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들 눈에 비친 3·1독립운동
 
 도서분류 소설
지은이
옮긴이 : 세리카와 데쓰요
면 수 : 476
:  \18,000
출간일 : 2020/02/28
판 형 : 신국판
ISBN : 978-89-423-9077-9(0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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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주문권수 입력: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이 책은 3․1독립만세운동을 일본 작가들이 어떻게 보고 표현했는가를 작품의 번역과 해설을 통해서 소개한 것이다.

  옮긴이의 한국과의 만남은 1965년의 한일회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그해 대학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대학생이 되어 세례를 받고, 전국적인 기독교 학생 동아리에 들어갔다. 마침 그때 학생회의 지도적인 인물이었던 오야마 레이지尾山令仁 목사가 처음으로 대학생들 십여 명을 데리고 제암리를 방문했다. 오야마 목사는 방문 동기를 “우리 일본인이 과거에 한국에서 행한 죄과에 대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받을 것을 바랍니다.”라고 하며 머리를 숙이고 미안하다고 되풀이했다. 그 당시에는 유족들도 아직 많이 생존해 있었고, 곧 돌아가라는 소리를 지르며 냉대를 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왔지만, 제암교회를 재건하자는 결의를 하게 되었다.

  1966년 아시아 각국 교회의 교류를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아시아복음연맹이라는 단체가 한일 대학생 교류를 추진하여 일본의 기독교도 학생 십수 명이 한국을 방문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때 나도 그 일행에 들어가 주로 서울과 부산에서 모임을 가졌다. 우리 일본 학생들은 오야마 목사가 한 말을 쓴 사죄 카드를 만들어 서울과 부산 길거리에서 나누어 주었다.

  일본에서는 1967년 12월 1일 ‘한국 제암교회 사건 속죄 위원회’라는 명칭으로 교회 재건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나도 적극 참여하여 도쿄 거리에 나가 사죄 카드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열 명이 시작했으나, 다음 해에는 6백 명이 참가하였고, 계속적으로 매스컴을 이용해 모금 운동을 한 결과, 1969년 3월 말이 되기 전에 목표로 했던 천만 엔까지 모았고, 1969년 4월 15일 제암교회 기공식을 하게 되었다. 그 뒤 유족회와 협의하여, 전체 모금액 가운데 5백만 엔으로 교회를 짓고 나머지 오백만 엔으로는 유족회관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새로 건립된 교회 건물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三’과 ‘一’이라는 숫자로 보여서, ‘三․一만세 운동’ 기념관임을 상징했다. 주춧돌에는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나이다.”(누가복음 23장 24절)라는 말을 조각했다. 공사가 완공되어 봉공예배를 마친 다음에는 일본인들도 자주 방문하여 사죄 기도를 올리게 되었다.

  나는 그 뒤에 한국교회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주로 감리교 신학대학 신학과 학생들과 한국기독교 역사연구소가 개최하는 역사 기행에 참가하여 만주 지역에도 여러 번 갔다. 그 여행에서 1920년 10월 30일 북간도 용정 교외(간도성 명동촌)에서 일어난 샛노루바위間獐岩교회 방화사건 [스즈키鈴木 대위가 이끄는 일본군 토벌대 72명이 40대 이상의 장년 남성 33명을 교회당에 모아서 묶어놓고 아직 탈곡이 끝나지 않은 좁쌀 다발과 함께 태우고, 회당에서 뛰쳐나오는 남자들을 일본 병사가 총검으로 학살한 사건. 이 사건에 대해서는, 朴殷植, 《韓國獨立運動之血史》 제30장 〈일본이 우리 양민을 학살한 대참화〉(서울신문사, 1946), 蔡根植, 《武裝獨立運動秘史》(公報處, 1949), 朴孝生, 〈間獐岩洞の虐殺事件〉(《福音と世界》, 1993.11), 김정배, 《日帝의 間島地域韓人敎會彈壓에 관한 硏究―간장암교회 사건을 중심으로》(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1994), 박효생, 〈샛노루 바위촌에 흐르는 눈물〉(《교회와 세계》, 통권 119호, 1994년 3월호) 등 참조. 이 사건에 대해 옮긴이가 2004년 9월 2일 심한보(한국교회사 연구원)와 함께 현지를 답사한 보고서인 심한보, 〈동북삼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다니면서〉(《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식》, 68호, 2004.12)를 참조]을 알게 된 것이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다. 이 사건은 제암리 사건[제암리 사건에 대해서는 小笠原亮一 외, 《三․一獨立運動と堤岩里事件》(日本基督敎團出版局, 1989), 韓國基督敎歷史硏究所編著, 《三․一獨立運動と堤岩里事件》(神戶學生靑年センタ―出版部, 1998) 등 참조]과 비슷하면서도 그것을 능가하는 대참극이었다.

  이런 경험들로 내가 3․1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한국문학을 전공하는 문학도로서 자연히 한국문학은 물론 일본문학에서 3․1운동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알고 싶어졌다.

  일본 작가들이 조선을 그린 작품들은 재일 한국인들의 작품 활동과 함께 지금까지 많은 연구 대상이 되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일본에서 발행된 것으로 朴春日, 《近代日本文學における朝鮮像》(未來社, 1985), 이소가이 지로磯貝治良, 《戰後日本文學のなかの朝鮮韓國》(大和書房, 1992)이 있고 또, 다카사키 류지高崎隆治, 〈日本文學者の見た朝鮮──作品年表〉(《季刊三千里》 28號, 三千里社, 1981.11)에는 일본인이 조선 및 조선인을 어떻게 표현했는가를 주로 문학 작품에 초점을 맞추어 많은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그 밖에 《季刊三千里》 全 50호(1975년 봄―1987년 여름), 《季刊靑丘》 全 25호(1989년 8월―1996년 2월, 靑丘文化社)에도 많은 연구가 소개되어 있다. 한국에서 출판된 것으로 《일본 작가들이 본 근대조선》(소명출판사, 2009)은 일본 메이지 시대 이후에 발표된 소설, 일기, 기행문 등이 소개되어 있고, 그 속에는 《불령선인不逞鮮人》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국제언어문학회 편, 《신라의 재발견》(국학자료원, 2013) 가운데 옮긴이의 〈식민지시대의 일본 작가는 경주를 어떻게 보았나〉라는 논문에서, 일본 작가들이 쓴 기행문과 수필을 소개했다.

  이들을 읽어보면 일본 작가들도 나름대로 이웃나라인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번역 소개한 작품들을 읽고, 지난날 일본 작가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표현하려 했는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이 책은 석오石梧문화재단 한국역사연구원의 후원으로 나오게 되었음을 밝힌다. 이태진 원장님과 오정섭 사무국장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출판을 맡아 주시고 문장을 다듬어 주신 지식산업사 김경희 사장님과 편집을 해 주신 김연주 님께도 고마움에 머리를 숙인다.

 

 

 

                                                                 2020년 삼일절 101주년을 앞두고 

                                                                            옮긴이 세리카와 데쓰요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10인의 일본 작가들, 조선의 고통과 한을 절절하게 형상화하다

100여 년 전 조선인들의 찌들린 삶 속 피어난 사랑과 생명력의 노래

31운동의 아픔과 좌절에도 이어지는 숨결과 대자연의 풍광

 

  3.1운동 전후 조선인의 삶을 그려 낸 일본 작가들의 작품집이 최초로 출간된다.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세리카와 데쓰요 교수는 전작(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 이태진사사가와 노리가쓰 공편)에서 만세운동 당시 일 지식인들의 대응과 작가들의 작품을 개괄했다면, 이번에는 꼼꼼하고도 사려 깊은 번역으로 관련 시와 소설 일체를 해방 전후로 나누어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붉은 함박꽃 가득한 조선의 서정적인 풍경 속 정감情感과 처절한 몸부림이 책을 덮어도 아른거린다.

 

식민지 조선의 모순적 이미지

 

  일본 작가들 눈에 비친 조선의 이미지는 양가적이었다. 연날리기를 하는 설날의 풍경이나 북적이는 오일장의 정경은 정겹지만, 한편으로는 지독한 가난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장마 후 떠내려가는 참외를 건져 먹으려다가 어린아이가 강물에 빠져 죽거나, 만주의 좁쌀이나 피조차도 배불리 먹지 못한다(간난이). 피죽이라도 끓일 땔나무나 요기하러 드나들었던 마을 뒷산이 총독부림이 되어 버린 현실(조선의 여인), 제국주의가 표방한 근대 문명화가 얼마나 인간적인 삶과 괴리되어 있는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선의 내지화內地化는 근대 소유관념의 도입만이 아니라 전통 풍속의 말살도 아울러 의미했다. 일본 헌병 중위가 조선의 궁중무희를 그린 작품의 제목을 강압적으로 바꾸라는 장면은(이조잔영) 전통의 압살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여러 주체들의 시각 다각도로 조명하다

 

  이러한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는 일본 작가들의 시선은 그들 개성만큼이나 다양하다. 불령선인의 경우 주인공 에사쿠의 심리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고, 고바야시 마사루는 조선메이지 52에서 재조在朝 일본인들의 식민지 근대화론적인 인식을 보여 주는 한편, 오무라大村라는 소외된 식민자라는 제3의 인물 유형을 그리고 있다. 특히 일본이 들어와 조선 시골 읍이 달라졌다는 기시모토의 말은 미개한 조선의 문명화라는 식민지배 논리의 전파자인 도한渡韓 일본인(근대 일본문단과 식민지 조선) 의식, 또는 식민지정책을 합리화해 온 식민주의자(식민지 조선의 풍경)의 전형을 보여 준다. 그런가 하면 프롤레타리아 시인인 모리야마 게이는 노동자인 이진유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여러 빛깔의 시점 속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조선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작가들이 자신을 대변하는 일본인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불령선인의 에사쿠, 간난이의 류지, 이조잔영의 노구치가 그러하며, 수양버들처럼 흔들린 손에서 단발머리의 작중 화자가 곧 작가 자신이다. 다만 스미 게이코는 조선에서 거주한 적이 없으면서도, 어린 소녀 영희의 눈으로 남아선호, 영호남 지역갈등 등 조선사람들의 속내와 풍속을 들여다보듯 묘사하고 있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조선의 여인). 젊은 시절부터 한국에서 공부하고 연구해 온 세리카와 교수는 10편의 다채로운 작품들을 감칠맛 나는 우리말로 생생하게 구현해 내고 있다.

 

맨몸으로 맞선 만세의 외침과 그 기억

 

  조선인의 시점이든, 일본인의 관점이든 31운동의 참상은 말 그대로 비극그 자체였다. 희열 할머니는 장날에 만세 행렬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해 죽음을 맞이했고, 순사의 아들과 친하게 지낸 간난이는 만세를 부른 뒤 눈 내리는 밤 끝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낙과 소녀의 죽음31운동의 좌절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 준다(작품해설). 마을사람들을 불러 모은 교회와 마을 전체를 불지른 제암리 사건은 무력을 앞세운 문명의 실체가 야만과 독수毒手로 드러났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제암리 사건 속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세리카와 교수는 그 사건을 능가하는 대참극인 샛노루바위교회 방화사건의 역사 발굴을 촉구한다(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 그의 양심과 노력으로 일본 제국의 신민으로서 검열을 무릅쓰고 조선의 아픔을 그린 일본 작가들의 이야기가 뒤늦게 오늘 우리들에게 오롯이 전해질 수 있었다. 고통받는 약자에 대한 연민과 포옹은 정치, 경제적 입장 차이로 멀어져만 가는 한일 사이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 될 것이다. 다시 3월을 맞아 그날 영혼의 행진이 아지랑이 속 싹눈처럼 피어오른다. 

 목    차

                                       서문 5

작가 및 표지 사진 출처 10

 

1. 불령선인 13

2. 79

3. 간난이 101

4. 어떤 살육사건 173

5. 살육의 흔적 179

6. 간도 빨치산의 노래 183

7. 이조잔영 195

8. 조선메이지 52265

9. 조선의 여인 315

10. 수양버들처럼 흔들린 손 443

 

작품해설 447

  

 저  (역)   자   약   력

세리카와 데쓰요芹川哲世

 

 

 

1945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났다. 니쇼가쿠샤二松學舍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대학원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했다(문학박사). 세종대학교와 인하대학교 일본어문학과 교수를 거쳐 니쇼가쿠샤대학 문학부 교수가 되어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가르쳤다. 지금은 명예교수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일 개화기 정치소설의 비교 연구, 1920-30년대 한일 농민문학의 비교문학적 연구,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과거의 청산(공저),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공저) 등이 있다.

한국과 일본의 기독교문학에도 관심을 기울여, 늘봄 전영택의 문학 세계, 해방 전 박계주 문학 연구등의 논문도 발표했다.

번역서로는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 다케모리 마사이치竹森滿佐一만주기독교사 이야기(한국어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