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사료적 특성
 
 도서분류 한국사
지은이 : 노명호
옮긴이
면 수 : 344
:  \22,000
출간일 : 2019/06/03
판 형 : 신국판
ISBN : 978-89-423-9067-0(9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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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주문권수 입력: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이 책에서 다루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이하 《절요》), 두 책은 한국사의 허리 부분인 고려시대에 대한 역사책이자 중심적 기본 사료이다. 두 역사책의 편찬 방침에는 조선의 15세기 지배층의 주자학 이념과 사대명분 이념이 철두철미하게 반영되었다. 그 편찬 방침은 고려시대 역사서술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크게 변형시켰다. 고려 역사 편찬의 초기 단계에 사실을 전면적으로 변개한 역사서술에 대하여 국왕 세종을 비롯한 당시의 지배층 일부도 비판을 제기하였다. 그리하여 조정된 최종 편찬 방침이 확정되기까지 오랜 기간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두 역사책의 편찬 방침에 대한 기존 역사학계의 이해는 그 중요한 사실들을 누락하고 오해한 부분이 있어서, 근본적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어느 문헌이나 그 편찬 방침의 중요한 부분을 오해하는 것은 그 이해와 해석에 근본적인 문제를 초래한다. 두 책의 기본적인 편찬 방침에 대한 오해는 고려시대 역사 이해의 구조적인 윤곽부터 세부적인 사실까지 연구자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광범한 왜곡을 만들어 왔고, 그것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15세기에 왜곡된 역사인식의 크고 작은 부분들이 바로잡히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고려시대는 물론 한국사의 연구와 이해에 대단히 큰 과제이다. 저자는 이러한 방대한 문제의 깊고 거대한 뿌리를 따라 두 책이 편찬된 15세기 층위까지 파내려가는 작업을 평생에 걸쳐 해왔다. 오랜 기간 고려시대 연구와 강의는 언제나 그 기본 사료인 두 책의 사료비판 문제와 직접・간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1970년대 후반 고려시대 친족제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을 때, 저자는 두 책의 서술 내용과 1차 사료류의 문헌들 사이에 상통하는 면과 근본적 차이의 면 두 가지 면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에 당황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두 책의 서술 내용도 1차 사료인 고려 당시의 문헌에 철저히 입각하여 직접 인용 위주로 서술된 것이라는 통설적 이해의 근거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인정은 2020년대를 앞둔 지금도 변함없다. 하지만 두 책에 수록되지 않은 1차 사료에 해당하는 여러 자료들이 보여주는 고려시대의 역사상은 그것과 매우 다른 부분이 많았다. 이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차이는 당시 저자가 연구하고 있었던 친족제도 및 그와 연관된 사회제도 부분에 한정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자료 조사과정에서 조금씩 함께 보게 된 문화・사회・정치 등에 대한 1차 사료류에 나타나는 차이의 분포 범위는 역사상 전체에 걸쳐 광범하게 뻗어 있는 것으로 의심되었다. 그 의문이 어떠한 답에 도달하는지에 따라 고려시대 각 분야의 연구와 관련한 《고려사》 등의 해석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학계의 연구동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문제였다. 지극히 조심스러운 문제여서 연구범위를 친족제도에 한정하며, 그 의문에 대한 조사와 검토를 거듭하였다. 그리고 그 의문의 답을 찾는 오랜 노력 끝에 긴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고려시대 고문서자료집이 1987년과 1988년에 허흥식 교수와 이기백 교수에 의해 편찬되어 간행된 것은 고려시대 고문서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1994년부터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생들과 고대 및 고려시대 고문서를 강독하며, 자료의 추가 조사・수집・판독, 문서양식에 대한 연구를 병행하였다. 추가 조사된 자료들도 적지 않았고, 많은 문서들의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졌다. 크고 작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기존에 알려져 있던 문서들도 어떤 것은 내용 순서가 착란된 것을 바로잡아 재구성하기도 하고, 어떤 문서는 연대를 거의 200년 정도 올려야만 되는 것으로 판명되어 해석도 다시 하였다. 그 내용에는 종래에 주목하지 않던 고려시대 정치제도의 중요한 부분에 대한 새로운 면모들도 많이 포함되었다. 그 결과는 2000년에 두 권의 책으로 출판하였는바, 《고려사》・《절요》와 그것에 수록되지 않은 1차 사료의 차이는 더욱 뚜렷해졌다. 그 차이의 분포 범위도 고려 역사의 각 부문 전반에 걸친 것이 분명해졌다. 고문서 연구와 병행하여 고려시대 문집 등 그 시대에 만들어진 문헌들에 대한 저자 개인의 조사와 검토를 통해서도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고려사》와 《절요》를 통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고, 그 때문에 그 존재 자체가 인식되지 않거나 부정된, 고려시대 역사상의 중요한 구성요소들을 주목하게 되었다. 고려시대 세 가지 천하관 가운데 가장 큰 흐름이었던 다원적 천하관, 그와 밀접히 연관된 고려의 황제제도 및 관련 정치제도, 고려시대 문화의 3대 구성요소의 하나로서 문화적 개성의 중심축이었던 토속문화, 조선 후기와 근본적으로 다른 고려사회의 모습 등이 그것이다.

  1997년, 이규보의 다원적 천하관에 대한 논문을 시작으로, 저자는 그러한 주제들에 대한 일련의 연구들을 발표하였다. 그것은 저자가 연구해 온 고려 친족제도의 바탕이 된 사회・문화・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저자가 여러 논저들을 통해 추구한 고려시대의 다원적 천하관・황제제도・토속문화 등은 《고려사》와 《절요》의 서술에 크게 영향받은 학계의 통설적 이해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들이었다. 학계의 통설을 고수하는 연구자들은 서로 배치되는 두 역사책과 1차 사료들 사이에서 저자의 논저들이 후자만을 임의로 선택하여 확대해석하였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한 오해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의 제I편에서는 15세기에 이루어진 역사편찬이 현대에 남긴 것에 대한 검토를 하였다. 1차 사료에 담겼던 고려시대 중요 역사상들이 《고려사》와 《절요》의 편찬 방침에 따라 어떻게 선택에서 배제되거나 부분 삭제되고, 때로는 변개되어 서술되었는지를 규명할 것이다. 그리고 1차 사료를 변형하기 어려워 불가피했거나 눈에 잘 띄지 않아 그러한 편찬원칙에 따라 제거되지 않은 작은 단편적 기사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음을 아울러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단편적 기사들은 그 자체로서도 의미를 갖지만,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전체의 문장이 편찬원칙에 따라 변형되기 전에 어떠했을지, 환원된 모습을 대략적으로라도 파악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러한 기사들은 《고려사》나 《절요》가 1차 사료의 내용을 밑받침해 주는 자료가 되기도 함을 보게 될 것이다.

  제II편은 현대에 이루어진 학계의 《고려사》 등의 연구를 돌아볼 때 발견되는 중요한 문제들을 검토한 것이다. 제1장에서 《고려사》와 《절요》에 대한 문헌연구의 기초로서 이본의 조사와 정리, 정밀한 사료비판이 학계에서 오랜 기간 정체되고 있는 데 따른 문제를 검토할 것이다. 제2장에서는 《고려사》 등의 연구에 큰 작용을 한 두 종류 개념체계의 문제를 다루었다. 많은 사회들에서 나타나는 객관적 사실들을 대상으로 한 개념체계와 고려시대 당시의 정책 등에서 중요하게 거론된 개념체계, 두 가지를 사례를 통해 검토하였다. 두 가지 개념체계 모두 결함을 내포한 상태로 도입될 경우 연구에 중대한 오류를 초래하는 것을 실제 사례들로 살펴볼 것이다. 반면에 사실이나 사료에 충실하고, 논리적으로 정밀한 개념체계에 입각할 경우 고려시대 역사인식의 폭과 깊이가 새롭게 확대될 가능성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검토할 것이다. 

  제III편에서는 《고려사》와 《절요》의 정밀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본들에 대해 검토하였다. 제1장에서는 그 이본들의 조선시대 간행 상황과 그에 따른 각 이본들의 특징들을 살펴보았다. 제2장에서는 그 이본들의 현존하는 상태에 대해 그 최대 소장처인 규장각의 소장본들을 중심으로 조사하고 그 개별 특성들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의 한 장은 새로이 쓴 글이고, 다섯 장은 앞서 개별 논문으로 발표된 바 있다. 개별 발표된 논문들을 하나의 책으로 편집하며,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일부 중복되는 내용은 삭제하기도 하고, 논지를 더 충실하게 해 줄 새로운 논증 자료들을 추가하여 검토한 것들도 적지 않다. 또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표현을 다듬은 곳도 많다. 변화된 부분들을 일일이 표시하는 것은 책의 논지 파악을 방해할 것으로 우려되어 생략하였다. 앞서 발표한 논문들에서 변화된 내용들은 이 책을 기준으로 한다. 

 

  이 책이 학계에 보탬이 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선학들이 쌓아 올린 연구성과에 힘입어 학문적 기초를 다지는 지극히 어려운 연구에 도전할 수 있었던 때문이다. 다만 저자의 한계로 말미암아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이 책의 집필에 큰 도움이 된 것은 《고려사》와 《절요》의 이본들을 조사하고, 그 내용을 정밀 대조한 교감본의 편찬이었다. 그 결과물인 《교감 고려사절요》는 집문당에서 출판되었고, 《정본 고려사》는 서울대출판문화원에서 출판작업이 진행 중이다. 그 교감사업에 참여하여 오랜 시간 노력한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생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

  큰 출판물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바쁜 상황에서 이 책의 출판에 적극 힘써주신 김경희 사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또한 독자의 눈높이에 서서 보기 좋은 책으로 만들어 주신 지식산업사 편집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2019년 봄

      양평 한국역사문헌연구소에서

노 명 호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고려시대 양대 사서에 입혀진 조선 전기 주자학 이념과 학계의 편견을 걷어내다

사서 속에 감추어진 이면과 시대상을 비추어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고려의 면면

사료비판과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우리역사의 중추를 복원한 역작

 

  고려시대 연구의 최고 권위자 노명호 교수가 고려시대 대표 사서를 해체한 역작을 펴낸다. 먼지 속에 파묻힐 뻔했던 태조왕건상을 발굴해 냈던(고려 태조 왕건의 동상, 2012) 그는 이번에 두 사서에 드리워진 지나친 유교사관을 제거하고 역사적 진실을 추적하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물망처럼 촘촘하고도 균형 잡힌 논점, 일목요연한 전개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편 도입부에 저자가 쌓아올린 연구가 상징적으로 구현되어 있으므로, , , 편에 드러난 이미지에 주목해 보기로 하자.

 

. 통천관: 고려 황제제도의 증거

 

  제목 그대로 따분한 책일 것이라는 짐작은 첫 장을 넘기면서 사라진다. 15세기 전반에 고려의 황제제도 서술 문제를 놓고 벌인 격렬한 논쟁이 박진감 넘치게 펼쳐진다. 정도전 이하 변계량 등 신료들이 고려의 황제제도는 참람한 흉내僭擬之事에 불과하므로 역사서술의 개서改書를 주장하지만, 세종은 제한적이긴 하나 직서直書논리로 사서 편찬을 지휘해 나간다.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춘추필법을 내세운 주자학적 사대명분론 대 이실직서以實直書의 원칙론의 대립이다. 조선 전기 현실 정치의 내막과 사서 편찬을 둘러싼 줄다리기 속 이념에 치우친 신료들의 경직된 모습만큼이나 세종의 날카로운 정세 인식과 역사를 멀리 보는 안목이 더욱 돋보인다. 세종실록의 기록에서 태조 왕건상의 존재를 간취해 냈던 저자는 이번에 고려 역사에도 정통했던 현군 세종의 면모를 재입증한다. 천하다원론자 왕건이 세운 고려의 외왕내제外王內帝는 부분적이었다 할지라도 후대 사가들의 입김에 의해서 지워질래야 지워질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었던 것이다. 양식이면서도 독창적인 면모를 갖춘 통천관이 그것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 태조 왕건상: 유교적 서술에 가려진 토착문화

 

 제한적직서 원칙에 따라 서술된 고려사에 대한 맹신은 황제제도의 실체뿐만 아니라, 유교문화 과장 서술에 대해서도 눈감게 만든다. 역사기록에서 화이사상, 사대명분론과 같은 이념의 그늘이 두드러질수록 고려의 실상과는 멀어지게 된다. 저자는 역사서술에서 거의 배제되다시피 한 토속적 예속, 토풍土風을 찾아내 다시 한 번 사서의 견고한 성을 붕괴시킨다. 연등팔관회, 선랑 등의 국풍國風(=土風)은 화풍華風(=唐風)론자 최승로 등에 의해 이단으로 배척되어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고려문화에서 그 비중과 저변은 매우 광범하였다. 최상층 문화에까지 스며든 토풍의 대표적 예가 바로 고려 태조 왕건상이다. 왕건상은 나신조각상을 숭배한 고구려 동명신앙의 토속제례문화의 현현이자 전륜성왕의 불교문화 및 태조성훈의 유교정치문화가 융합된 상징이다. 그렇다면 기록과 실제 사이의 괴리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저자는 사서의 좁은 틀을 깰 타개책으로 개념체계를 제시한다. 특정 사관이나 이론에 부수된 개념체계의 한계를 파악하고 그 사각지대에 접근해야 비로소 새로운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 여러 판본들: 단계적 교감 작업의 중요성

 

  사서를 과감하게 해부한 위에 고려사를 새로 복원해 나가는 첫 관문은 다시 사서로 돌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사료비판, 사서의 계통 분별, 이본들 정밀 조사 및 규장각 소장 문집들의 이판본 대교교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문집의 선본을 저본으로 하여 다른 판본들을 대조하여 교감주를 다는 기초교감이 첫 단계라면, 문집과 연관된 다른 사서나 문헌 등과 비교 검토를 거치는 정밀교감이 그 다음 단계이다. 삼국시대 연구에서 시작, 고려의 경제 사회 정치 문화 집단의식을 아우르는 저자의 넓고 깊은 학문 스펙트럼은 이러한 튼튼한 기초공사에 기반을 둔다. 따라서 굳이 기초작업을 소홀히 해 온 학계의 날림 연구 풍토에 일침을 가하지 않더라도 그의 연구 자체가 채찍이며, 고려시대사를 넘어서 한국 역사 연구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사편찬 방침의 오해를 푸는것으로 시작한 이 책은 황제제도, 친족관계, 문화의 전통과 지속, 사서의 위상과 한계 및 그 대안까지 모색한다. 따라서 우리 역사의 허리인 고려사 500년부터 그 뿌리 및 머리까지 탐색해 나가는 그야말로 거대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고려사이면서 조선전기사이고, 사료비판집인 동시에 문화사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마치 골드베르크 협주곡과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합쳐 놓은 듯하다. 학도들과 학자들에게는 지침과 모델, 고려시대로 여행을 떠나는 독자들에게는 지도이자 이정표가 되리라 확신한다.

 목    차

서 문

 

제Ⅰ편 서술 및 편찬 원칙의 새로운 파악 15 

 

   제一장 《고려사》의 ‘참의지사僭擬之事’와 ‘대사천하大赦天下’의 ‘이실직서以實直書’ : 핵심이 삭제된 고려의 황제제도……………17 

      1. 머리말 _17

      2. ‘참의지사’의 개서改書・직서直書 논쟁 _23 

 1) ‘참의지사’ 서술 문제의 대두 _23  

 2) 개서와 직서의 논리 _28          

      3. ‘직서’ 원칙의 한계 _37

 1) 적용 예외 확대 : ‘대사천하大赦天下’의 변개 _37

 2) 원초적 한계 : 금기어禁忌語 고려 황제・천자 _41

 3) 《수교고려사》에 대한 반발과 편사 중단 _57

      4. 《고려사》의 ‘황제제도’ 직서의 실상 _64

 1) 편찬 재개와 직서 원칙의 확인 _64

 2) 편찬 작업 방식의 변화와 내용 확충 : 《고려사전문》 _69

 3) 선행 성과・한계의 종합적 승계 그리고 약간의 진전 : 《고려사》             _77

      5. 맺음말 _86

 

   제二장 새 자료들로 보완한 《고려사절요》와 《수교고려사》의 재인식…89

 

      1. 머리말 _89

      2. 〈고려사절요》의 〈범례〉와 《수교고려사》 _93

      3. 세종 대 《수교고려사》의 사인私印과 활용모색 _104

      4. 《고려사절요》 기사에 적용된 두 가지 ‘직서直書’ _108 

 1) 《고려국사》의 유산과 《수교고려사》의 《고려실록》 기사 첨가 _108 

 2) 《수교고려사》의 삭제에 의한 소극적 직서 _118

      5. 《고려사절요》와 《고려사》의 다른 내용과 그 배경 _123

 1) 기사 내용 차이의 한 가지 예: 졸기卒記 _123

 2) 《고려사》와 다른 《고려사절요》 기사와 두 가지 〈본초本草〉_127 

      6. 맺음말 _132

  

제Ⅱ편 사료비판과 고려시대 연구의 새로운 과제 135  

 

   제一장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재인식과 한국사학의 과제…137

 

      1. 머리말 _137 

      2.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이본들에 대한 이해와 이용 실태 _141      

      3.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술이부작述而不作’ 적용에 대한 이해 _145  

      4.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적용된 ‘직서直書’의 세부 지침 _160

      5. 맺음말 _174

 

   제二장 고려시대 새로운 영역의 연구에서 사료와 개념체계의 관계

     : 실제 사례를 통한 고찰…………………………………………177

 

      1. 머리말 _177

      2.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개념체계와 사료: 친족제도 연구의 경우 _181

      3. 연구대상 당시의 핵심적 개념체계와 사료: 토풍・화풍의 경우 _193

      4. 맺음말 _204

  

제Ⅲ편 이본들의 성립시기와 그 상태 207 

 

   제一장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인쇄・보급과 이본들…………209 

 

      1. 머리말 _209

      2. 《고려사》 _210

      3. 《고려사절요》 _220

      4 .맺음말 _228

 

   제二장 규장각 소장 《고려사》・《고려사절요》・고려시대 문집……231 

 

      1. 머리말 _231

      2. 《고려사》 _233

      3. 《고려사절요》 _245

      4. 문집류 _251

      5. 맺음말 _310

 

영문초록(Abstract) 312  

참고문헌 323

찾아보기 328  

 저  (역)   자   약   력

노명호盧明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 문학석사(1979), 문학박사(1988).

전남대학교(1980~1982), 중앙대학교(1982~1990)를 거쳐, 서울대학교 국학과(1990~2017) 교수로 재임했다. 역사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소장 등 역임. 현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

 

주요 저서로는 고려 태조왕건의 동상 황제제도고구려 문화 전통의 형상화(2012), 고려국가와 집단의식: 자위공동체, 삼국유민, 삼한일통, 해동천자의 천하(2009), 공저로는 고려역사상의 탐색 국가체계에서 가족과 삶의 문제까지(2017), 교감 고려사절요(2016), 불국사석가탑 중수문서(2009), 새로운 한국사 길잡이(2008), 개정신판 한국사특강(2008), 한국고대중세 지방제도의 제문제(2004), 한국문화사 연구의 방향 모색(2002), 韓國古代中世古文書硏究(, )(2000), 시민을 위한 한국역사(199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