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맨발로 서울에 오다 상
 
 도서분류 철학.종교
지은이
옮긴이 : 권혁인
면 수 : 320
:  \13,000
출간일 : 2017/08/16
판 형 : 신국판
ISBN : 978-89-423-9025-0(0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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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도덕경에 실망하다

 

 

초등학교 5, 6학년쯤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일러주신 주자십회朱子十悔에 많이 감동했다. 중학교 다닐 때 박종화 본 삼국지를 읽으면서 문체가 고풍스럽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정지상의 한시漢詩 송인送人을 배울 때는 가슴에 물결이 일렁거렸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교양한문을 수강했고 군대 가서는 중용中庸을 비롯해 사서四書를 읽기 시작했다. 도덕경道德經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도덕경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는 말로 시작된다. 흔히 는 도일 수 있으나 늘 그러한 도는 아니다”, “말로 할 수 있는 도는 참 도가 아니다라고 옮긴다. 그러면 목사와 신부들이 전하는 예수의 도, 부처님 말씀이나, 큰 스님들이 남긴 수많은 법언은 도가 아니란 말인가? 내 능력으로는 알아들을 수도, 번역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김용옥이란 이가 교육방송(EBS)에서 노자를 강의한다고 했다. 젊은 시절 그가 지은 여자란 무엇인가를 읽다가 덮어버린 기억이 있어서 탐탁치는 않았지만, 뭐라고 하는지 보자는 마음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하지만 두어 번 보다가 더는 보지 않게 되었다. 횡설수설, 좌충우돌은 말할 것도 없고, 번역조차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경숙이란 이가 김용옥을 비판하면서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을 냈다. 그리고 도덕경을 완역했다는 책도 펴냈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도 그런 번역이 나오는 근거를 알 수 없는 데다가 앞에서 한 말과 뒤에서 한 말이 달랐다. 설명이 안 되는 곳은 다른 고전을 끌어다가 쪽수를 채우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어떤 곳은 그렇게도 비난하던 김용옥의 풀이를 말만 조금 바꾸어 놓았다.

다른 해설서도 이와 다를 바 없으니 이래 가지고야 어찌 도덕경을 이해할 수 있는지, 이런 번역이 어떻게 긴 세월 동안 심오한 진리로 대접받아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도덕경은 마음으로 읽어야지 자의字義나 한두 글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한다. 웃기는 소리다. 무슨 신통력이나 천리안을 지녀야 도덕경을 읽을 수 있단 말인가? 고문古文이 으레 그런 것이라면 어떻게 이런 글을 가지고 사람들 사이에 뜻을 주고받고 학문을 하고 정치를 했단 말인가? 도덕경에 대한 실망과 의문은 깊어만 갔다.

 

 

오역과 오해, 노자를 죽이다

 

 

도덕경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오해와 환상으로 만신창이가 된 것은, 노자老子 사상의 핵심이라고 하는 무위無爲를 잘못 번역한 데서 시작되었다.

무위는 하지 말라, 아는 척, 잘난 척 나서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함이 없음따위로 옮겨왔으니 그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아마 번역한 사람도 함이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것이니 온갖 상상이 꼬리를 물고, 생각에 생각을 더하다가 마침내 다다른 곳이 노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온갖 이론과 거창한 형이상학이다. 하지만 텍스트 번역조차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제아무리 거창한 해설을 붙여 놓는다고 한들 그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먼 옛날에 쓴 글이니 문법을 따라 풀이하기는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곽점본郭店本(죽간본竹簡本, 초간본楚簡本), 백서본帛書本, 하상공본河上公本과 같은 다른 판본도 있지만, 오늘날 도덕경이라고 할 때는 후한後漢이 망한 뒤인 삼국시대에 위나라의 왕필(王弼 : 226-249)이 펴낸 노자도덕경주老子道德經註를 가리키는 일이 많다. 이를 왕필본王弼本, 또는 통용본通用本(통행본通行本)이라 한다. 한나라 때 중국 문화의 기틀이 잡힌 것을 생각한다면 삼국시대에 정리된 글을 고문古文 문법으로 풀이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기나 하겠는가. 더구나 죽간본을 뺀다면 서로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도덕경이 무슨 윤리 해설서쯤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도덕경이란 이름은 전한前漢 말기에 유향劉向이라는 학자가 제1~37장을 도경道經, 38~81장을 덕경德經으로 나눈 데서 비롯된 것이지 윤리도덕과는 별 상관이 없다. 불로장생을 꿈꾸는 신선술도 아니고 단전호흡도 아니며 무예나 도술비급道術秘笈인 것은 더욱 아니다. 거창한 형이상학形而上學도 아니다.

도덕경은 처세서다. 제 몸과 목숨을 중히 여길 일이지 잘난 척 나서서 명을 재촉하지 말라는 말, 오로지 하지 말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도덕경을 둘러싼 수많은 오해와 환상이 마치 정설인 양 활개를 치며, 죽은 노자를 불러내 다시 죽이고만 있으니 참으로 슬프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나는 노자가 실존 인물이라고 믿는다. 스스로 겪은 일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말들이 도덕경곳곳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는 노자가 팔을 잘리는 끔찍한 형벌을 받았음(攘 無臂, 69)을 짐작케 하거나, 몸을 피해 서쪽으로 달아나는 까닭을 말한 글귀(子孫以祭祀不輟, 54)도 있다. 그렇다면 달아나는 길에 관령關令 윤희尹喜에게 붙잡혔고 그의 부탁을 받아 경을 남겼다는 사기史記의 기록도 사실일 것이다. 도덕경은 팔을 잘려 글을 쓸 수 없었던 노자가 구술하고 윤희(라고 생각되는 이)가 받아 적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래서 도덕경이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아리송한 글이 된 것은 아닐까? 다들 알다시피 같은 한족漢族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쓰는 한어漢語는 곳에 따라 크게 다르다. 교통·통신이 매우 불편했던 고대였으니 그 차이는 오늘날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다. 나라 출신 노자는 자기 식으로 말을 했고 윤희는 그 나름으로 받아 적었을 터다. 그러다 보니 뒷날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이 노자가 본디 한 말을 잘못 이해했으며, 오해는 오해를 부르고, 마침내 노자가 생각하고 말하려 했던 바와 전혀 다른 풀이가 전승되어 온 것은 아닐까?

 

 

노자, 맨발로 서울에 오다

 

 

나는 한학漢學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집안의 학통學統을 이은 바도 없다. 재주 또한 변변치 못하고 융통성조차 없어 오로지 자전字典과 한문법에 의지하여 도덕경을 풀이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몇 번씩이나 원고를 뒤엎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만나게 된 노자의 모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사람들에게 조롱과 면박이나 당하다가 마침내 미움을 사게 되자 목숨이나마 지키려고 달아나는 늙고 추레한 선비였을 뿐이다. 노자의 민낯이다.

민낯을 드러낸 노자가 온다. 온갖 오해 속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신발조차 읽어버린 노자가 마침내 내가 쉴 만한 곳을 찾았노라며 온다. 내게 덧씌운 온갖 껍데기는 이제 그만 벗겨 달라며 온다. 가시에 찔리고 돌부리에 채이며 흙먼지와 때에 전 맨발로 온다. 부르튼 그 발을 씻기고 생채기에 약을 발라 처매주어야 옳지 않겠는가?

부끄럽고 저어하는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몇몇 분들이라도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얼치기 서생의 글을 출판하겠노라고 모험을 택하신 김경희 사장님, 늘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이인형 선배, 크라우드 펀딩으로 뒤를 받쳐 주신 신현익 사장님과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 멋진 표지 그림으로 책을 빛내 주신 화가 김용호 형님, 많은 고생을 하신 편집자 김연주 님께 참으로 고맙다는 말씀을 올린다. 사랑하는 아내 정선영에게는 짠하고 애틋한 마음뿐이다.

 

 

 

 

2017년 월

돌아가신 어버이 영전에 엎드려

권 혁 인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천편일률적 해석에 반기를 들다


그동안 잘못 해석되어 왔으나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던 도덕경의 참뜻을 밝힌 문제작이 출간되었다. 옮긴이 권혁인이 4년에 걸쳐 해석한 이 책은 왕필본王弼本을 저본으로 삼은 한중 유수 학자들의 천편일률적인 해석과 끊어 읽기에 반기를 들고 곳곳에 메스를 들이댔다. 그럼에도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워 노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고스란히 전달해 준다. 가히 노자와 도덕경연구에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명쾌한 한문법 해설로 난해했던 도덕경이 뚜렷이 보이다

 

이 책은 현학적이고 난해하게 여겨져 왔던 도덕경에 대한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타파한다. 예컨대, 22장의 곡즉전曲則全 왕즉직枉則直의 의미를 이름난 학자들은 굽으면(굽어야) 온전해지고, 구부리면(구부려야) 펼 수 있다고 역설로 이해한다. 그러나 옮긴이는 굽어야 온전한데, 굽었다고 해서 펴려 한다고 위를 경계하는 노자의 일침으로 명쾌하게 해석한다.

이렇게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해석이 가능했던 것은, 옮긴이가 한문법의 특성을 간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자 자의의 다양성과 그 행간에 숨은 드라마를 읽어내기 때문이다. 예컨대 노자가 윤희의 지난날을 추측하는 대목(15, 기약객환혜其若客渙兮)이나 제8장의 상선약수上善若水의 해석 등은 옮긴이가 한자 한 글자 한 글자의 뜻은 물론 드러나 있지 않은 극적 배경까지 날카롭고도 정밀하게 포착하고 있음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비로소 드러나는 노자의 삶과 고뇌

 

독자들이 이 책으로 누리는 또 하나의 혜택은, 비로소 노자의 참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자에 대해 알려진 바는 장자》 〈천운, 사기》 〈노자한비열전에 나오는 몇 구절 정도이다. 지금까지 도덕경주해자들이 노자를 읽어내지 못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옮긴이는 도덕경에서 노자의 이력과 처지를 읽어내며 그가 겪은 삶의 경험들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리를 날것 그대로 담고 있다. 옮긴이에 따르면 노자는 팔을 잘리는 형벌을 받고 목숨이나마 구하여 본성을 지키고자 달아나다가 윤희를 만난다. 관령 윤희의 삶을 헤아리고 충고해 주기도 하며(15), ‘하기를 경계하라고 하면서도 왕에게 벼슬자리를 달라고 청하는(42) 자신을 한탄하기도 한다(45). 시대에 인정받지 못하고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노자의 민낯이다. 따라서 잘난 척 나서지 말고, 뒤로 물러서서 본성을 지키라는 가르침은 노자의 고뇌에 찬 독백이자 절절한 진실이 묻어나는 처세 지침인 것이다. 이 책이 그 어느 도덕경주해서보다도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하고자 했던 본디 메시지를 실감나고도 가감 없이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천 오백여 년을 뛰어넘어 여러 각도에서 읽히는도덕경

 

이 책에는 노자와 윤희, 노자와 왕, 노자와 제후, 경대부, 와 대화가 많이 등장한다. 노자가 미관말직이라도 본성을 지킬 수 있다면 된 것이라며 윤희를 위로하는 장면은 인생 선배 노자의 조언으로 읽히고, 민생을 잘 살피고 제도와 규제는 적은 것(65)이 민생 중시의 치도治道임을 역설할 때에는 경영서로도 읽을 수 있다. 또한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은 천박한 것微明일 뿐 본디 모습으로 돌아간다’(36)는 메시지는 문명 비판서의 한 대목이라고 해도 좋다.

따라서 노자, 맨발로 서울에 오다는 꿈을 잃고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40대 직장인에서부터 지도층, 욕망과 거짓된 삶을 되돌아보고 싶은 현대인 그 모두에게 시공을 뛰어 넘어 특별한 위로와 희망을 줄 것이다. 노자가 삶 속에서 길어 올린 맑은 샘물 같은 지혜를 서둘러 만나기를 권한다.

 

 

 

 목    차

상 권

 

들어가는 말 4

차 례 9

1이름이 무엇이든 본질은 변함이 없도다 13

2꾸미지 말지니라 21

3무위無爲를 행하니 다스리지 못함이 없도다 29

4하늘 이법을 본받음이 먼저이니라 35

5천지도 무심하고 성인도 무심하다 41

6아득한 골짜기 현빈玄牝 47

7몸을 돌보는 것이 먼저 할 일이니라 53

8낮은 곳으로 내려가기를 옳게 여기라 57

9공이 따르거든 스스로 물러날지니라 63

10내가 하겠다고 나서지 말라 69

11비어 있어야 쓰임새가 생기느니라 77

12향락을 버리고 생존을 취하라 81

13제 몸 먼저 살필지니라 85

14의 실마리 91

15그저 낡아갈 뿐 새로 이루려 하지 말라 99

16 를 좇으니 몸은 위태롭지 아니하리라 107

17기리고 높이는 말을 근심할지니라 115

18도가 있으면 인의충효는 쓸모없느니라 119

19성지聖智와 인의仁義를 끊어버리라 123

20나 홀로 어리석은 듯하나 127

21변치 않는 이름이 있어 만물을 가려내느니라 135

22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나니 139

23도자道者를 따를 것이 아니라 도를 따를지니라 149

24를 구한다면 군더더기를 치우라 155

25는 천하를 다스릴 만한 근본이니라 161

26빈 수레가 요란하니 짐을 덜고자 하지 말라 167

27죽게 될 사람 구하기를 옳게 여기라 173

28하늘을 배워 겸손할 뿐 잘난 척 나서지 말라 185

29사치와 교만을 버릴지니라 195

30순리順理가 아니라면 서둘러 그칠지니라 201

31전승戰勝을 기리는 것은 살인을 즐기는 바라 209

32족함을 알고 그친다면 위태롭지 않으리라 219

33넉넉한데도 더 얻으려 하니 허물이 크도다 227

34널리 이름나더라도 작은 이름에 만족하라 233

35가 어찌 맛이 없겠느냐 239

36순리를 거스른다면 이룬다 하여도 천박하도다 245

37일을 지어내지 않으니 고요하도다 251

38겉치레는 버리고 고갱이를 취하라 257

39옥구슬처럼 빛나려 하지 말지니라 265

40명리名利는 잃어도 본성을 지키니 도의 효용이라 273

41라고 이름 짓지 말라 277

42물고기를 못 잡았다 해서 그물을 찢겠는가 289

43무위無爲와 더불어 함께 가자꾸나 299

44족함을 알고 그치면 본성을 해치지 않으리라 305

45청정淸淨함이 천하를 다스려 바르게 하리라 309

46족함을 알면 본성을 지키기에 모자람이 없도다 315

 

하권 

 

 

 

차 례 4

47성인 닮기를 옳게 여기면 다 이루어지느니라 9

48늘 무사無事로써 천하를 다스릴지니라 13

49성인은 백성들 마음을 제 마음으로 삼느니라 17

50넉넉하게 살기보다 본성 지킬 길을 먼저 찾으라 23

51를 높이고 덕을 귀히 여길진저 29

52드러내지 않으니 현명하도다 33

53훔친 것으로 사치를 즐기니 도라고 할 수 없노라 43

54어진 이에게 기댄다하여 참된 덕은 아니니라 49

55하늘 이법을 따르지 않으면 일찌감치 목숨이 다하리라 57

56현동玄同, 본디 천하가 귀히 여기는 바 67

57무위無爲, 무사無事, 무욕無欲 73

58모든 것은 겹쳐 있으니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 81

59무위無爲하니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89

60성인은 사람들을 근심하지 않느니라 95

61크게 되려거든 낮추어 겸손할지니라 101

62를 구하여 얻으면 재앙도 면하리라 109

63쉽다고 해서 소홀히 여기면 반드시 어려움이 닥치리라 117

64첫 마음 그대로 할 것이며 늘 무위無爲하라 123

65나라를 다스리는 유일한 법식 133

66낮추기를 옳게 여기니 다툼이 없도다 139

67나의 도가 어찌 작겠는가 145

68전쟁을 옳게 여기는 학문은 배우지 말라 153

69가벼이 겨룸보다 더 큰 화는 없느니라 159

70자신을 알지니라 167

71거죽만 알면서도 다 아는 척하니 병이로다 173

72백성이 으뜸이니 으르거나 억누르지 말라 177

73하늘 이법은 엉성해 보이나 놓침이 없느니라 183

74지님은 근심이니 덜고 깍아낼지니라 189

75목숨을 귀히 여길지니라 195

76유약柔弱이 견강堅强보다 나으니라 203

77남는 것을 덜어 모자란 것을 채우라 209

78약함이 강함을 이기나니 변치 않는 진리로다 215

79문서를 위조하지 못하게 하라 221

80참으로 아름다운 나라가 있나니 227

81배워 따를 뿐 논쟁하지 말라 235

 

 

 

 

 저  (역)   자   약   력

권혁인

 

대전에서 태어났다.

1981년 서울대 사범대학에 진학하여 지리교육을 전공하고 고등학교 지리 교사로 임용되었지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건설 투쟁에 참여하면서 1989년 해직되었다. 그 뒤 전교조 노래패로 활동하다 오페라 연출가 문호근을 만나 음악극을 배우면서 여러 공연 무대에 섰다.

1994년 중학교 사회 교사로 복직한 뒤 몇 년 동안 교사 극단 징검다리에서 연극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교직을 그만둔 뒤 음악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첫 저서 뮤지컬 산책(푸른 길, 2015)을 냈으며, 요즘은 도덕경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