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지역사회 변동과 민족운동
 
 도서분류 한국사
지은이 : 이윤갑
옮긴이
면 수 : 448
:  \28,000
출간일 : 2019/09/16
판 형 : 신A5
ISBN : 978-89-423-9072-4(9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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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조선 중세사회가 본격적으로 해체의 길로 접어든 계기는 1862년 전국 70여 개 군현에서 발생한 농민항쟁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확대, 발전하였던 농민층의 반봉건투쟁은 개항 이후 반침략 근대화운동으로 전화하면서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자주적 근대화운동은 같은 해 일본의 침략으로 중단되었고, 이후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강제 병탄하면서 최종적으로 좌절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사회는 식민지 근대화를 강요받았다. 식민지 근대화는 제국주의 독점자본이 주도하는 철저히 영리 위주의 반인간적 근대화로 식민지 민중을 빈궁하고 무권리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열과 차별을 심화시켰다. 이에 저항하여 우리 민족은 다양한 사상을 받아들이며 민족해방운동을 발전시켜 갔다. 한말 자주적 근대화운동을 계승한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은 무정부주의 민족혁명운동, 사회주의 민족혁명운동, 삼균주의에 의거한 공화주의 민족혁명운동 등으로 분화발전하였고, 민족협동전선운동을 전개하여 연대와 통일로 나아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조선도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 일제가 연합국에 항복하자 조선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을 계승해 자주적 건국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미소가 남북을 분할 점령하고 한반도를 체제 대결장으로 전락시키면서 자주적 건국운동은 왜곡되고 좌절되어 갔다. 외세에 의한 분단은 결국 남북에 대립적인 분단정부 수립과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귀결되었고, 한국전쟁은 분단을 더욱 고착화하고 남북을 완전히 이질적인 체제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후 민족운동은 분단 극복을 위한 자주평화통일운동과 공화주의 구현을 위한 민주화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근대로의 이행이 역사적 진보로 평가받는 근거는 인간다운 사회성社會性 자각에 입각해 대중이 주체가 되어 사회구성원 모두가 차별 없이 평등과 자유를 누리는 진일보한 사회구성체를 만드는 변혁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고, 그 노력이 정치경제교육문화 모든 영역에서 일정하게 제도화되고 규범화되는 사회적 결실을 성취한 것이다. 우리 근현대사에서도 이러한 노력은 조선 말 반봉건투쟁에서 출발해 한말 반봉건반침략 구국투쟁으로 성장하고, 일제 강점기에는 다양한 진보사상을 흡수하여 근대적 민족해방운동으로 발전하였으며, 해방 후 자주적 건국운동을 거쳐 분단체제 아래에서는 자주평화통일운동과 민주공화제운동으로 맥을 이어 갔다.

 

  이 책은 우리 민족운동의 이러한 흐름을 경상도 성주의 지역사를 중심으로 3부로 나누어 연구하였다. 1부에서는 1862년 성주에서 일어난 농민항쟁에서 시작해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에 이르기까지 반봉건투쟁이 반봉건 반침략의 민족운동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추적하였다. 2부에서는 한말 국채보상운동대한협회 지회 개설성명학교 설립 등 국권회복운동의 발전과 나아가 이를 계승한 일제강점기 유림단 독립청원운동과 31운동, 부르주아 민족운동과 신간회 지회설립운동 등을 연구하여 민족운동의 발전과정을 해명하였다. 3부는 해방공간의 자주국가 건설운동과 보도연맹조직, 한국전쟁기의 좌우 대립과 민간인 희생 및 사회변동, 전후 분단고착화 과정과 19604월 혁명기의 피학살자유족회 활동 등을 연구하여 해방 후 정치지형의 변화를 밝히고 민족운동의 새로운 과제를 검토하였다.

  경상도 성주지역의 근대이행기 사회변동과 민족운동 연구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당시 필자는 1819세기 경북지역의 농업변동을 추적하고 있었는데 관련 자료가 성주 유림의 문집에서 집중적으로 많이 나왔다. 그리하여 경북지역 농업변동 연구를 마치자 자연스럽게 성주 지역의 농업변동을 살피는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연구를 시작하고 보니 문집자료만으로는 근대 이행기 성주 농촌사회의 변동을 재구성하는 데는 절대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부분의 자료가 재지사족층의 입장에서 당대 농업문제를 언급한 자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필자는 19세기 중엽 성주 농촌사회의 변동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 두 가지가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문헌실에 소장되어 있음을 알았다. 이 자료들은 향리가 작성한 것으로 유림과는 다른 관점에서 당시의 변동을 서술하고 있으리라 판단되었다. 하나는 1862년 농민항쟁 당시 시위대의 공격을 받은 성주 향리가 쓴 성주민요시전리방서택현변무록星州民擾時前吏房徐宅鉉辨誣이고, 다른 하나는 18세기 중후반 향리를 역임한 도한기都漢基가 성주사회의 실상을 읍지 형식으로 기록한 읍지잡기邑誌雜記였다. 그러나 두 자료는 당시 모두 희귀 고문헌으로 관리되고 있어서 전문연구자라 해도 열람이 쉽지 않았다. 필자는 은사 김용섭 교수와 오일주 선배의 도움으로 제때에 이 자료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두 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근대 이행기 성주 농촌사회의 변동을 해명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연구가 손보기교수 정년기념사학논총(1988)에 발표된 19세기 후반 경상도 성주지방의 농민운동이었다.

  당시 필자는 성주지역을 답사하면서 경북과학대학 배기헌 교수의 주선으로 읍지잡기의 저자 도한기의 종증손從曾孫을 면담하였다. 종증손 도재영都在榮 옹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의 가족사와 지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면서 가보家譜 한부를 필자에게 주었다. 그 증언을 들으면서 필자는 근대 이행기를 넘어 815 해방 공간에 이르는 성주지역 근현대사를 연구하고 싶은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그 작업을 시작하려고 보니 자료 부족이라는 큰 난관이 앞을 가로막았다. 당시로서는 일제 강점기와 특히 해방공간에서 관련 자료를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연구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고, 열망은 염원으로 바뀌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훌쩍 지난 2009년 필자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성주지역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관련 피해자 현황을 조사하는 연구용역을 의뢰받았다. 이 연구는 성주 전 지역에서 한국전쟁을 경험한 70세 이상 노인을 상대로 한국전쟁 전후 시기의 지역 상황과 민간인 희생에 관한 증언을 채취하고 공공기관이나 민간에 남아 있는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민간인 희생실태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필자로서는 미처 예기치 못한, 그러나 오랜 염원을 이룰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피해자 현황조사를 위해 서둘러 대학원 제자들과 3개의 조사팀을 구성해 성주 전역을 대상으로 증언 채취와 관련자료 수집을 진행하였다. 조사팀이 성실히 면담을 진행해 준 덕분에 6개월 만에 성주 전역에 대한 조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 연구용역을 통해 필자는 20여 년 전 근대 이행기 성주사회의 변동을 연구하며 가졌던 소망을 마침내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 작업에서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및 한국전쟁 전후 시기 성주사회의 변동을 추적할 수 있는 풍부한 증언과 관련 문헌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용역이 끝나자 필자는 서둘러 근대전환기 성주의 사회변동과 민족운동을 정리하는 연구계획을 수립하였다. 목표는 1862년 농민항쟁에서 19604월혁명기까지 근대전환기 성주의 100년사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연구는 20여 년 전에 집필한 성주 논문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1862년 농민항쟁에서 1894년 동학농민전쟁까지를 연구한 이 논문은 발표 이후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고 관련 연구도 다수 이루어져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였다.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필자는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도 큰 도움을 받았다. 2014년 한국연구재단 우수학자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연구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지원받은 것이다.

  이상의 경과를 돌아보면 이 연구는 은사 김용섭 교수를 비롯해 오일주 선배, 배기헌 교수, 중요한 증언을 해 주신 도재영 옹과 성주의 여러 어르신들, 면담조사에 함께 참여해 준 손경희, 임삼조, 최용석, 배성호, 홍재곤, 남시학 등 제자들, 그리고 집안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자료를 흔쾌히 내어주신 도재영 옹의 아드님 도일회 전 성주문화원 원장님 등 실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한 분, 한 분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이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건강을 크게 상해 연구를 중단할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정성껏 치료하고 이끌어 주신 스승 박유상 선생님과 한충희 한의사님, 마음을 다해 세심하게 보살피고 뒷바라지해 준 아내 배명숙 님과 가족 모두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연구를 끝내고 돌아보면 늘 부족하고 미흡하여 아쉽고 송구스럽다. 관련 자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는 탓도 있지만 스스로의 연구 역량이 부족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 연구를 흔쾌히 출판해 주기로 한 지식산업사 김경희 사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더욱이 이 책을 31운동 100돌 기념총서에 포함시켜 간행하겠다고 하시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과분한 선물임을 알지만 존경하는 학계 큰 어른이 주시는 따뜻한 격려로 받아들이고 더욱 연구에 정진하는 것으로 보답하려 한다. 이 책이 읽기 쉽게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것도 정확하고 편한 우리말을 앞장서 되살리려는 지식산업사의 편집정신과 노력 덕분이다. 이 책의 편집 실무를 맡아 정성을 쏟아 준 김연주님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20197

이 윤 갑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성주 지역의 역사로 근대 민족운동의 태동과 전개를 읽다

100년의 부침 속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와 피, 땀이 스며든 공간

모순과 괴리의 시대 속에서도 다시 소생해 온 사상과 숨결의 기록

 

경상도 성주의 지역사로 한국 근현대의 파노라마를 엮어낸 역작이 출간된다. 조선 후기 농업 연구에서 출발하여 근대사를 다각도로 조명해 온 이윤갑 교수는 격변기 성주의 사회경제적 조건 속 민족운동의 모색과 진전을 주시한다. 문향文鄕면서도 교통이 불편했던 성주 지역은 전통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상과 사회구조 면에서 근대로의 이행 과정을 선명하게 살필 수 있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성과 특수성이 공존하는 곳인 것이다. 특히 사회운동의 공간적 파급력을 확인할 수 있는 범위를 군 단위의 행정구역으로 설정하고 장기변동을 관찰한 그의 시도는 근 20여 년 축적되어 온 지역사 연구의 모범이자 지역사와 민족운동사의 효과적 결합이라는 결과물을 낳았다.

 

농민항쟁의 단계적 추이를 포착하다

 

1862년의 농민항쟁은 민족운동을 자주적으로 근대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저자의 연구 방법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출발점이다. 상업적 농업 발전에 따른 부세負稅 편중 심화, 그 악순환이 계속되는 삼정문란이 마침내 농민들의 투쟁을 불러왔다. 저자는 제2차 농민항쟁은 제1차 때와 달리 소빈농층의 사회개혁 요구가 전면화했고, 1883년의 농민항쟁에서는 조직 내부의 체계적 통일성도 강화되고 정치권력의 문제를 제기했음에 주목한다. 특히 1,2차 항쟁에서 향회를 이끌었던 두민頭民을 추정하는 대목에서는 사회경제사에 정통하며 관련 자료를 발로 뛰며 조사해 온 학자의 예리한 추론을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소빈농층 주도의 반봉건투쟁은 동학농민전쟁에서 조직과 투쟁 목표 면에서 최고 단계에 달했다고 본다. 이 시기 농업변동은 농민적 상품생산이 반봉건투쟁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면서 성장 확대되는 근대농업으로의 이행과정’(이윤갑, 한국 근대 상업적 농업의 발달과 농업변동, 2011,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이라는 저자의 시각이 운동의 측면에서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농민운동은 좌절되면서 한말 농업모순의 온상이었던 식민지 지주제가 육성되어 나갔다(이윤갑,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소작정책 연구, 2013,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근대를 열어간 민족운동의 주역들

 

저자는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성주의 민족운동을 크게 두 흐름으로 집약한다. 하나는 이진상, 이승희, 김창숙 등 거경궁리居敬窮理지행병진智行竝進을 체현하며 척사위정운동에서 국권회복운동을 거쳐 유림단 독립청원운동과 임시정부 참여, 해외 독립운동기지 건설운동을 이끈 유림층의 활동이다. 또 하나는 성주 도씨와 성산 배씨 등 향리가문 출신이 중심이 된 신흥 요호부농층의 동향이다. 그 대표적 인물 도갑모는 사회경제적 모순의 해결책으로 성취형 신분제를 제시하였다. 이들은 국채보상운동과 애국계몽운동에 이어 실력양성 청년 운동(성주청년회)에 참여하며, 이후 건국운동에 앞장섰다. 두 주체는 신간회 지회운동을 계기로 연대하고, 그것은 해방 후까지 이어졌다. 유림 측과 재지在地 사족층의 자료는 물론, 향리가 작성한 변무록과 읍지(읍지잡기) 등을 활용한 저자의 세밀한 탐사로 비로소 성주 사회의 변동이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특히 향리 출신 민족부르주아층의 체계적 조명은 지금까지 거의 연구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민족운동사 연구의 다변화와 심층화에 기여할 것이다.

 

성주, 근현대사의 거울

 

해방 후 좌우의 대치,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성주 민족운동의 흐름은 면면히 이어졌다. 우익이 정치세력을 형성하지 못할 만큼 미약했던 성주에서는 좌우 분열에 따른 대립은 심하지 않았고, 10월 항쟁에서 보듯이 좌익들은 임기응변적으로 대처할 뿐이었다. 일제강점기 사상보국연맹을 닮은(한성훈, 2019) 국민보도연맹의 창설(1949)은 식민지 억압 기제의 재현이자 내재화였다. 어찌 보면 이 시기 민족운동의 주체는 이념과 권력의 하수인으로서 민간인들을 대량 살해한 좌우익이 아니라, 무참히 스러져 갔으면서도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나는풀과 같은 성주 사람들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제5장부터 성주인들의 구술과 증언, 부역자 처벌 명단 등을 제시한 것은 이러한 의도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10월 항쟁을 거쳐 보도연맹원 학살, 인민군과 좌익세력의 보복 학살(적대세력사건)과 부역자 집단학살의 참극은 성주만이 아니라 제주, 영광, 산청, 고양 등 이 땅 어디에서나 자행되었다. 그렇다면 이 풀들은 반세기 전 이 땅에 숨 쉬었던 모든 이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주라는 공간에 초점을 맞추었으면서도 이 책은 지역사를 넘어 민족운동과 사상의 발전을 다루며,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까지 스케치한다. 근대로의 진입은 근대사회의 모순이 배태되는 과정이었으면서도평등과 자유를 지향하는 변혁운동이 마침내 제도화규범화되는 성취도 있었다. 제국 또는 제도라는 억압과 폭력에 맞서 항쟁에서 비폭력운동의 형태로 진화되어 온 풀들의 생명력은 고통과 상처에 멍들었을지라도 한낱 헛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31운동 100돌 기념출판의 세 번째 시리즈로 이 책을 선보이는 기획 의도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목    차

머리말 4

서론 지역사 연구 방법과 과제 13

일러두기 14

 

 

 

1 1862년 농민항쟁과 사회변동 31

 

   1. 19세기 중엽의 사회경제 상태와 신분질서의 약화 32

1.1 19세기 중엽의 사회경제적 변동과 삼정문란 32

1.2 사족층士族層 분화와 신분질서의 약화 42

 

 

   2. 1862년 농민항쟁의 발생과 전개 49

2.1 소민인小民人 주도의 1차 봉기 49

2.2 빈농층 주도의 2차 봉기 59

 

 

   3. 농민항쟁 이후의 사회변동 70

 

2 항 이후의 사회적 갈등과 동학농민전쟁 85

 

   1. 1870년대 삼정개혁의 추이와 1883년 농민항쟁 86

1.1 고종집권 초기의 반동과 1883년의 농민항쟁 86

1.2 농민항쟁 이후 향약 시행과 요호부농층의 동향 97

 

 

   2. 동학의 전파와 1894년 동학농민전쟁 105

2.1 동학의 전파와 동학군의 개혁운동 105

2.2 지방관아세력의 반격과 동학농민군의 성주읍성 점령112

 

3한말 유교지식인층의 현실 인식과 국권회복운동 119

 

   1. 한계 이승희의 내수자강 개혁론과 국권회복운동 120

 

1.1 내수자강론의 형성과 의진시사소擬進時事疏의 국권회복론 120

1.2 국채보상운동과 구국외교활동 145

 

   2. 대한협회 성주지회 참가층의 현실 인식과 구국계몽운동 152

2.1 대한협회 성주지회 참가층의 현실 인식 152

2.2 대한협회 지회 설립과 친일합방파 규탄운동 165

2.3 성명학교 설립 170

 

4 일제강점기 사회변동과 민족운동 175

 

  1. 일제 병탄 이후의 사회변동과 유림의 동향 176

1.1 민족운동 탄압과 식민지 지배체제의 구축 176

1.2 1910년대 이승희의 민족운동과 성주유림의 동향 178      

  2. 유림단 독립청원운동과 31운동 ▄ 191  

2.1 유림단 독립청원운동과 유림의 참여 191

2.2 31만세운동과 주도층 202

 

  3. 192030년대의 민족운동 213

 

3.1 유림층의 제2차 유림단의거와 동창학원 운영 213

3.2 부르주아 민족운동의 전개와 신간회 지회 결성 221

3.3 사회주의 사상의 수용과 확산 234

 

5 해방 후 건국운동의 분열과 좌우 대립 243

 

  1. 인민위원회 결성과 모스크바 삼상결정 지지 244

  2. 10월 항쟁과 좌우 대립 253

  3. 단선 단정 반대투쟁과 국민보도연맹의 조직 266

3.1 남로당 조직의 확대와 단선 단정 반대투쟁 266

3.2 경찰의 좌익 토벌과 국민보도연맹 조직 276

 

6한국전쟁의 내전 양상과 반공분단체제 확립 291

 

  1. 한국전쟁 초기의 국민보도연맹원 예비검속과 학살 292

 

  2. 인민군의 진주와 점령정책 299

2.1 인민군의 점령과 치안대인민위원회 조직 299

2.2 우익인사 색출과 처형 307

2.3 토지개혁과 현물세제 수확고 조사 314

  3. 인민군의 전쟁 동원과 유엔군 공습 320

  4. 유엔군의 수복과 경찰의 부역자 처벌 325

 

4.1 유엔군의 성주 수복 직후 경찰의 부역자 집단학살 325

4.2 경찰의 부역자 검거와 처벌 332

  5. 정치지형의 변동과 반공분단체제의 확립 341

부록경상북도 성주군 부역자 처벌 일람표(1950) 345

 

7 1950년대 후반의 정치변동과 4월 혁명 357

  1. 한국전쟁 이후 정치지형의 변동 358

  2. 4월 혁명과 피학살자유족회 활동 361

 

결 론 373

자료 및 표 목록 430

참고문헌 432

찾아보기 443

  

 저  (역)   자   약   력

이윤갑潤甲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를,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부터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 대구광역시 실무위원으로 활동하였고, 2007~2010년 대통령직속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학구원 원장 겸 한국학연구원 고문헌연구소장이며, 대구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있다.

저서로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소작정책 연구(2013,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한국 근대 상업적 농업의 발달과 농업변동(2011,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백범일지(2010), 인문생태의 눈으로 지역혁신을 꿈꾼다(2009), 인문정신의 회복과 한국학의 길 찾기(2008) 등이 있고, 공저로는 영남의 31운동과 만주의 꿈(2019), 한국사 연구의 새로운 동향(2018), 동학농민혁명의 지역적 전개와 사회변동(2012), 칠곡군의 인문학적 전통(2011), 새로운 한국사 길잡이()(2008)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