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문명의 복식사
 
 도서분류 한국사
지은이 : 박선희
옮긴이
면 수 : 776
:  \38,000
출간일 : 2018/09/30
판 형 : 신A5
ISBN : 978-89-423-9050-2(94910)
검색수 57 번째 검색
  도서주문권수 입력: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  이 책은 고조선문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서 복식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고조선문명의 원류와 발전 과정을 찾아 복원해 보고자 하였다. 고조선은 우리 한민족이 세운 첫 번째 국가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문화원형은 고조선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오랜 생각이다. 고조선문명이라는 용어에 대해 아직도 많은 논란이 있다. 고조선에 문명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과연 맞느냐 하는 문제 때문이다. 흔히 황하문명, 이집트문명, 인더스문명과 같이 거대한 문명의 발상지에만 문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주와 한반도에 존재했던 고조선의 발전과정을 살펴본 결과 우리 문화의 원류라고 믿었던 중국 황하문명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으며, 그에 비해 문화의 발전단계나 규모가 훨씬 앞서고 방대한 고조선문명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고조선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출현한 국가 단계의 사회로, 학계에서 구분하는 문명사회라는 정의에도 부합한다.

  우리는 우리 문화의 많은 것들이 중국이나 서양 같은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이며 우리 문화는 주변보다 항상 늦게 발달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랜 세월 외세로부터 침략당하고 약탈당했던 역사가 이러한 선입관을 갖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사실과는 다른 것이다. 고조선 시대에 만주와 한반도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문명단계에 진입했으며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 문명을 꽃피웠다.

  그동안 고조선 관련 연구는 주로 영역, 중심지, 사회발전 단계 등의 논쟁에 치중되었고, 의식주와 같은 생활사 부분에 대한 연구는 매우 빈약하였다. 특히나 남겨진 복식자료가 희귀한 상황이어서 더욱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인 복식사 개설서에 상고시대나 고대의 복식은 문헌과 벽화 자료를 근거로 하는 몇 장의 아주 빈약한 서술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발굴되는 고고학 자료들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치장을 했는지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이런 자료들을 외면하고 빈약한 복식자료들만을 토대로 우리 민족의 복식사를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복식 연구는 복식유물로만 해야 한다는 입장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하지만 출토복식의 경우 그 연대를 올려 잡아야 지금부터 5백 년 정도이며, 따라서 15세기 이전의 복식유물을 만나기 어렵다. 그나마 삼국시대의 복식연구는 문헌이나 벽화, 초상화 같은 자료를 통해 연구할 수 있지만, 고조선이나 그 이전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남겨진 복식자료가 없기 때문에 연구가 어렵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책에서 많은 고고학 자료를 중심으로 우리 민족의 고대 복식을 복원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홍산문화에서 발견된 옥장식과 방직도구, 서포항 유적에서 출토된 뼈로 만든 북과 바늘, 소하연 유적지에서 출토된 인형식, 그 밖에 다양한 양식의 청동장식단추를 품은 많은 무덤 유적 등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어떠한 차림새를 하고 활동했으며, 어떠한 재료를 사용하여 옷을 만들고 어떤 장식품을 사용하였는지 알려 준다. 문헌자료 위에 이러한 고고학 자료들을 덧입히면 당시 사람들의 차림새를 구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다.

  출토복식의 발굴이 복식사의 연구 범위를 조선 중기까지 가능하게 했다면, 이제는 고고 복식자료들을 통해 복식사 연구를 선사시대까지 올려 잡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고고 복식자료들이 축적되었지만,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들은 자신들의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수적으로 생각했고 복식학자들은 이들 고고학 자료들을 자신들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생각해 외면해 왔다.

  상고시대 복식연구를 출토 복식으로만 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고고 발굴 유물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다양하고 풍부한 고고 복식자료들을 개발하고 활용하면 우리의 고대사를 더욱 광범위하고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하지만 고고학 발굴 자료를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중국 동북지역의 발굴보고서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간행되었기 때문에 중국학자들의 해석이나 견해를 덧붙인 경우가 많다. 중국학자들은 만주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을 대부분 자신들의 문화로 해석하기 때문에 이럴 경우에는 반드시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검토,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필자는 우리 상고시대 복식과 관련된 고고유물들, 즉 고고 복식자료들을 적극 활용하여 우리 조상들이 선사시대부터 고조선시대를 거쳐 삼국시대까지 어떠한 복식을 착용하였는지 살펴보았다.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모두 5부로 구성하였다.

  제1부에서는 고조선문명의 시원으로서 ‘홍산문화’를 주목하였다. 홍산문화는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로 알려져 있지만 초기에 이미 연동(煉銅)과 주동(鑄銅)의 발달된 기술을 가지고 있던 금석병용시대였다. 홍산문화에서 발견되는 청동기는 고조선지역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청동기문화를 출현시키고 이웃 나라에도 영향을 주었음을 밝히는 근거가 되었다. 홍산문화에서 하가점 하층문화로 이어지는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청동기문화는 중국의 청동기문화인 이리두문화보다 더 빨리 청동기시대에 진입하였는데 이러한 점을 고고학 유적과 문헌기록 모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들 자료를 통해 우리 민족이 홍산문화시기부터 한반도와 만주지역에 거주하면서 하나의 복식문화권과 제의(祭儀)문화권을 형성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만주의 고대문화를 총칭하여 ‘요하문명’이라고 부르며 중국 문명의 창시자로 알려진 황제문화에 포함시키고 있다. 우리 학계에서도 요하문명이라는 용어를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요하문명이라는 표현에는 한반도와 연해주지역의 고대문화를 배제시키거나 변방지역의 문화로 격하시키려는 목적이 들어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황하문명과는 성격이 확연히 다른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선사문화를 요하문명으로 통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고조선문명’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제2부에서는 홍산문화를 계승한 소하연(小河沿)문화 유적에서 출토된 조개껍질로 만들어진 인형식의 의복양식을 고찰하여 고조선의 복식양식과 발전사를 추정해 보았다. 인형식의 둥근 달개장식은 홍산문화부터 일관되게 보이는 양식으로, 이후 고구려의 불꽃문양을 표현한 금관과 금동관 등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태양신을 섬기는 천신신앙의 전통이 계승된 것으로 생각된다. 옥장식 등과 같은 홍산문화에서 보이는 다양한 복식의 특징이 고조선의 복식문화로 이어져 우리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복식문화로 발달해 갔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소하연문화의 인형에서 나타나는 복식장식과 장식기법 또한 한국 고대복식의 원형이 중국이나 북방 호복 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종래의 통설이 모순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제3부에서는 복식문화와 정치체제를 분석하여 고조선문명의 지리영역을 고찰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기자조선’의 존재 문제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단군조선―준왕―위만조선―한사군’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기자(箕子)의 40여 세 후손인 준왕이 위만에게 정권을 빼앗기는 고조선의 마지막 왕이고, 고조선이 멸망하고 위만조선과 한사군이 그 지역을 대체했다고 서술되어 있는 것이다. 

  기자조선 문제는 오랫동안 한국고대사의 논쟁거리였다. 3세기 이전의 사서인 《논어》와 《죽서기년》에 기자에 관한 내용만 있을 뿐 조선에 갔다는 기록이 없으며, 고고학적으로 기자의 동래(東來)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학계에서는 20세기 초 이래 기자동래설에 관한 견해가 부정되어 왔다. 기자조선설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한씨조선설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한국 민족의 기원을 종족의 이동이라는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기자조선을 이해한 견해도 제기되었다. 즉 기자는 고고학적으로 그 근거를 찾아 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오랫동안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부정되어 왔다. 하지만 기자는 문헌과 갑골문, 금문자료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확인되기 때문에 그 존재마저 부인하기는 어렵다. 기자에 관한 자료를 구체적으로 검토해 본 결과 ‘조선후’ 기자는 난하 하류 유역의 객좌현에 위치했던 조그마한 지역에 있었을 뿐, 고조선을 대체한 세력은 아니었다.

  또한 고조선의 영역 변화의 주요한 기점으로 여겨지던 연나라 소왕(昭王) 때 진개의 고조선 침략도, 그의 침략으로 고조선의 영토 1천여 리를 빼앗긴 것은 맞지만 곧 회복되었고 고조선의 영토는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는 것을 문헌기록과 고고학의 유물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는 한사군의 영역과 위치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평양지역에서 출토되어 일반적으로 낙랑군의 유물로 알려진 자료들을 검토하였다. 실제로 낙랑 유적에서는 중국이나 북방지역에서 만들어진 유물도 있었지만, 한민족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됨으로써 평양지역은 한사군의 낙랑군이 아니라 최리왕의 낙랑국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고구려의 평양성, 한사군의 낙랑군, 위만조선의 왕검성은 동일 지역이었으며 그 위치는 지금의 요서지역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4부에서는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지는 복식의 기본이 되는 복식재료와 양식의 특징들을 고찰하여 한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 주는 재료의 고유성과 양식적 독창성을 도식화하였다. 특히 한민족의 직물과 척도, 갑옷의 종류와 생산양식 등을 비교를 통해 상세히 밝혀 보았다. 갑옷을 중심으로 복식사를 검토하자, 고조선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민족의 고대문화가 일정한 한류를 형성하며 동아시아 지역문화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서 보이는 복식의 재료와 양식에는 한민족만의 독특한 특징들이 발견된다. 연구를 계속 진행하면서 고대 복식자료들이 고조선의 영역과 일치하며 고대사 체계와도 일치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조선의 영역을 확인할 수 있는 1차적인 자료는 문헌이다. 하지만 고조선의 영역을 알려 주는 문헌은 많지 않으며, 그마저도 서로 상반된 내용인 경우가 있다. 따라서 문헌의 내용이 서로 상반되고 해석이 어려운 경우 고고학적 유물이 문헌의 내용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선사시대부터 열국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와 만주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한민족의 특징적인 복식유물들이 나타나고 있다. 

  제5부는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요약 정리하였다.

이번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고조선문명권을 설정하고 그 형성과 발전과정을 확인하였다. 고조선의 시원이 되는 홍산문화단계부터 고조선에 이르기까지 고조선문명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문명을 형성하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한국고대사 체계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한국사에서 통용되는 ‘고조선―준왕―위만조선―한사군’의 체계는 역사적 사실과는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검토 결과 문헌과 금문자료를 통해 기자의 존재와 동래를 확인할 수 있지만 ‘조선후’ 기자, 위만조선, 한사군이 위치했던 곳은 고조선 서부 변경지역의 일부를 차지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셋째, 고조선 복식문화를 통해 고조선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우리 민족 복식문화의 정체성과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우리 한민족의 복식이 중국이나 북방지역의 영향으로 이루어졌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 우리 민족은 홍산문화시기인 선사시대부터 고조선을 거쳐 열국시대와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연결되는 고유한 복식문화 전통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2013년 교육부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고조선문명의 학제적 연구’ 과제의 일환으로 지원을 받아 작성한 논문을 모아 완성한 것이다. 연구팀은 4년 동안 매달 만나서 공부한 것을 서로 발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 ‘고조선문명’이라는 대주제 아래 각자 자신들의 전공에 맞는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 방학에는 우리 민족의 원류가 되는 지역들을 답사하면서 시각을 새롭게 넓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혼자 작업했다면 이러한 방대한 양의 연구를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함께 연구를 진행했던 고조선문명 연구팀의 여러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특히 연구팀을 이끄신 신용하 교수님은 원로 학자이시면서도 항상 배우려는 자세로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학문에 임하셔서 모두의 귀감이 되어 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지식산업사의 김경희 사장님은 한민족 역사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사명감을 갖고 계신 분이다. 매번 필자의 책을 애정을 가지고 보기 좋게 만들어 주셔서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사진자료가 많은 필자의 책을 예쁘게 편집해 주시고 꼼꼼하게 교정해 준 맹다솜 선생님께도 마음을 담아 고마운 뜻을 전한다. 




2018년 여름

자하관 연구실에서

朴仙姬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고고복식으로 고조선 복식사를 재현함으로써 한민족 의복문화의 원형을 탐구하는 대작

고대 만주 및 한반도 출토 유물로 고조선문명 이전과 이후 복식사를 복원시키는 독보적 작업의 집대성

 

 《한국 고대복식그 원형과 정체(2002)에서부터 한국의 고대 의복문화를 집중적으로 탐구해 왔던 박선희 교수가 최신 출토 유물을 총망라하여 고조선문명의 복식문화를 통시적공시적으로 집대성하는 대작(고조선문명총서6)을 완성하였다. 한민족의 복식의 정체성이 중국이나 북방 계통이 아니라 고조선에서 형성된 것임을 주장해 왔던 저자는 이 책에서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출토 유물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분석, 그 논거를 더욱 정밀하게 다듬고 구체화시켜 나감으로써 고조선문명의 전후를 밝힌다. 또한 문헌기록과 고고학 유물자료를 통해 한국사에서 통용되는 고조선 지리영역에 관한 통설에 반기를 든다.

 

고조선문명의 시원으로서 홍산문화 유적 조명

 

  중국학계에서는 만주지역의 고대문화를 요하문명(遼河文明)’, ‘홍산고국(紅山古國)’이라고 일컬으면서 황제문화에 포함시키고 있으나 저자는 홍산문화 유적은 고조선문명의 시원인 신시문화라고 주장한다. 우하량 유적의 거대한 적석총은 중국 중원지역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으나, 동산취의 제단 유적 등은 한반도 남북한 모두에서 발견되며 고조선 제단 유적으로 해석되는 돌돌림 유적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독 홍산문화 옥기에서만 나타나는 인물과 동물 형상(2장 표2~5 참조)은 홍산문화 제단 유적들에서 사람과 자연, 짐승들을 대상으로 한 주술적 의식 때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의복에 착용한 것이라는 추정은 제의공간으로서 홍산문화의 핵심을 포착한 분석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제의가 고조선이 출현하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저자의 설명을 따른다면, 앞으로 발굴될 홍산문화가 고조선문명 기원의 비밀을 밝혀줄 키워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조선문명 복식의 미학과 그 전승

 

  저자는 만주와 한반도의 고조선 무덤 유적에서 고고 출토자료를 세분하고 총정리하여 고조선 사람들의 복식 양식과 장식 기법이 매우 화려하고 현대적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고조선사람들은 주검에서 가죽과 모피, 마직물, 모직물, 사직물(누에천) 등으로 만든 옷을 여러 겹 입었으며, 모자에서 겉옷과 신발에 이르기까지 생명력 있는 조형의지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또한 주검에서 나타난 고조선 사람들의 의복장식이 뼈, , , 청동, , 금과 은, 유리 등을 재료로 단순반복과 사방연속 등의 기법을 사용해 화려한 조형미를 이루었음을 실증하고 있다. 그 일례로서 홍산문화의 청동주조기술을 이은 고조선의 청동장식단추를 들고 있다. 이 단추는 고조선의 표지유물로서 청동거울이나 비파형동검 검집에 나타나는 햇살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단추의 둥근 장식은 태양을 숭배하는 천신신앙의 전통을 그 배경으로 하여 역동적이며 생동하는 한민족의 제의적 정서를 표헌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이러한 장식이 각종 벽화와 가락바퀴, 질그릇, 바늘통, 청동거울, 청동방울 등 출토 유물들에서 생생하게 구현되어 열국과 삼국으로까지 계승되고 있음을 선명하게 밝힘으로써 고조선문명의 복식문화의 전승을 또렷이 실증하고 있다.

 

고조선 지리영역에 대한 새로운 해석

 

  아울러 이 책은 문헌과 유물 분석을 통하여 기존의 고조선 관련 정설인 단군조선-준왕-위만조선-한사군-열국시대의 체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 일례로 조희승의 연구를 이어받아 낙랑지역에서 출토된 누에천과 같은 시기 중국 누에천을 상세히 비교분석한 결과 기자가 고조선에 양잠기술을 전파했다는 후한서동이열전의 기록을 논파하면서, 기자 일족이 지금의 난하 하류 동부 유역에 거주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기와 명문 등 대동강유역 출토 유물과 문헌을 분석하여 평양을 한사군의 낙랑군이 아니라 최리왕의 낙랑군 문화로 재분류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 평양성이 지금의 조양 지역에 있었다는 대담한 가설도 제기하고 있다.

 

복식사로 보는 고조선문명권의 범위와 그 고유성

 

  고조선의 공간과 시간은 그 시원인 홍산문화 유적과 그 이후 전승까지 포함하게 되면 장구하면서도 방대한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 이러한 고조선문명권의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위치에 거주하며 어떠한 의복으로 장식하고 제의를 드리며 살았는가를 살피는 과제는 점점이 산재한 유물의 모퉁이 구석과 벽화의 미세한 장식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추적해 나가야 비로소 접근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복식사를 통해서 고조선문명권의 밑그림을 그려 나가는 저자의 연구는 치열한 탐구 의지와 피나는 노력의 소산이라고 할 것이다. 특별히 이 작업은 궁극적으로는 고조선의 화려하면서도 현대적이며 역동적인 미()를 오늘에 되살리고 그 지속을 탐색하는 가치로운 일이기에 더욱 소중한 연구가 아닐 수 없다. 

 목    차

머리말 ………………………………………………………………………………… 5

 

1

복식과 제의문화로 본 홍산문화와 고조선문명 ∥ 15

1장 복식과 제의에서 찾는 고조선문명의 정의와 범위 …………………… 17

1. 복식양식과 제의 유적으로 본 고조선문명 정의 _17

2. 복식양식과 제의 특성으로 본 고조선문명 범위 _30

2장 복식과 예술로 본 홍산문화와 고조선 제의문화 ……………………… 46

1. 옥기양식의 지역별 특성과 제의 성격 _46

2. 홍산문화와 고조선 제의성의 문헌분석 _74

3. 관모와 장식단추에 보이는 제의 기능 _101

3장 홍산문화 예술에 보이는 제의적 성격과 고조선 ……………………… 129

1. 채색기법의 성격과 문양의 상징 의미 _129

2. 악기와 인물상 패식에 보이는 제의성 _140

3. 홍산문화 유적 출토 인물상의 조형의지 _150

4장 고조선복식과 제의문화권의 열국시대로의 계승 ……………………… 157

 

2

소하연문화 유적 출토 인형식의 복식양식 해석 ∥ 177

1장 고조선 복식양식의 형성기 유물 시석(試釋) ………………………… 179

2장 소하연문화와 고조선문화의 연관성 …………………………………… 182

3장 인형식에 해석된 고조선 복식양식의 부분 …………………………… 194

1. 머리양식과 관모 _194

2. 웃옷과 아래옷 차림새 _199

3. 웃옷의 장식기법 _209

4장 소하연문화에서 찾아본 고조선복식 원류 …………………………… 217

 

3

복식문화와 정치체제로 본 고조선문명의 지리영역 ∥ 219

1장 문헌과 복식비교로 본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위치와 성격 ………… 221

1. 문헌과 유물로 본 조선후와 준왕의 혈통 _221

2. 문헌과 유물로 본 조선후거주지와 조·연전쟁 _236

3. 평양지역 복식유물 특성으로 본 최씨낙랑국과 낙랑군 _269

4. 문헌과 복식으로 본 위만조선·한사군 영역과 성격 _280

2장 복식과 정치체제로 본 고조선과 위만조선의 위치와 성격 ………… 298

1. 위만의 고조선 망명과 퇴결이복’ _298

2. 서한의 서이등봉건정치체제 성격 _307

3. 고조선과 위만조선의 관료체제 고찰 _315

4. 고조선과 서한의 발식과 복식양식 비교 _320

5. 위만의 고조선 서부변경의 망명 요인 _327

3장 고구려 평양성 천도와 요서진출로 본 위만조선과 한사군 ………… 330

1. 원대자 벽화묘 연대와 유물에서 찾는 묘주 국적 _330

2. 조양지역 묘들의 국적과 동천왕의 평양성 천도 _341

3. 원대자 벽화묘에 나타난 복식양식의 특징과 국적 _371

4. 벽화묘에 보이는 태양도흑웅도의 재해석 _386

5. 고구려 요서 수복에서 보이는 한사군 위치 재검토 _396

 

4

고조선 복식문화의 열국시대로 계승과 고조선문명의 확산 ∥ 403

1장 일반복식으로 본 고조선 복식문명권과 고대사 체계 재정립 ……… 405

1. 고조선 복식재료의 열국시대로의 계승과 발전 _407

1) 가죽과 모피, 모직물 생산품의 고유성과 우리말 410

2) 마직물 생산의 우수성과 생산품의 우리말 422

3) 누에천 생산의 고유성과 생산품의 우리말 443

4) 면직물 생산의 우수성과 생산품의 우리말 477

2. 복식재료의 척도 비교로 본 고조선의 복식문명권 _485

3. 복식과 문헌으로 본 한국 고대사 체계의 재정립 _495

1) 복식자료와 양식의 특성연구에서 고대사를 찾는 길 495

2) 삼국유사·위서에 보이는 고대사 체계 500

3) 제왕운기·고려사·세종실록 고대사 체계 504

2장 특수복식 갑옷의 양식과 과학기술로 본 고조선 복식문명권 ……… 509

1. 비교연구를 통해 본 고조선 뼈와 가죽갑옷의 종류와 생산양식 _509

1) 고조선 뼈갑옷의 생산 양식과 특징 511

2) 고조선 가죽갑옷의 종류와 생산 양식 520

2. 비교연구를 통해 본 고조선 금속갑옷 기법과 합금기술의 과학성 _538

1) 고조선 청동갑옷의 종류와 기법 및 합금기술의 특징 538

2) 철갑옷의 종류와 기법 및 합금기술의 특징 564

3) 고조선과 서한제국 철갑 생산기법과 철갑기병 581

3장 특수복식으로 본 고조선 복식문명과 열국시대로의 계승과 발전 …… 590

1. 비교연구를 통해 본 동부여 갑옷에 보이는 고조선 갑옷 특징 _590

1) 고조선 갑옷양식을 이은 뼈갑옷의 양식적 특징 590

2) 고조선 갑옷양식을 이은 청동갑옷과 철갑옷의 특징 593

2. 비교연구를 통해 본 고구려 갑옷에 보이는 고조선 갑옷 특징 _606

1) 고조선 갑옷양식을 이은 고구려 갑옷의 종류와 특징 606

2) 고조선 갑옷양식을 이은 고구려 말갑옷의 고유성 636

3) 고구려 갑옷양식의 특징에서 찾아지는 평양성 643

3. 한반도 남부에 보이는 고조선 갑옷 특징과 일본열도에 준 영향 _658

1) 고조선 갑옷양식을 이은 백제 갑옷의 종류와 특징 658

2) 고조선 갑옷양식을 이은 가야와 신라 갑옷의 특징 677

 

5

복식문화의 비교 연구로 본 고조선문명권의 성립과 계승 ∥ 707

 

참고문헌 ……………………………………………………………………………… 731

찾아보기 ……………………………………………………………………………… 763

 

  

 저  (역)   자   약   력

박선희朴仙姬

 

 

 

  단국대학교단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국립대만사범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학하다가 귀국하여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상명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회과학부 학부장, 교육개발센터 소장,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고대복식-그 원형과 정체(2002)우리 금관의 역사를 밝힌다(2008), 고조선 복식 문화의 발견(2011), 고구려 금관의 정치사(201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