과 列强(공저/1994)
歷史の共有休としでの東アジア(공저/東京:藤原書店,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