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
 
 도서분류 한국사
지은이 : 이태진.사사가와 노리카쓰 공편
옮긴이
면 수 : 592
:  \33,000
출간일 : 2019/03/01
판 형 : 신국판
ISBN : 978-89-423-9061-8(9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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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주문권수 입력: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191931일 오후 2시를 기하여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은 한국 민족사에서 우뚝 솟은 장엄한 역사다. 100주년을 맞아 한일 공동연구 형태로 기념논문집을 출간하게 된 것은 뜻깊은 일이다. 기념논문집으로는 1969년에 동아일보사가 삼일운동 50주년 기념논집을 낸 것이 최초였다. 1945년 광복을 맞고, 1949년에 30주년이 되었으나, 그때 정황으로 기념논문집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1959, 40주년이 되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950년에 전쟁이 터지고 전후 복구사업이 산적한 가운데 학술 활동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69년에야 비로소 기념논문집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수록된 논문 수를 헤아려 보니 무려 70편이었다. 동아일보사가 역사학회와 한국사연구회의 협조를 받아서 낸 것이라고는 하나, 70편의 글을 모은 것은 당시 학계 및 지식계가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다 쏟아 부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1독립만세운동의 정신이 뿜어낸 에너지가 아닌가 싶다. 언론인이자 역사학자로서 이를 주간한 천관우 선생의 열정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그 후 몇 번의 주년周年을 맞아 변변한 기념논문집이 나오지 않았던 것을 봐도(논저 목록 참조) 50주년 기념논문집은 특별하다. 100주년을 맞아 올해 몇 개의 기념논문집이 나올지 모르겠으나, 일 양국 공동연구의 형태로 기념논문집을 낸 것은 이전에 없던 기획으로서 자부심이 앞선다. 이 논문집이 한일 공동연구의 형식을 취하게 된 사연은 20년 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한국병합에 관한 역사적, 국제법적 재조명국제학술회의 팀이 조직되어 10회의 학술회의 끝에 2009년에 이태진, 사사가와 노리카쓰 공동 편집으로 국제공동연구, 한국병합과 현대 -역사적 국제법적 재검토-(태학사; 이하 한국병합과 현대로 줄임)가 출간되었다. ‘국제학술회의 팀에는 한일 외에 소수나마 미국, 영국, 독일의 학자들도 참여하였으나, 일본 학자들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였다. 한일 간의 최대 이슈인 한국병합 문제에 일본 학자들이 참여하지 않거나 소극적이면 성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일본 학자들이 당초에는 10여 명이 참여하였지만 사사가와 교수, 아라이 신이치 교수 두 분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었다. 두 분은 역사의 진실만이 한일 양국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한국 학자들보다 더 열심히, 더 열정적으로 목표를 향해 달렸다. 사사가와 선생은 이번 기념논문집 출간에도 공동 편자가 되어주었지만, 아라이 선생은 2017년 말에 92세로 생을 마감하시어 애석한 마음 그지없다. 그는 일본의 전쟁 책임 문제를 제기하여 이를 사회운동으로 이끈 진정한 일본의 양심으로서 영원히 기억될 분이다.

  《한국병합과 현대200812월까지 한국어본과 일본어본을 함께 출간하기로 준비되었다. 사사가와 교수가 담당한 일본어본(明石書店)은 예정대로 출간되었으나 한국어본은 수개월이 늦었다. 사사가와 선생은 일본어본이 나오자마자 책을 들고 서울로 왔다. 그때 필자는 근 10년 동안의 선생의 열정과 노고를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 모 신문사에 연락하여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기자가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는 당신은 왜 일본에 불리한 연구를 하느냐? 옆에 있던 필자가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질문이 약간 퉁명스러웠다. 그런데 선생은 1초의 틈도 주지 않고 일본이 좋은 나라가 되도록 하기 위해라고 답하였다. 질문을 던진 기자가 놀라는 기색이었다.

  두 번째 질문은, 선생은 31운동 시위 때 검거된 한국인들의 법원 판결에 관한 연구를 한다고 들었는데, 31운동에 관심을 가진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였다. 답변은 뜻밖이었다. 나는 헌법학자로서 현행 일본 헌법을 연구하면서 이웃 한국의 헌법이 어떤지를 살펴보게 되었다. 한국의 현행 헌법은 1919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헌법을 잇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현행 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맥아더 군정이 만들어 준 것인 반면, 한국의 헌법은 일본제국주의의 압제에 항거하여 쟁취한 헌법이란 차이를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아 이에 대한 연구에 종사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으면서 필자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나는 한국의 어느 법학자로부터도 우리 헌법에 대한 이런 평가를 듣지 못했다. 사사가와 교수의 그 발언이 이 기념논문집 기획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2010, ‘한국병합’ 100년이 되는 해에 일 양국 지식인 공동성명서가 나왔다. 한국병합이 불법이라는 문장이 들어갔는데도 일본 측 서명자가 540명이나 되었다. 이 가운데 역사학자가 230여 명이었다. ‘양심적지식인들조차 도의적 책임은 있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던 그때까지의 상황에 비추어 이 숫자는 놀라운 변화였다. 한국병합 과정의 불법성을 파헤친 전문서적 한국병합과 현대가 이 변화에 끼친 공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성명서 발표 후 한일 양국 운영위원들은 “2010년의 약속, 2015년의 기대라는 슬로건 아래 2015년까지 매년 한 차례씩 학술회의를 가졌다. 그 사이에 일본 정계의 우경화가 현저해져 양국 지식인들을 곤혹스럽게 하였다. 2015년 이를 규탄하는 내용의 한일 그리고 세계 지식인 공동성명서를 냈다. 한국병합과 현대출간에 기여한 한일 양측 인사들은 모두 두 차례 공동성명서 건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2014년에 필자의 한국역사연구원이 석오石梧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게 되어 새로운 연구 사업을 기획할 수 있게 되었다. 제일 먼저 사사가와 선생을 만났다. 한국병합과 현대를 후속시키는 새로운 연구 과제로서 31운동에 관한 공동연구를 제안하였다. 이해 여름 도쿄에서 만나 공동 세미나 팀 구성을 결정하고 12월에 서울대학교에서 첫 논문 발표회를 가졌다. 이후 다롄大連, 요코하마橫濱, 하얼빈哈爾濱에서 한 차례씩 세미나를 가졌다. 20세기 초 동아시아사의 주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곳들을 회의 장소로 택한 것은 역사의 현장에서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서였다. 다롄에서 90세 초반의 아라이 신이치 선생이 노구를 이끌고 러일전쟁의 격전지 두 곳을 오르내리시면서 착잡한 표정을 지으셨다. 꼭 왔어야 할 곳이었지만 기회가 없어 이번에 처음 오게 되어 감회가 크다고 하셨다. 요코하마 회의에서는 뜻밖의 감상을 표하셨다. 요코하마는 자신이 생장한 곳으로서 어머님이 교직에서 서양인 선교사들과 자주 만나서 어린 아들로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였다. 이곳을 회의 장소로 택해준 것이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회의가 끝난 뒤 지팡이에 의존해 열차에 오르시는 것을 배웅하였는데 그것이 마지막 순간이 될 줄은 몰랐다. 하얼빈 회의 때는 선생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회의 첫 순서로 삼아야 했다. 

 

                                          ......

 

31독립만세운동은 일본제국의 군국주의에 대척할 수 있는 정신세계의 큰 봉우리로서 역사적 의미가 더없이 크다. 만세운동이 부르짖은 자유, 독립의 정신은 인류보편의 가치로서 1930년대, 40년대의 일본제국의 파시즘의 무력으로도 꺾지 못하였다. 이 점에서 31독립만세운동은 인류 역사의 장엄한 순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 책을 펴낸 지식산업사는 2010년의 한일지식인 공동성명서와 이에 관련한 발표문을 모은 한일 역사 문제의 핵심을 어떻게 풀 것인가(2013)를 출간하였다. 김경희 사장은 2010년 한일지식인 공동성명서 준비의 기획에도 직접 참여하였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한일 공동연구의 성과의 출판도 흔쾌히 받아 주어 동지애를 느낀다. 편집부의 김연주, 맹다솜 두 분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4년 동안의 한일 공동연구를 뒷받침해 준 석오石梧 문화재단 윤동한 이사장에게 특별한 감사의 뜻을 표한다. 그 지원 아래 4차에 걸친 학술 세미나 개최의 실무를 맡아 수고한 한국역사연구원의 오정섭 사무국장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김선영과 함께 1919년 이래의 31운동 관련 자료 및 논저들을 모아 목록을 작성하는 데도 열성을 다하였다.

 

  201928

한국역사연구원 원장 이태진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한일 학자들이 함께 31운동과 그 전후를 논한 한일 최초의 기념비적 대작

무엇이 우리의 첫 번째 근대 국민운동을 가능케 했는가.

100년 전 그때 국가 형성의 데모크라시 정신으로 현재 우리의 시공간이 탄생되다 

 

  한일 최초 양국의 학자 10인이 5년에 걸친 31운동 공동 연구의 성과물을 출간한다. 한국 학자들이 학생층과 손병희, 안중근, 조소앙 등 식민지배 피해자의 활동을 다룬다면, 일본인 학자들은 당시 일본정부 재판 기록, 정책, 일본 지식인 등 가해자의 대응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이 책은 또한 31독립만세운동이 싹틀 수 있었던 배경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31운동이 배태된 근본적인 원인을 역사의 연속성측면에서 재조명한 것이다. 관련 보도와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때 31운동 연구사에서 획기를 이룰 만한 쾌거이자, 100주년 기념다운 걸작이 아닐 수 없다.

 

31운동의 폭발력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지금까지 31운동 연구에서는 운동의 성격을 대개 거족적민족 운동으로 파악한다. 이는 31운동 50주년기념논집(1969)이나 31운동 70주년 기념 31민족해방운동연구(1989)의 지배적 시각이며, 그 이후 논저에서도 비중의 차이는 있으나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공동 책임편집자인 이태진 교수는 그러한 관점에서 탈피할 때라고 말한다. 대한제국 성립 및 침탈과 연속적으로 맞물려 31운동이 발발한 것이므로, 그 운동의 성격은 대한제국기를 다시 평가함으로써 재조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교수가 정조 시대의 민국이념이 고종 시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국민의식으로 변모하였는지를 논했다면, 김승일 원장은 조소앙이 그러한 민국개념을 바탕으로 서양의 공화개념과 손문의 민국개념을 취사선택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국호를 제정하였음을 추정하고 있다. 손병희를 재조명한 변영호 쓰루분카대 교수는 31운동 저변에 변혁의 주체로서 민중을 보는 동학과 천도교의 한국 토착 근대사상이 자리하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다.


신민이 아닌 국민으로서 이루어낸 의거와 만세시위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기만, 범법으로 점철된 군사강점의 형식으로 성립한 한국병합(이태진,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 지식산업사, 2016)은 국제법상으로도 원천무효임(김영호이태진 외 공편, 한일 역사 문제의 핵심을 어떻게 풀 것인가?, 지식산업사, 2013)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일제는 태황제 고종을 독살시키면서 주권을 유린했다. 따라서 31운동은 주권 회복을 요구하는 국민운동에 다름 아니었다. 안중근에 대한 기억을 연구한 김대호 편사연구관은 안중근이 등장하는 독립군가(용진가勇進歌31운동 1주년 기념 격문과 1930년대 말 기록에도 나올 정도로 영향력이 컸음을 밝히고 있다. 안중근이 남긴 글씨에는 신민이 아닌 대한인大韓人로서 자각을 엿볼 수 있다. 대한제국의 으로서 스스로 의식한 주체에는 학생층도 포함된다. 경성(서울) 만세시위를 본격적으로 다룬 이태진 교수는 동경조일신문보도와 경성지방법원 예심종결결정서를 활용하여 학생들이 주도한 2차 시위를 복원한다. 김태웅 교수는 관립전문학교학생들이 일본의 우대 정책과 민족운동의 당위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차별과 불평등을 겪으면서 민족정체성을 확인해 나가는 내면세계의 성장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한 어린 보통학교학생들도 과감하게 시위에 뛰어들었던 여러 실례를 들고 있다.

 

가해자의 인식: 일본 정부와 지식인의 대응

 

  그때의 메아리가 얼마나 절절하였는지는 당시 북한 성천成川 에서 목격했던 일본 소녀의 마음에도 선명히 각인되었다. 세리카와 데쓰요 교수는 일본의 소수 지식인과 문학가들이 31운동의 참상에 대해서 어떻게 논평하고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했는지를 위와 같은 사례 연구로 서술한다. 이러한 양심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총독부는 단순 가담자까지 색출, 보안법을 적용하여 높은 형량을 내렸다. 공동 책임편집자인 사사가와 노리카쓰 교수의 두 논문에는 31운동 주동자 및 가담자들이 내란죄로 처벌되고 그 이후에도 무고한 조선인을 불경죄 명목으로 체포한 실상이 고발되고 있다. 이러한 위장기만술책은 안중근의 거사 당시 이토의 수행원들이 의거를 폄하하기 위해 거짓 증언을 하고 언론이 허구적 기사를 냈음을 지적한 김봉진 교수의 논문에서도 확인된다. 독립의 열기를 진압하기 위한 다각적 방책에서도 일제의 그 기조는 이어진다. 아라이 신이치 교수는 1919년 사건 직후 총독부가 문화정치로 식민지배를 포장하고 조선인 본위의 교육을 내세워 중앙(일본)에 대한 종속을 강조한 역사교육을 시행했음을 포착한다. 31운동 발발 직후에야 일제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참고하여 조선에 투자를 시작하면서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거짓 선전을 퍼뜨렸음을 논증한 도리우미 유타카 교수의 논문도 그 또 다른 예이다. 김대호 편사연구관은 일제가 사직단 제사를 폐지한 뒤 그 네트워크를 국가 신도와 일본 놀이문화인 마츠리를 이식하는 방편으로 이용한 실태를 보여준다.

 

31정신의 지속과 과제

 

  운동 참여자만이 아니라 가해자의 대응을 다각도로 조명한 이 책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 있다. 또한 이 책의 말미에는 1919년부터 2018년까지의 31운동 연구 자료 및 논저 목록까지 수록되어 있다. 명실상부하게 31운동 연구사에 한 획을 긋는 시도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 한 권에 나라를 되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이름 모를 이들의 그 모든 인忍苦다 담을 수는 없다. 지방의 만세운동 연구가 더 진척될 필요가 있으며, 학생층 이외의 다양한 계층의 내면세계가 어떠했는지도 앞으로의 탐구 과제이다.

일본과 달리 한국인은 국가 형성의 데모크라시 정신이 투철하다는 사사가와 교수의 논단처럼 그 역사는 오늘에도 지속되고 있다. 31정신은 부당한 억압과 불평등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해 왔던 근현대 한국인들, 그리고 최근의 우리의 얼굴이기도 하며, 세계 곳곳에서 식민지배에 저항했던 이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일 양국은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는 이 정신은 이 책과 같은 성과가 축적되면서 앞으로도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목    차

책이 나오기까지 _4

 

이태진

 

1부 총론 _15

 

국민 탄생의 역사 31독립만세운동의 배경 이태진 _16

 

일본의 헌법체제 수립과 식민지 청산에 대하여 사사가와 노리카쓰 _72

 

31독립만세운동의 세계사적 시각 세계사 인식세계사 서술과의 관련- 아라이 신이치 _99

 

231독립선언과 만세시위운동 _119

 

31만세운동의 경성(서울) 학생시위 실황 -경성지방법원 예심종결서의 분석- 이태진 

 

_120

 

31운동 만세시위 관립전문학생들의 내면세계 김태웅 _159

 

31운동 만세시위 한국인 보통학교학생의 참가 양상과 민족의식의 성장 김태웅 _185

 

 

 

31운동 정신에 기반한 한국, 자유민권운동 격화를 힘으로 억누른 일본

-국가형성 관련 참주僭主폭군暴君의 과제- 사사가와 노리카쓰 _214

 

31독립운동 관계 판결에 의거하여 -내란죄를 둘러싼 판결의 점검- 사사가와 노리카쓰 

 

_253

 

331만세운동의 사상과 문학 _301

손병희의 사상과 31독립만세운동 변영호 _302

 

 

조소앙의 민국인식에 대한 연원 탐색 김승일 _331

 

 

 

31독립운동과 일본문학의 관련 양상 세리카와 데쓰요 _355

 

일제강점기 안중근에 대한 기억의 전승, 유통 김대호 _414

 

431만세운동 전후의 식민지배체제 _447

 

안중근과 일본, 일본인 김봉진 _448

 

일제시기 사직의 폐지와 사직제의 국가신도적 변용 김대호 _506

 

 

31운동과 식민지근대화론 도리우미 유타카 _551

 

31독립만세운동 연구 자료 및 논저 목록 1919~2018 _566

 

오정섭, 김선영

 

 

필자 소개 _590 

 저  (역)   자   약   력

책임 편집

 

이태진李泰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한국근세근대사.

고종시대의 재조명(태학사, 2000), 朝鮮王朝社會儒敎(法政大學出版會, 2000),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태학사, 2005), The Dynamics of Confucianism and Modernization in Korean History(Cornell East Asia Series, 2007), 한국사회사연구(증보판, 지식산업사, 2008), 한국병합과 현대(공편, 태학사, 2009),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동양평화론(공편, 지식산업사, 2010),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지식산업사, 2016), 끝나지 않은 역사(태학사, 2017)

 

사사가와 노리카쓰笹川紀勝

 

국제기독교대학(ICU) 명예교수, 전 메이지明治대학 교수. 헌법, 국제법.

三一獨立運動判決精選(共編, 高句麗社, 1999), 北東アジアと日本植民地支配過去現在, 三一獨立運動朝鮮行政法のかかわりにして(法律時報757, 2003), 日本植民地支配下抵抗軌跡信賴釀成のためには相手苦惱必要がある(平和憲法確保新生, 北海道大學出版會, 2008), 한국병합과 현대(공편, 태학사, 2009), 31獨立運動判決植民地法制硏究つの視點(日本植民地支配實態過去淸算アジアの平和共生けて, 風行社, 2010)

 

집필자(글 실린 순)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

 

이바라키茨城대학 명예교수(작고).

歷史和解可能: アジアでの對話めて(岩波書店, 2006. 한국어판: 역사 화해는 가능한가: 동아시아 역사 문제의 해법을 찾아서, 미래M&B, 2006), 空爆歷史: わらない大量虐殺(岩波書店, 2008. 한국어판: 폭격의 역사: 끝나지 않는 대량 학살, 어문학사, 2015), コロニアリズムと文化財: 近代日本朝鮮からえる(岩波書店, 2012. 한국어판: 약탈 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 일제의 문화재 반출과 식민주의 청산의 길, 태학사, 2014)

 

김태웅金泰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한국근대사 및 역사교육.

한국근대 지방재정 연구(아카넷, 2012), 연희전문학교의 학문과 동아시아 대학(공저, 혜안, 2016), 신식소학교의 탄생과 학생의 삶(서해문집, 2017), 어윤중과 그의 시대(아카넷, 2018)

 

변영호邊英浩

 

쓰루분카都留文科대학 비교문화학과 교수. 동아시아 비교문화학.

朝鮮儒敎特質現代韓國李退溪李栗谷から朴正熙までー(圖書出版クレイン, 2010), 韓國强制倂合100在日韓國人(國際共同硏究 韓國强制倂合一〇〇年 歷史課題, 明石書店, 2013), アジアの共通善現代的再創造をめざして(岡山大學出版會, 2017), 天道敎近代化運動孫秉熙中心(靈性平和第三號, 2018)

 

김승일金勝一

 

동아시아미래연구원장, 중국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 국제위원. 중국사회경제사.

31獨立精神史的 演源 -17世紀 中葉以來 東아시아 秩序 變化에 대한 對應戰略推移反應中心으로-(政府樹立50周年紀念學術大會論文集, 1998), 31운동 전후 쑨원의 한국인식 변화연구(한국독립운동사연구37, 2010),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지역 재판제도의 비교연구(역사문화연구38, 2011), 한민족과 동아시아세계(경지출판사, 2016), 중국혁명의 기원(경지출판사, 2018)

 

세리카와 데쓰요芹川哲世

 

니쇼가쿠샤二松學舍대학 명예교수. 일본 및 조선 근대문학.

1920-30년대 한일농민문학의 비교문학적 연구(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日本植民地支配實態過去淸算: アジアの平和共生けて(공저, 風行社, 2010), (역서, 日本キリスト敎團出版局出版サービス, 2010. 원작: 황순원, 움직이는 성)

 

김봉진金鳳珍

 

기타큐슈北九州시립대학 국제관계학과 교수. 동아시아 국제관계론, 비교사상사.

アジア開明知識人思惟空間 鄭觀應福澤諭吉兪吉濬比較硏究(九州大學出版會, 2004), 歷史和解(공저, 東京大學出版會, 2011), 辛亥革命とアジア(공저, 水書房, 2013), 한국 국제정치학, 미래 백년의 설계(공저, 사회평론 아카데미, 2018)

 

김대호金大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한국사회사.

일제강점 이후 경복궁의 毁撤活用’(1910~현재)(서울학연구29, 2007),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공저, 동북아역사재단, 2009, 20세기 남산 회현 자락의 변형, 시각적 지배와 기억의 전쟁(도시연구13, 2015), 일제강점기 경성부윤과 경성부회 연구(공저, 서울역사편찬원, 2017)

 

도리우미 유타카鳥海豊

 

선문대학교 교양학부 강사. 한국경제사.

일제하 일본인토목청부업자의 활동과 이윤창출(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 일제하 조선인 노동자의 저임금과 일본인 토목청부업자의 부당 이익(한일경상논집60, 한일경상학회, 2013), 일제하 수리조합사업과 일본인토목청부업자(한국문화68,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