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정 시대를 구하다
 
 도서분류 동양사
지은이 : 오금성
옮긴이
면 수 : 384
:  \20,000
출간일 : 2018/08/01
판 형 : 신A5
ISBN : 978-89-423-9047-2(0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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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주문권수 입력: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개관논정(蓋棺論定)이란 말이 있다. ‘사람의 평가는 관 뚜껑을 덮고 나서 확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명말의 재상 장거정(張居正, 1525-1582)이 눈을 감은 지 이미 436년이 되었지만, 세계 중국사 학계에서는 장거정의 일생을 개관한 채로 논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실정이다. 청나라 건륭 41(1781)에 나온 사고전서(四庫全書)에는 장거정의 일생에 대해서는 칭찬과 비난이 일정치 않아서, 아직도 정평이 없다고 쓰여 있다. 이 말은 장거정이 눈감은 만력 10(1582)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 중국사회는 곳곳에서 위기의 조짐이 보였다. 명나라(1368-1644)는 땅은 넓고 인구도 많았지만 북방에서는 몽골족, 남방에서는 왜구가 끊임없이 들어와 노략질해 갔고, 국가 재정은 수십 년째 적자가 계속되었다. 관료들은 온갖 부정을 저지르고, 기득권층은 대토지를 겸병하면서도 세금은 포탈하였다. 힘없는 농민은 유리방황하고 사방에서 폭동이 일어났지만, 조정에는 그러한 총체적 난국을 책임질 만한 지도자가 없었다.

바로 이때 감연히 자임하고 나선 사람이 장거정이었다. 장거정은 그러한 난세(難勢)를 통찰하고 종합적인 비전을 세운 후에는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의지로 개혁을 실천한, 보기 드문 정치가였다.

  주변 4강의 종잡을 수 없는 각축 속에서, 오늘날의 한국의 상황도 장거정이 살던 중국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70년 이상 북한과 대치해 오는 상태에서 안보 상황은 아직도 요원한데, 국론은 극도로 분열되어 있고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국가경쟁력은 수년째 정체되어 있다. 바로 이러한 때에, 나라 안팎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던 명나라를 바로 세워 구시재상’(救時宰相)이란 찬사를 받았던 430여 년 전의 장거정처럼, 우리에게도 정말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투철한 지도자가 절실하다.

  필자는 54년 전에 대학원에 들어가 명대사(明代史)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장거정을 눈여겨보기 시작하였다. 1975년 일본에 건너갈 때 가능하면 장거정을 중심으로 관계되는 여러 문제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은사(恩師)이신 야마네 유키오(山根幸夫) 선생을 뵈었을 때, “인물 연구는 비교적 쉽게 고지를 점령할 수 있지만, 길게 숨을 쉴 수는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망설이고 있을 때, 마침 시게타(重田德)와 가타야마(片山誠二郞) 씨의 논문을 읽고 깨달은 바 있어 장강 중류지방의 사회경제사를 연구하기로 하여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노력해 왔다. 그러면서도 뇌리에는 늘 장거정에 대한 애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명말 청초의 대학자인 황종희(黃宗羲, 1610-1695), 고국 명나라가 동북 변방의 소수민족인 여진족에게 멸망당하는 경천동지할 현실 속에서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을 써서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현명한 군주를 고대하는 소망을 담아냈다. 중국의 주둥룬(朱東潤, 1896-1988)은 정치 사회적으로 참으로 어려웠던 항일(抗日)전쟁 후기의 중국의 상황을 보면서 장거정대전(張居正大傳, 1945)을 집필하여장거정과 같은 구국의 지도자를 소망하였다.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의 명언 가운데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밝은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역사만큼 큰 스승은 없고 역사의 교훈만큼 정확한 교훈도 없다. 필자도 비재(菲才)를 무릅쓰고, 마지막 연구의 하나로 장거정의 일생을 정리하여이 시대의 거울로 삼아 볼까 하였다.

  시들어가던 16세기의 명나라를 소생시켰던 장거정의 일생을 되살펴봄으로써, 한국에도 이러한탁월하고 투철한 비전을 갖춘 지도자의 출현에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갖고 싶다. 좌파우파, 보수진보와 같은 이분법적인 편 가르기가 아니고,‘보스에게 맹종하는 사이비 정당정치가 아닌, 모든 세대를 아우르고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여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는 신념과 능력이 있는 탁월한 지도자를 기대해 본다. 이것이 왜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장거정 타령인가?라고 묻는 독자에 대한 답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어언 8-9년의 긴 산고를 겪었다. 기본적으로 나태한 탓도 있지만,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참으로 여러 분에게 귀중한 도움을 받았다. 김홍길이준구범진조영헌교수와 강원묵채경이옥인이옥지진 제군들에게 조언과 교정의 도움을 받았다. 또한 지식산업사 김경희 사장은 어려운 출판 여건 아래에서도 흔쾌히 출판해 주셨고, 김연주 편집자는 난삽한 원고를 이렇게 보기 좋게 정리해 주었다.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072월 정년할 때 그동안 동학들에게 진 감사의 빚이 너무도 많아 눈감을 때까지 5권의 책을 집필하여 갚아보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리고 11년 만에 겨우 이 한 권을 내놓게 되었다. 참으로 민망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때의 공언은 아직도 유효하며, 그동안 진 감사의 빚은 꼭 갚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성경에 나오는 히스기야 왕과 같은 기도(왕하 20:1-11)라도 하고 싶다.

  끝으로 보잘것없는 부끄러운 책이지만, 이 책을 하나님께 바치고 싶다. 그리고 백발이 되어서도 변함없이 곁을 지켜주는 아내도 이 책으로 적은 위안이나마 받았으면 좋겠다.

 

 

 

 

 

201811상도동 일우에

吳 金 成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지금 왜 다시 장거정인가?

우리의 눈으로 개혁가의 비전과 정수를 제시, 경제 위기의 돌파구를 모색하는 화제작

 

 

  한국의 명청시대 사회경제사 연구를 개창한 오금성 교수가 명말의 재상 장거정(張居正, 1525-1582)의 개혁과 그 의의를 조명한 역작을 선보인다. 장거정은 한국 독자들에게 이미 몇 차례 소개된 바 있지만, 우리의 시각으로 그의 개혁의 진면목과 위상을 심도 깊게 다룬 저작은 아직 없었다. 16세기 명과 같이 내우외환과 재정적자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 시점에서 장거정의 광범한 개혁 다시 읽기는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장거정의 삶을 통해 명대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명 중기 사회는 상품경제 발전으로 도시와 상공업이 발달하는 한편으로는 남면(濫免)과 같은 세호대가들의 부정부패와 빈부 격차로 농민들이 노비로 전락하거나 유민으로 떠도는 등 부조리가 횡행했다. 호북성의 가난한 농가 출신이었던 장거정은 이러한 사회모순을 보고 자랐으며, 30대에 잠시 고향에 내려와 농민들과 애환을 같이하면서 서민들의 삶에 와닿는 개혁 방향을 정립할 수 있었다. 독자들은 장거정이 생원에서 거인을 거쳐 수보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명대 사회의 대내외 현실과 복잡하게 돌아가는 내각 정치의 면면을 흥미진진하게 목도하게 된다. 국법과 사회관행, 순의 공존등 명청 사회경제사지방사 연구에 일가를 이룬 저자의 통찰을 함께 포착하는 즐거움도 있다.

 

 

장거정이 없었다면 중국의 근현대사는 달라졌을 것

 

  장거정은 이러한 사회문제를 극복하고자 사회 각 분야에 걸친 광범한 범위의 개혁을 시행하되, 실용적인 경세제민(經世濟民)을 개혁의 큰 틀로 삼았다. 25세 때 발표한 론시정소44세 때 올린 진육사소에서 각각 종번(宗藩) 수 억제, 조세제도 개혁을 주장했고, 수보가 되자마자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궁정 비용을 절감시킨 것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제민책은 장거정 사후 낭비벽이 있는 신종과 기득권층의 반발로 지속되지는 못했다. 아마도 장거정이 없었다면 명은 17세기가 되기도 전에 몰락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장거정을 기다리며

 

  저자는 장거정의 핵심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특히 시대와 조응하는 개혁안을 제시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있다. ‘농상병중(農商幷重)’이라는 혁신적인 사고를 가지고 일조편법을 시행함으로써 중국의 조세제도가 비로소 근대적 형태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장거정은 단순히 모략가나 개혁가로만 규정지을 수 없다. ‘시변론자(時變論者)’였기에 그의 개혁은 청대 지정은제로 지속될 수 있었다.

  바야흐로 경제 개혁안들이 남발되고 있으나 오히려 경제 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임기응변식의 개혁이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한 개혁은 신종의 광세사 파견이나, 왕안석의 개혁처럼 반발을 불러일으키거나 곧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진정한 개혁가가 절실히 필요한 이 시기에 시대를 구한救時장거정의 개혁을 다시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듯하다. 

 목    차

서 문 _4

차 례 _8

일러두기_10

 

1장 장거정이 가고 없는 세상 _11

 

  제1절 난세를 구한 재상(宰相) 12

  제2절 십년 쌓은 공이 하루아침에 16

  제3절 장거정에 대한 그리움 34

 

2장 신동의 탄생 _45

 

  제1절 사세동당(四世同堂) 46

  제2절 장거정 성장기의 중국사회 50

  제3절 장거정이 태어난 호광사회 55

  제4절 소년등과(登科) 59

 

3장 청운의 꿈 _69

 

  제1절 진사합격과 출사 70

  제2절 한림원 시기의 장거정 75

  제3절 전원 생활 87

  제4절 대학사 준비시절 100

  제5절 재상의 반열 109

  제6절 장거정의 개혁비전 116

  제7절 융경화의(隆慶和議) 133

  제8절 청상과부의 결단 144

 

4장 정면 돌파 _163

 

  제1절 황제 교육 164

  제2절 먼저 공직기강부터 바로 잡아야 173

  제3절 재정 절약 181

  제4절 심각한 변방문제 185

  제5절 교육 개혁 198

  제6절 역참제 정돈 206

  제7절 장거정에 대한 탄핵 215

  제8절 치수(治水)와 조운(漕運) 정비 222

  제9절 장거정의 수신제가 230

  제10절 명분과 실리 사이 233

 

5장 유지경성(有志竟成) _251

 

1절 수리공사의 완성 252

2절 장거정의 고향 나들이 259

3절 언론 통제 265

4절 장거정과 신종의 관계 변화 269

5절 장거정과 과거제 280

6절 전국적인 토지 측량 284

7절 조세개혁과 화폐 은본위제 299

 

6장 후폭풍 _ 313

 

  제1절 북변정세의 변화 314

  제2절 마지막 안간힘 316

  제3절 장거정의 영면 320

  제4절 정치적인 후폭풍 324

  제5절 사서에 나타난 장거정 평가 343

 

후 기 _347

 

  제1절 장거정이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 348

  제2절 장거정 개혁의 의미와 이념 357

 

도판목록 _361

참고문헌 _363

색인 _368

 

 

  

 저  (역)   자   약   력

오금성吳金成

 

 

  전북 정주에서 출생(1941),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과를 졸업(1864)하고 같은 대학 동양사학과에서 明代 紳士層 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다(1986).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1972-2007)하면서 미국의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프린스톤대학, 일본의 도쿄대학, 중국의 베이징대학, 타이완의 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 등의 방문교수였고,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장명청사학회장동양사학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수상(2008)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저서로는 中國近世社會經濟史硏究(1988), 國法社會慣行明淸時代 社會經濟史 硏究-(2007), 共存明淸時代 江西社會 硏究-(2007)가 있고, 공저로는 科擧(1981), 講座 중국사(1989), 中國史硏究的成果與展望(1991), 近世 東아시아의 國家社會(1998), 明末淸初社會照明(1990), 명청시대 사회경제사(2007)가 있다. 중요 논문으로는 中國科擧制와 그 政治社會的 機能(1981), 明 中期江西社會陽明(1997), 黑社會主人 ; 無賴(2007), 〈《金甁梅를 통해 본 16세기의 中國社會(2007), 從社會變遷視角對明中期史的再認識(2011), 太平天國時期的江西社會和紳士(2012)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