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 독립운동의 상징 심산 김창숙
 
 도서분류 전기 평전
지은이 : 김기승
옮긴이
면 수 : 224
:  \14,000
출간일 : 2017/12/15
판 형 : 변형판
ISBN : 978-89-423-9039-7(04990)
검색수 126 번째 검색
  도서주문권수 입력: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한국은 유교 국가이다.”
“유교가 죽으면 나라가 죽고, 유교가 살면 나라가 산다.”

 

  심산 김창숙은 이러한 믿음을 갖고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 운명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유교와 유림의 가치를 입증하고자 헌신하였다. 그에게 유교나 유학은 탐구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으며, 유림 또한 자신과 상대되는 객관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 동일시하였다. 그는 “알인욕존천리”, 즉 ‘인간의 이기적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라’는 단순 명쾌한 진리가 “치국평천하”, 즉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만드는 일’의 요체라고 믿었다. 그는 이러한 유교적 대의를 실천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유교적 인의의 실천이라는 도덕적 명제를 국가사회에도 적용함으로써 한국이 당면한 자주독립과 평화통일을 달성하는 유교식 해법을 제시하였다. 이 점에서 그는 유교를 독립운동의 사상적 원천으로 삼았던 유림 독립운동의 상징이라 할 만한다.
  한국 근대사상사와 민족운동을 이해하는 데 유교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유교는 한국인의 삶 전체에 관여하는 사상과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기에 한국인들이 서양의 근대와 조우하여 근대에 대해 사유하고 국가와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교는 기본적 바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국근대 사상사의 전개과정은 한편으로는 유교에 대한 비판과 극복과정이며, 또 한편으로는 유교의 변혁과 발전 과정이기도 하다. 전자는 서양 근대사상의 관점에서 민족문제를 해결한 개화지식인들의 경우이다. 후자는 유교적 관점에서 민족문제를 해결한 유교 지식인들의 경우이다.
  심산 김창숙은 유교를 신봉하는 유림의 일원으로서 민족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유교 지식인이었다. 박은식朴殷植, 신채호申采浩, 장지연張志淵, 이상룡李相龍 등과 같은 유교 지식인의 경우에는 청말 변법사상가들의 번안을 거치기는 하였지만, 서양의 근대적 지식의 수용을 통해 유교의 변혁과 혁신을 꾀했다. 박은식과 장지연은 주자학 대신에 양명학을 통해 군주 중심의 유교에서 인민 중심의 유교로의 혁신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국망 이후에는 유교를 자신들의 구국운동의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신채호는 성균관 박사 출신의 유교 지식인이지만, 구한말 구국계몽운동 시기부터 유교를 비판했으며, 국망 이후에는 무정부주의와 같은 서양 근대사상을 자신의 신념체계로 받아들였다.
  김창숙도 이들 혁신적 유교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서양 근대사상의 수용과 유교의 혁신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과는 달리 김창숙은 유교를 일관되게 자신의 신념체계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사상과 행동을 유교 이외의 다른 사상과 이론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그의 독립운동은 유림의 일원으로 혹은 유림의 대표로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독립운동시기 나아가 해방 이후까지도 유림의 일원으로서 통일 독립운동을 전개한 대표적인 유교 지식인이었다.
  그는 한국 근현대사의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일관성 있게 유교적 가치를 고수하면서 민족과 세계가 추구하는 이상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그는 이론가나 학자가 아니라 실천가였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행동과 실천을 설명하는 이론과 지식 체계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독립운동시기 자신이 직접 쓴 기록물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이론과 사상이 분열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그는 항상 자신의 생명을 던지는 최일선의 투쟁 현장으로 달려갔다. 기록과 흔적은 적에게 자신을 노출시키고 분석 당하는 빌미가 된다. 그는 다변가이며 달변가였다. 원칙이 정해져 있고 소신이 분명하고 자기희생의 각오가 있기에 그의 말에는 힘이 있고, 행동에는 과단성이 있다.
  심산 김창숙의 삶은 유교로 무장한 열혈투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말미암은 식민 지배와 민족분단이라는 비극에 맞서서 온몸으로 싸웠다. 그의 투쟁 기록은 해방 이후 회상기 혹은 자서전 형태로 정리되었다. 이 글에서 사용한 일차적 자료는 바로 심산 자신이 해방 후에 기록한 자서전이다. 그의 삶이 함축하고 있는 역사성 때문에 그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축적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그의 독립운동을 객관적이고 종합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이 책은 심산의 회상기를 비롯하여 이 책 말미에 수록한 참고문헌에 나타난 성과들을 정리한 것이다. 심산 김창숙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그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투쟁했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살펴봄으로써 유림 독립운동의 면면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심산 김창숙 문존》과 《심산 김창숙의 사상과 행동》을 간행하여 심산 연구의 길잡이가 되었던 심산사상연구회에서는 5년 전 심산의 독립운동과 사상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김희곤 관장은 이번의 심산 평전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심산의 세계를 제대로 배우는 즐거움을 갖도록 해 주었다. 지식산업사에서는 투박한 원고를 꼼꼼히 읽고 다듬어서 멋진 책으로 만들어 주었다. 《유림 독립운동의 상징, 심산 김창숙》이 간행되기까지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2017년 12월
김기승​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유교 지식인의 표본 김창숙의 평전

 

  근현대 인물 연구가 활발한 가운데 유교 지식인으로서 심산 김창숙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한 평전이 경상북도독립기념관 인물총서 열네 번째로 출간되었다. 심산을 다룬 다른 여러 저술들과 비교해 볼 때, 이 책의 미덕은 심산 고유의 사상과 행동에 주목한 것을 들 수 있다. 김창숙은 유림의 일원으로서 민족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유교 지식인이었지만, 유교의 변혁을 추구했던 박은식, 신채호와 같은 혁신적 유교 지식인들과 달리 유교를 일관되게 자신의 신념체계로 견지했다는 것이다. 배성룡과 조소앙 등 근대 인물과 사상 연구에 정진해 온 저자는 심산의 삶과 일화를 꼼꼼하게 직조(織造)해 나감으로써 그가 왜 진정한 유림 독립운동의 상징인가를 논리정연하고도 명쾌하게 형상화하였다.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

 

  저자는 심산의 사상과 행동에 성주 지역 한주학파 이진상의 학문을 계승한 아버지 김호림의 가르침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심즉리설을 주장한 한주학파는 서양인들 마음에서도 보편적인 의리를 발견하고자 하면서 서양 문물을 개방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아버지는 너그러운 교육으로 아들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신분제가 해체되어 가는 시대상을 일깨워 주었다. 동학농민운동 전후 아이들을 농민들과 섞여 앉게 한 일화는 심산이 《주역》의 이치를 몸으로 터득하게 된 계기였을 것이다. 이로 볼 때 심산이 대한협회 성주지회 총무로서 구습 혁파와 계급 타파를 역설한 일이나, 중국에서 이념과 정파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방략을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선택하면서 독립운동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이론가보다는 실천가: 삶 그자체로서 유교 실천

 

  “심산에게 유학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심산은 한국의 독립을 전 세계에 호소한 〈파리장서〉를 제출하여 제1차 유림단 사건을 일으켰고, 중국에 망명해 있다가 독립운동 기지 자금 마련을 위해 국내에 몰래 잠입하기도 하였으며, 상하이에서 활동하다 한국인 스스로의 독립운동 역량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임을 깨달아 북경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다. 과단성 있는 실천력의 소유자 심산의 일생은 1896년 항일의병 봉기를 시도했던 아버지의 용단과 겹쳐진다. 김창숙이 나태해질 때마다 곁에서 꾸지람을 서슴지 않았던 어머니 인동장씨도 심산이 평생 대의(大義)에 투신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또한 김호림이 아들 심산의 교육을 부탁한 이승희가 성주 지역 유학자들 통합 운동을 벌인 것도 제자 심산의 강한 실천력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의병 기의가 실패한 원인을 지역사회 공동체적 결속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고 유교를 그 결속의 실천적 가르침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의지는 이후 항일독립운동을 벌일 때나 이념의 차이를 가리지 않고 특정 이념에 대한 경도 없이 민주공화국 건설을 지향해 나가는 방법론의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해방 후 창립된 유도회와 성균관대는 심산의 그러한 정신의 소산이라고 하겠다. 

 


한계와 성과

 

  저자가 지적하듯이, 곽종석이 작성하고 김창숙이 제출한 〈파리장서〉 내용은 근대적 국민국가 개념에 접근한 것이기는 하나 전통적 군주와 사직(社稷) 개념에서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김창숙은 부모님과 스승 이승희 등 성주 지역 유림의 전통을 한 단계 발전적으로 계승해 유교를 통한 조국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부단히 모색한 화신이자, 치열한 민족정신의 현현이었다. 그의 일생은 “한국 민족주의 발전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심산의 거룩한 삶과 투쟁은 한국 근현대 민족주의 발전에 유교가 기여했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유학을 수호하되 근대정신을 아울러 수용하면서 유학의 진정한 발전을 지향한 유림의 바람직한 표상이라고 할 것이다. 

 목    차

머리말5

  

제1장 출생과 성장 / 13
동강 김우옹의 13대 종손으로 출생… 14
아버지 김호림의 가르침…17
어머니의 가르침과 누이동생의 도움… 23
전통적 유학 공부 …27
동학농민운동 시기의 역사의식 각성… 35
한주학파의 문하생…41

 

제2장 구한말 구국운동 / 49
을사오적 처단 상소운동 참여…50
국채보상운동 참여와 성명학교 설립… 55
대한협회 성주지회 결성… 67
일진회 성토운동… 77

 

제3장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 85
유학 공부를 통한 망국의 실의 극복…86
유림단의 파리장서운동 주도…94
파리장서의 내용 분석…103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여…118
대중국 외교활동…122
중한호조회의 조직…131
북경에서의 활동… 140
독립전쟁 준비 방략의 채택…153
국내에서의 군자금 모집 활동… 162
의열투쟁 방안 채택…164
독립운동 진영의 통일운동과 피체… 171
옥중 투쟁… 173

 

제4장 해방 이후의 활동/ 187
임시정부 중심의 반탁독립운동 참여… 188
유림계의 통합과 혁신운동 추진… 196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활동… 198

 

제5장 결어 / 203

 

심산 김창숙 연보… 210
참고문헌… 216
찾아보기… 218​ 

 저  (역)   자   약   력

김기승金基承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사학과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순천향대학교 인문과학대학장, 아산학연구소장, 스마터아카데미원장,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순천향대학교 향설나눔대학 교수이며 인문학진흥원 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한국근현대 사회사상사 연구 – 배성룡의 진보적 민족주의론》( 1994), 《21세기에도 우리문화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공저, 2003), 《조소앙이 꿈꾼 세계 – 육성교에서 삼균주의까지》(2003), 《대한민국의 기원, 대한민국임시정부》(공저, 2009), 《제국의 황혼》(공저, 2011), 《고불 맹사성의 생애와 사상》(2014), 《아산의 독립운동사》(공저, 2014),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론가 조소앙》(201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