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인, 그 종족과 문화
 
 도서분류 서양사
지은이 : 박영배
옮긴이
면 수 : 448
:  \25,000
출간일 : 2018/01/05
판 형 : 신국판
ISBN : 978-89-423-9037-3(9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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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주문권수 입력: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책을 펴내면서

 

 

  기원전 10세기 후반 그리스어와 라틴어 고전 작가들이 켈토이(Keltoi)또는 갈리(Galli)로 불렀고 줄리어스 시저(Gaius Julius Caesar)가 《갈리아 전기戰記》(Gallic War)에서 기록한 고올인(Gauls), 그리고 영국사에서 흔히 부르는 켈트인(Celts)은 과연 누구였을까? 서유럽에서 이들이 누린 문화 - 청동기 시기의 고분 문화, 기원전 13세기 도요지 문화, 철기시기의 라떼느 및 할슈타트 문화 - 는 어떠했으며, 한때 로마를 초토화시키고 이탈리아는 물론 발칸반도, 소아시아를 공략
하고 보헤미아, 실레시아 상류 및 헝가리에 정착하였으며 멀리 이베리아 반도까지 영토를 확장, 정착한 켈트이베리아인(Celtiberians) 이 되는 과정은 어떠했고, 그들의 종교와 신화, 용맹한 전사(戰士)와 여성은 켈트부족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이러한 많은 의문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한 때는 필자가 30여 년 전 런던대학(SOAS)의 방문 학자로 연구하던 19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가을 학기에 필자는 당시 유럽의 저명한 역사언어학자인 바이넌(Th.Bynon) 교수에게서 한 학기동안 역사언어학 강의를 들으면서, 영국에 오기 전 영국 레딩대학의 게르만어학과 인구어학 교수인 록우드(W. B. Lockwood)의 《인구어학》(Indo-European Philology)을 이미 읽은 터였으므로, 인구어비교언어학(印歐語比較言語學)에 대한 넓은 안목을 다시금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런던대학의 방문학자로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던 1987년 5월의 어느 날, 필자는 바이넌 교수의 추천으로 영국 캠브리지대학에서 열리는 역사영어학 국제학술회의(4차)에 참석하였다. 귀국 직전에 처음으로 역사영어학(English Historical Linguistics)이라는 영어사 분야의 더 넓은 세상을 엿볼 수 있었고 여러 분야의 학자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귀국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캠브리지대학의 저명한 고고학자인 렌프류(Colin Renfrew) 교수가 《고고학과 언어》(1987)라는 책을 출판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인도유럽어에 관심이 있던 내 부탁으로 당시 캠브리지대학에서 연구하고 있었던 김민자 선생(서울대 언어학과)이 보내준 그 책에서 인도유럽어에 관한 그의 새로운 학설 가운데 ‘켈트인의 기원’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서 인도유럽어에서 켈트인의 언어와 그 기원에 관해 막연하게나마 점점 더 많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캠브리지 학회를 계기로 필자는 영어사 또는 역사영어학 전반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되었고, 귀국한 뒤에도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여러 대학을 비롯하여 유럽의 몇몇 나라(핀란드, 폴란드,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2-3년에 한 번씩 열리는 역사영어학 국제학회에 빠짐없이 참석하였다. 그럴 때마다 ‘켈트인’에 관련된 자료나 연구서를 꾸준히 수집하였다. 필자의 전공분야의 하나인 ‘영어사’에서 선사(先史) 시기의 역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민족인 ‘켈트인’에 관한 역사와 문화는 한국에서 고조선의 역사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사료로서의 비중과 가치가 높기 때문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 필자는 전공분야인 영어사 특히 고·중세 영어학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필요와 이 분야의 최신 연구 자료를 섭렵하고자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저명한 고대영어 분야의 미첼 교수(B. Michell)와 일본 도쿄대의 중세영어 문헌(필사본) 연구의 독보적인 학자였던 구보우치 교수(久保內端郞 T. Kubouchi)의 추천으로 연구기금을 받아 캐나다 토론토대학 중세연구소(CMS)의 연구기금 교수로 가게 되었다〔두 분은 이제 모두 고인(故人)이 되었다〕.
  토론토 대학에서는 로바츠 도서관(Robarts)과 대학 소속 중세연구소와 인접한 교황청 소속 중세연구소(PIMS)의 고문헌실에 각각 작은 연구실(carrel)과 컴퓨터를 마련해 주었다. 필자는 이곳에서 《영어사》(1998) 및 《앵글로색슨족의 역사와 언어》(2001)를 집필하면서 이 두 권에 적은 분량이나마 각각 켈트인의 기원과 문화에 관한 내용을 이미 서술하였던 터이었기에 귀국한 다음 언젠가 집필할 것을 염두에 두고 풍부한 자료를 갖춘 이곳의 문헌실에서 선사 영국의 선주민인 켈트인(《피터보로 연대기》에 Bryttas로 기록되고 Celtic Britons를 일컬음)과 관련된 여러 주제를 좀 더 보강하려고, 각종 자료(역사, 언어,종교, 문화, 신화, 전설 등)와 연구서를 읽어가는 한편으로 필요한 자료를 귀국 전까지 틈틈이 모으기 시작하였다.
  1998년 8월 연구생활을 마치고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열리는 역사영어학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려고 토론토 국제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필자의 작은 가방이 순식간에 도난당하는 불운을 맞았다. 그 가방에는 여권과 지갑, 비행기표를 포함하여 ‘켈트인’에 관련된 광범위한 자료뿐만 아니라, 고대 및 중세영어 전반에 걸쳐 애써 모아 놓은 고문헌에 관한 해제와 주석을 포함하여 귀국한 뒤에 집필하려고 수집한 여러 권에 해당하는 각종 귀중한 자료가 들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백응진 교수(당시 토론토대학 동아시아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후에 정년함)의 도움으로 임시 여권을 급히 만들어 영국으로 날아가서 국제학회에 참석하고 다시 토론토 공항으로 와서 귀국하기는 하였으나, 그동안 애써 찾아 놓은 자료에 대한 아쉬움은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필자는 정년을 맞이하기 전후하여 여러 해 동안 국내외에서 ‘켈트인’에 관한 연구 자료를 다시 모으면서 켈트인의 기원과 초기 역사에서부터 원고를 써내려가기 시작하였으며, 켈트인과 관련된 연구 논문이나 참고 도서를 꾸준히 구입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나갔다.
  이 분야(켈트어학)에 대한 해외의 연구는 지금까지 주로 고고학적인 연구(Cunliffe, 1997)가 주류였으며 켈트어 자체에 대한 연구는 극소수 학자들의 영역으로 활발하지 못하였다. 그 후 켈트어와 영어의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9월 중순 독일 포츠담대학의 골룸 캠퍼스에서 ‘켈트영어’라는 주제의 국제학술대회가 처음으로 열리면서부터였다. 이 학회는 콜로키엄 형식의 학술회의로 진행되었는데, 이곳에 모인 학자들은 독일, 캐나다, 아일랜드, 잉글랜드, 핀란드는 물론 스코틀랜드, 웨일즈, 콘월, 맨섬 등 켈트어 기층(基層)을 지닌 고장 출신이었다. 이들은 켈트어 자체보다는 켈트어의 기층을 간직한 영어 곧, 켈트영어(방언)가 먼 옛날 켈트어가 쓰인 나라 또는 지역에서 오늘날 영어의 한 방언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 뒤 이들의 연구 결과물이 1997년부터 계속 출간되면서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져 온 켈트어학 및 켈트영어 분야는 유럽은 물론 북미학계의 언어학자 또는 역사영어학자들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또 오늘날까지 꾸준히 계속하여 켈트어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인문학 분야 가운데 영국사 전공 학자들이 펴낸 개론 수준의 저서 또는 영어사학자의 관련 저서나 번역서에 잠깐 등장하는 켈트인에 관한 짤막한 서술 말고는 켈트인과 켈트어 전반에 걸친 주제, 특히 우리에게는 생소한 켈트영어방언 분야에 관해 오랫동안 천착(穿鑿)해 온 전공 학자들의 연구(서)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학계의 현실이다.
  필자는 켈트인에 관한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이들에 관한 역사와 언어는 말할 것도 없고, 켈트인의 독특한 사회 구조, 종교, 문화를 포함하여 신화와 전설에 이르는 여러 관련 주제가 선사시기의 영국 및 고대 영어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생각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따라서 오랫동안 준비해 온 사료에 바탕을 두고 2001년 저서에서 짧게나마 언급한 적이 있는 켈트인에 관한 서술의 연계 후속편으로 이번에 켈트인에 관한 상세한 연구서를 펴내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유럽에서 켈트인의 행적과 초기 역사를 통해 그들의 정체성을 조명해 보는 작업에서 시작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켈트인이 유럽대륙에서 누린 찬란했던 할슈타트 문화(Hallstatt culture)가 어떻게 하여 이들에게 부(富)와 풍요를 가져다주었고, 당시 그리스 교역상을 통해 수입한 그리스 예술품에 자극을 받아 새롭고 활기에 넘치는 예술 표현이 가득한 찬란한 문화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를 소개하려고 하였다.
  사실 기원 후 4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긴 기간에 걸쳐 선사 영국의 선주민이었던 켈트인의 존재는 유럽 역사는 물론 영국의 역사에서 거의 잊혀진 민족으로 사라졌다. 5세기 중엽 브리튼에 들어온 게르만족(앵글로색슨족)이 정복자로 선주민이었던 켈트인을 변방으 로 쫓아낸 것은 그들이 피정복자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15세기 말 무렵 로마의 역사가인 타키투스의 《아그리콜라》(Agricola) 필사본이 로마인의 손에 들어왔고 그로부터 5-10년이 지난 뒤 이것은 밀란(Milan)에서 인쇄 형태로 발간되었다. 한편, 시저의 유명한 《갈리아 전기》는 16세기 초 베니스에서 발간되기에 이르렀다.
  18세기 중엽 이후 유럽에서 언어학자들의 역사언어학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인도유럽어에 켈트어군이 포함되고, 19세기에 들어와 유럽 고고학 분야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드러내자 고고학상으로도 켈트인의 존재와 그들의 문화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나타나면서, 켈트인은 ‘잊혀진 민족’이 아닌 고고학자와 언어학자의 본격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마침내 역사에 등장하였다.
  20세기에는 유럽의 철기시대의 것으로 드러난 켈트인의 매장지에 대한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그들의 고분과 부장품으로 인해 켈트인과 관련된 새롭고 놀라운 발견이 계속 이어지면서, 켈트인과 켈트 사회가 역사의 한 가운데로 성큼 들어서게 된 것이다.
  켈트인의 유물 발굴의 고고학 성과로 드러난 켈트 문화의 새로운 양상인 라떼느 문화(La Tène culture)의 매장 의식에서 엿볼 수 있는 마차와 수레 제작기술은 유럽의 어느 다른 민족과도 견줄 수 없는 켈트인의 놀랍고도 정교한 공학 기술이었다. 이것이 로마인에게 전수된 것은 켈트인의 뛰어난 우수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에 지나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켈트인의 신화와 전설, 그들의 독특한 사회제도와 종교를 조명하는 한편, 한때 유럽의 문화와 문명의 강국이었던 로마제국을 약탈한 켈트인 전사(戰士)와 용맹한 켈트 여성, 그리고 켈트어의 계보(系譜), 특히 오늘날에도 먼 옛날 켈트어를 사용한 조상의 후예가 거주하고 있는 나라 또는 지역에서 그들의 입김이 면면이 서려 있는 켈트어 기층을 지닌 켈트영어(방언)가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쓰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서술하려고 하였다.
  영어의 긴 역사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듯 서술되고 있는 켈트인은 유럽의 북서쪽 변방에 위치한 섬나라와 여러 지역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 선사시기의 유럽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살고 있었다. 이들은 영토 확장과 교역을 위해 이베리아 반도에서 지중해를 넘어 이집트, 소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걸쳐 그들 나름대로 독특하고 풍요로운 켈트 문화를 끊임없이 계승하고 발전시켜 왔다. 이들은 한때 고대 유럽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제국의 중심이었던 마케도니아 를 초토화하였고, 가장 신성한 지역인 델피아를 약탈했으며, 로마를 침공하여 로마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호전적인 민족이었다. 영원불멸과 내세를 믿었고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것이 이상적인 삶의 방식임을 알았으며 선(善)을 지고(至高)의 원리로 받아들이는 켈트인의 사상은 훗날 아일랜드 문학에 스며들어 오늘날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책에서는 켈트인의 역사와 문화뿐만 아니라 이들이 사용한 켈트어 기층에 바탕을 둔 이른바 ‘켈트영어’가 다른 유형의 영어와 달리, ‘켈트어’로서 특별한 언어적 속성을 지니고 있는 점, 고대 및 중세영어에 끼친 켈트어의 영향이 예상과는 달리 그리 많지 않았던 점, 그리고 오랫동안 켈트어 기층이 영어에 스며들어 또 하나의 다른 유형의 영어로 발전한 켈트영어가 쓰이고 있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의 언어상황과 일부 다른 지역(웨일즈, 콘월, 맨섬 등)에 서 켈트어가 어떤 위상으로 국가 정책으로 보존되며 유지되고 있는지,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서 정치 및 경제적인 이유로 현대영어(주로 영미영어)에 잠식당해 오다가 오늘날 일부 지역에서 쇠락의 위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를 살펴보았다.
  이 책에는 그리스 및 로마인의 인명을 포함하여 수많은 켈트어 인명과 지명이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물론 아일랜드어와 웨일즈어 또는 스코티시 게일어로 소개되어 있어서 다양한 발음과 철자가 독자들에게 언뜻 생경하게 느껴지고 때로는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발음은 될 수 있는 대로 원자료에 나타난 원음(原音)을 찾아 쓰려고 하였고, 각주에 상세하게 표기하였다. 한편 각 장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각 장의 말미에 상세한 주석(註釋)이나 필요할 때에는 해제(解題) 또는 출처를 붙여 놓았다.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 바란다.
  이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참고문헌과 자료를 얻는 데 오랜 시간과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지난 5년여에 걸쳐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유럽 및 일본 등 해외 학자들이 보내온 자료가 아니었더라면 이 책을 완성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집필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복사해서 보내 준 이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하려고 한다. 이들 덕분에 토론토공항에서 순식간에 잃어버린 자료의 거의 대부분을 복원하게 된 것은 매우 다행한 일로 여기고 있다. 다만 복사한 자료를 읽고 정리하는 데 3년이란 세월이 더 필요하였다.
  난삽(難澁)한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고 적절한 조언과 함께 오(誤)·탈자(脫字)를 지적해 준 장근철, 강혜경 두 선생의 노고가 초고에 반영되었음을 여기에 밝혀 둔다.
  이 책이 선사시기에 야만인으로 알려진, 그러나 실제로는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제도와 높은 수준의 공학 기술 그리고 정교한 예술문화를 누리고, 한때 유럽을 제패(制覇)했던 영국의 선주민 켈트인의 역사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사회 및 언어를 올바로 이해하고, 오늘날 사라져가는 켈트어의 보존과 (켈트어에 기층을 둔) ‘켈트영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향후 국내 학계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 책에 포함되지 않은 일부 주제(우주관, 건축, 의술 등)는 머지않아 보완할 수 있는 시기가 오길 기대한다.
  끝으로 영국에서 영어가 쓰이기 훨씬 이전에 영국에 살던 선주민 켈트인과 그들 언어(켈트어)와 문화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 책의 출판을 흔쾌히 허락해 준 지식산업사 金京熙 社長 및 원고를 꼼꼼하게 읽고 유익한 조언으로 원고 수정에 많은 도움을 준 편집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독자 여러분의 질정(叱正)과 편달을 기다린다.

 

                               2016년 丙申年 깊어가는 초겨울에
                                 社稷寓居에서   朴 榮 培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한국 최초로 켈트인의 기원과 문화를 분석한 대작

 

  영미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호기심을 가질 법한 켈트인과 언어 및 그들의 문화를 한국 최초로 본격적으로 조명한 연구서가 출간된다. 영어사와 역사영어학이라는 학문을 반세기 가까이 천착해 온 학자 박영배 교수는 방대한 사료와 고고학 연구 성과를 총망라하여 켈트인의 총체를 한 권에 집약시킨 대작을 완성시켰다. 《앵글로색슨족의 역사와 언어》(2001)에서 초기 영국문화의 기원을 다루었다면 이 책은 유럽문화의 또 하나의 뿌리에 접근하는 시도이다.  


‘감추어진’ 종족, ‘야만인’에서‘문명인’으로
 
  그리스인들이 켈트인들을 일컬었던 켈토이(Keltoi)의 유래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은 ‘숨어 있는’이란 뜻의 어근 kel-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제1장). 캘트인들은 한때 유럽을 제패하기도 하면서 소금・철의 교역으로 부를 누렸으나 앵글로색슨족의 침입으로 정복되었다. 이들의 베일이 유럽에서도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벗겨지기 시작했으므로, 원래 이름처럼 우리들에게도 ‘감추어진’ 종족이었던 것이다.
  켈트인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로마나 그리스의 고전 사가들이 켈트인들을 폄하하여 서술했기 때문일 것이다. 줄리어스 시저도 《갈리아 전기》에서 켈트인을 포함하는 갈리아인들을 미개하고 호전적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저자는 잔인했던 로마인들에 견주어 켈트인의 사나움은 오히려 온건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로마 사가들이 형편없는 것으로 묘사한 켈트인의 철제 투구와 방패 등이나 기병, 기술은 도리어 에트루리아인들과 로마인들의 ‘우수한’ 군사 제도 형성에 기초를 제공했다는 것이다(제7장). 이 밖에도 여성뿐만 아니라 노약자, 지적장애자들까지 보호한 법률이나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지위 등에서도(제7장) 수준 높은 켈트사회가 입증된다.


켈트어와 켈트 사상이 후세에 미친 영향

 

  저자는 제10장에서 켈트어와 켈트영어(켈트어의 기층이 스며들어간 언어)를 나누어 이들 언어의 현 상황과 위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영어의 초기 역사에 대한 깊은 지식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켈트어는 드루이드교의 영향으로 당시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았던 바, 여러 방언으로 갈라져 현재 사멸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켈트인이 사용한 지명은 앵글로색슨족이 받아들였고, 켈트인들이 내세를 표현한 여러 완곡한 어구가 고대 및 중세 아일랜드어에서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내세와 영혼불멸을 믿었으며 선(善)을 지고의 원리로 삼았던 켈트인들의 믿음(제5장)이 아일랜드 문학에 준 영감은 매우 크다. 초기 아일랜드 문학이나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등 거장의 문학에 켈트 문학 특유의 유현(幽玄)함이 발견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켈트인들 문화의 원리: 개방성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유대인, 그리스인, 로마인의 행동 원칙을 각각 종교, 철학, 법률에 맡겼다고 본 것을 빌려온다면, 켈트인들 사유의 준칙은 개방성이라고 할 것이다. 이 개방성은 유·무형으로 확인된다. 로마인들의 도로가 중앙집권화되어 권력 집중과 타민족 지배에 집착한 사회를 반영하듯 한 곳을 향해 연결되었던 것과 달리, 켈트인들의 도로는 로마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다방면으로 무역이 이루어졌던 것이다(제11장). 또한 결정론보다는 남자든 여자든 자유의지를 가지고 그들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유의지적인 입장에서도(제5장) 켈트 철학의 개방적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로 볼 때 상부의 권위와 군기에 관심이 없었던 아나키즘적 성향의 이들이(제7장) 쇠망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짐작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로소 드러난 켈트세계와 그 이후

 

  켈트인의 문명은 승자 독식의 Pax Romana와 비교해 볼 때 “어떤 면에서 로마 사회보다 세련되었다”고(p.394) 볼 수 있다. 아직도 원 출처가 전부 드러나지 않은 신화를 포함하여 켈트인들의 이토록 놀라운 이야기는 저자의 말처럼 앞으로 조사, 발굴 및 연구로 더욱 분명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제6장). 이때 저자의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 저작은 앵글로색슨족의 역사와 언어라는 거대한 산맥을 연구한 바탕에서 비로소 쌓아올릴 수 있는 결실이자 연구 영역의 외연을 확장시킨 성과이다. 켈트라는 뿌리로 이루어진 나무와 그 열매들이 여물어가는 끝없는 과정의 탐구는 여러분들과 후세의 몫이 될 것이다.

 목    차

 

책을 펴내면서 /4

기원전후 5-6세기 켈트인의 거주지와 영토 확장 지도 /16-17

일러두기 /18

1장 켈트인의 기원 /19

2장 켈트인의 초기 역사 /47

3장 대륙의 켈트인과 켈트 문화 /91

4장 선사시기의 브리튼과 켈트인의 도래/107

5장 켈트인의 종교와 드루이디즘/125

6장 켈트인의 신화와 전설 /181

7장 켈트사회: 전사와 여성 /225

8장 켈트어의 계보와 그 흔적/293

9장 켈트인의 후예들 /321

10장 켈트어의 기층 - 켈트영어 /351

11장 켈트인 - 그들은 과연 누구였는가? /387

참고문헌 /404

찾아보기 /423

함께 읽으면 좋은 지식산업사의 책들 /448

 

 저  (역)   자   약   력

 

 

박영배朴榮培

 


◇ 약력: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영어과)을 졸업,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스트레일리아정부 장학생, 영국 런던대학 SOAS의 방문학자, 캐나다 토론토대학 중세연구소 연구기금교수 시절을 거치면서 30년 넘게 고대 및 중세영어 통사 변화, 영어 어휘의 역사적 변천, 룬문자의 기원과 고대영어 비문 해석에 관한 논문들을 국내외에 발표해왔다. 충북대와 전남대 교류교수를 지냈고, 한국영어사학회, 한국중세영문학회 및 한국영어영문학회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일본영어학회 편집자문위원을 지냈다. 현재 국민대학교 명예교수.


◇ 저서: 《영어의 통사변화 – 고대 및 중세영어연구 -》, 《영어사》, 《앵글로색슨족의 역사와 언어》, 《고대 영어문법》, 《영어사 연구》, 《영어 이야기》, 《영어사연구의 방법과 응용》, 《영어어휘변천사연구》, 《영어의 세계속으로》, 《영어학의 이해》(공저), 《세계 영어의 다양성》(공저) 등 다수.


◇ 역서: 《언어학 입문》, 《영어사 서설》, 《언어학사》, 《영어사》 신영어학 주석 시리즈 (2)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