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에 담긴 철학적 세계관
 
 도서분류 철학.종교
지은이 : 윤병렬
옮긴이
면 수 : 524
:  \23,000
출간일 : 2020/03/17
판 형 : 신국판
ISBN : 978-89-423-9078-6(93150)
검색수 63 번째 검색
  도서주문권수 입력: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폭풍우의

가장 성스러운 회오리 속에서

나의 무덤 벽은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선

지극히 자유롭고 영광스럽게

나의 영Geist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나라로

나아가리라.

F. 횔더린의 묘비에 쓰여진 시

 

 

  이 책은 2008년에 출간된 필자의 졸작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한국의 고대철학을 전면 개정하고 확대, 보완한 것이다. 당시에 필자는 이 책의 여러 곳에, 특히 고분벽화에 표현된 철학적 세계관과 인식론을 보완해야 할 것을 감지했지만, 생각만 하다가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그러나 이 오랜 기간 동안 그 문제점과 보완점들은 머릿속에서 맴돌며 하나씩 하나씩 성숙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고유의 한국고대철학을 재발견해야 한다는 강한 소명감이 이정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보고서 ! 고구려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뭔가 규명하긴 어려워도 우리를 경탄케 하고 압도하며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우리는 주로 고분벽화의 역사()적 의미와 회화적 의미를 규명하는 데 집중해 왔다. 그러나 여기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단순한 역사적 전승의 산물로만 규명하는 데 그쳐서는 큰 잘못이다. 또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결코 단순한 회화의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도 않다.

  만약 누군가 고분벽화가 있는 것만으로 만족한다거나 역사적으로 전승되어 온 유물 정도로 규명하는 차원에만 머물러 있다면, 이는 어처구니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그러기에 현명한 자는 벽화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절실한 질문을 던진다. 바로 이런 노력에서 고분벽화의 혼, 즉 그 존재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이제 고구려의 고분벽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이 고분벽화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보고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이 고분벽화의 혼, 즉 그 정신적 의미를 드러내어야 한다.

  왜 고구려인들은 깜깜한 고분에 벽화를 그렸고, 더욱이 수많은 별들과 별자리들을 그려 놓았을까. 그들은 그러나 세상에 살아남은 자를 위해 전시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분에 그려진 이들 별들과 별자리들은 분명 망자亡者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이들 별들과 별자리들의 상징언어를 통해 그들의 천문사상과 사유세계를 읽어 내어야 한다(이를테면 불멸사상과 천향사상 및 온 누리를 수호하고 보살피는 보살핌의 철학).

  선사시대부터 고분벽화가 그려진 시대까지는 하늘에 흩어져 있는 별들과 별자리들이 사람들에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중요한 존재의미를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흩어져 있는 별들이 하나의 별자리로 굳어진 데에는 이미 오랜 시간의 전통과 문화가 개입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전통과 문화란 단시일에 정립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집단 속에서 오랜 발전과정을 겪으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당대의 사람들은 석기石器나 목기며 토기 같은 것만 갖고 문명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별들과 함께 고매한 정신문화도 일구었던 것이다.

  선사시대에서부터 사람들은 흩어져 있는 별들을 별자리로 묶어 각별한 정신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별들과 별자리들로부터 사람들은 농경생활에 필요한 역법을 읽어 내었고, 캄캄한 밤중의 여행이나 바다의 항해에서 방향의 지표를 찾았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별들의 질서정연한 움직임에서 하늘의 질서를 인식하였고, 이런 인식은 하늘세계에 대한 관측과 동시에 천문사상에 대한 발전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보통 선사시대의 사람들이 미개했던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 러나 롬바흐의 규명대로 우리는 누차에 걸쳐 그의 명제를 강조할 것이다사람들은 결코 미개했던 적이 없었다.”(Heinrich Rombach)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고대 한국인의 정신적 원형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거기엔 고대 한민족의 예술혼과 정신문화며 한국 고대철학의 의미가 농축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고분벽화의 역사()적이고 회화적인 의미의 차원을 넘어 그 정신문화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읽어 내어야 한다. 이 책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드러난 철학적 의미를 추적하고 이를 세계정신사적 지평 위로 올리는 작은 시도이다. 고분벽화의 역사적 회화적 차원을 넘어 그 표현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정립하는 일은 이중 삼중으로 긴급한 문제로 여겨진다.

  또 이중 삼중으로 긴요하게 여겨지는 과제와 목적은 고구려의 고분벽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됨에 따라 인류에게 공감이 되는 정신문화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다. 물론 세계문화유산 등록과 상관없이 고분벽화가 함축하고 있는 그 정신적 지평을 펼쳐 보여야 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이다. 오늘날 세계화의 시대에 이러한 과제는 극히 중요한 것으로 사료되며, 단순한 회화적 차원을 넘는 정신문화의 깊이를 알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약 어떤 역사적 전승이 그것이 엄청난 역사적인 사실과 내역을 갖고 있을지라도역사 서술이나 자료 설명 및 유물 제시의 차원에만 머물고 있다면, 저 위대한 역사적 전승을 철학의 대열에 올릴 수 없다. 그 의미와 내용, 그 생명력과 불멸의 혼 그리고 그 가치와 비밀 이 모든 것을 철학이라고 하자을 펼쳐 놓아야만이 생명이 깃든 정신문화의 지평을 열 수 있는 것이다.

  실로 우리의 역사가 고대 중국이나 인도 및 그리스와 같은 나라들에 견주어 뒤떨어지지 않지만, 우리 고유의 고대철학은 인도와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불교나 도교 및 유교와 같은 종교철학적인 사상들을 제외하면 문헌상으로는 빈약한 편이다. 더구나 B.C. 6세기부터의 고대 중국이나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철학자들의 반열에 세울 만한 우리의 고대철학자를 언급하기는 퍽 어려운 편이다. 그러나 결코 실망만 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철학자 중심의 고대철학이 아닌, 고분벽화나 전승된 이야기며 역사적 유물과 유적을 바탕으로 하는 내용 중심의 철학은 얼마든지 재발견하고 재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과제에 대해 고민해 왔으며, 우선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한국의 고대철학을 읽어 내는 것을 하나의 시급한 과제로 생각했다.

  물론 고분벽화를 철학의 지평에서 읽고 해명하는 작업인 만큼 지나친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한다거나 건강한 지성을 희생시키는 주장과 진술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철학은 무엇보다도 철학적 확실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허위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한다고 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진리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천명한다. 물론 이때 이 명제를 참이게 하는 것은 말(진술)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존재하는 사실 그 자체이다.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진리와 허위에 대한 규명은 고분벽화를 철학으로 읽고 해명하는 작업에도 바람직한 이정표가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다고 그의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의 마지막 종결문장에서 피력했는데, 이러한 규명은 그러나 오늘날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독하기 어려운 문화유적, 황당한 사견이나 터무니없는 주장, 신화적이고 문학적인 상상력을 액면 그대로 철학이라고 우길 수는 없다. 그러기에 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하더라도 침묵하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철학의 카테고리에 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그림은 그림이고, 벽화는 벽화이며, 신화는 신화이고 천문사상은 천문사상일 따름이며 민담이나 전설도 그렇다. 더욱이 (해석이 불가능한) 고분벽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정신적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고인돌과 청동거울과 같은 유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철학이라고 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철학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의 은폐된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하면서, 그 제작 의도와 정신적인 배경을 읽어 내는 곳에서, 또한 그 해석의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에(!) 철학은 둥지를 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테면 플라톤은 그의 대화록 곳곳에서 수많은 신화와 비유며 종말신화를 등장시키는데, 그 신화를 해석하면서 로고스의 장을 여는 곳에 철학의 지평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화를 단순한 비과학이라거나 미신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지극히 경솔한 태도이다. 철학이 포장되어 있는 신화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신화에는 지혜를 추구하는 고도의 정신적인 것과 은폐된 로고스가 포장되어 있다. 더욱이 인류의 역사에서 언어가 발명되기 전에는 대체로 신화의 형식으로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내용들이 전승된 경우가 많다. 또한 로고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신비한 영역에 대해선 신화나 비유를 통하여 그 해결책을 추론케 한다. 그러기에 철학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신화의 힘이 퇴색하기 시작한 시대에 신화가 알고 있던 바로 그것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범상치 않은 철학적 테마가 그려져 있다. 생활세계의 철학, 고향과 귀향의 철학, 축제문화, 삶과 죽음의 철학,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 신선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초월자에 관한 철학, 원시도교의 철학, 유토피아 사상, 문명창조론, 우주론(‘사방으로서의 코스모스), 천상천하를 보살피는 보살핌의 철학과 보살핌의 세계관, 내세론, 불멸론 등등 철학사에서 굵직하고 심오하게 다뤄지는 테마들인 것이다.

  고분벽화에 그려진, 철학과 종교의󰡒피할 수 없는󰡓과제인 인간의 불멸성과 자유며 초월자의 존재에 관한 성찰은 한국 고대철학의 깊이를 재조명하게 한다. ‘불멸성은 플라톤과 칸트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에게서 철학의 근본과제로 받아들여진다. 플라톤은 대화록 파이돈파이드로스, 국가등에서 그 논의를 전개하고 칸트는 단도직입적으로 신, 자유, 불멸성을 형이상학의 피할 수 없는 3대 과제라고 피력했다. 고분벽화에서 인간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절대적인 종말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신선이 되어 선향仙鄕 또는 본향으로 돌아가 다른 코스모스의 가족들과 만나고 교류하는 것으로 그 불멸성을 드러내어 보인다. 고분벽화에 드러난 인간의 위상은 영원한 종말이나 무화無化 및 저주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는 삶과 죽음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고 원죄최후의 심판과 같은 무거운 짐도 지고 있지 않다. 그는 마치 지극히 자유롭고 영광스럽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나라로 나아가는 자처럼 천상으로 비상하고 코스모스의 가족들과 교류한다. 또 이와 같이 불멸하는 신들의 세계도 고분벽화에 드러나는데, 면류관을 쓴 천제天帝를 비롯하여 문명을 창조한 신들, 신적인 형상을 취한 별들, 신비스런 신수神獸들은 초월자(초자연적 존재자들)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우리는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형이상학의 3대 과제를 읽을 수 있다. 존재론, 우주론, 인간론, 내세론, 불멸론 등 고분벽화에 드러난 심오한 철학적 사유는 고대 한국이 외국으로부터 받은 학문적종교적 영향 외에도 독자적인 문화와 철학을 갖추고 있었음을 확신케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사상적 의미는 대단히 크다.

  고분벽화는 고구려인들이 남긴 생생한 흔적이고 그들 세계관의 표현인 것이다. 이 벽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구려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한 여러 정보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세계, 의식주, 놀이 및 축제문화, 중국과의 관계, 동서문명 교류, 세계관, 내세관, 우주론, 종교관, 천문사상, 죽음에 대한 철학, 음악과 다양한 악기들, 미술과 미술의 여러 양식들, 건축술 등등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정보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고분벽화에 그려진 표현인문학과 철학적 의미를 관념론의 틀에 넣거나 그 틀에서 분석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고분벽화에 드러난 테마들은 우리의 생활세계나 거주함, 축제, 사방으로서의 코스모스, 고향과 귀향의 철학 등등 우리의 삶과 친숙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분벽화가 함축하고 있는 심오한 철학적 의미들이 쉽게 우리의 시선 안으로 다 들어오지는 않는다. 특별한 그림이나 고분벽화는 감추어진 의미를 갖고 있고, 그런 감추어진 의미는 그림과 벽화에서 상징언어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암호와도 같은 상징언어를 해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이다.

  상징을 자명하게 해명해 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상징은 모호하고, 알려지지 않고, 우리에게 감추어진 어떤 것을 내포한다. 예를 들면, 크레타의 많은 기념물들에는 쌍도끼 표시가 되어 있다. 쌍도끼는 우리가 아는 대상이지만, 우리는 그 상징적인 함축은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그 감춰진 의미를 함축하는 상징은 이미 분명하고 직접적인 의미 이상의 것을 내포하고 드러낼 때 사용된다. 그러기에 상징은 대체로 이성이 파악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선 곳에 위치한다: “사람의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 수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정의할 수 없거나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개념들을 나타내기 위해서 늘 상징적인 용어들을 사용한다. 이것이 모든 종교가 상징적 언어나 이미지를 사용하는 한 가지 이유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동굴벽화 무덤벽화는 동물의 그림이거나 해독이 불가능한 문자와 기호가 대부분이며, 대체로 알 수 없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그림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프랑스 베제르 계곡의 동굴벽화(라스코의 석기시대)는 생동감은 있지만, 단순한 동물들에 대한 그림이며, 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노르웨이 알타의 바위그림도 사냥꾼과 어부 무리들을 묘사한 그림이 대부분이고 색채도 단순한 주황색이 주종을 이룬다. 또 유럽의 구석기 문화의 말기인 마들렌magdalenian 시기에 스페인과 남프랑스의 수많은 동굴에 그려진 암벽화들도 대부분 동물그림이다. 이러한 그림들에서 비록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큰 가치는 발견할 수 있지만, 어떤 분명하고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주워 담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분명한 문화적사상적 메시지를 갖고 있으며, 그 예술적이고 종교적이며 철학적인 의미를 심오하고 신비롭게 그려 내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지금으로부터 1500년 내지 1600전에 마치 동영상으로 펼쳐 보이듯이 총천연색의 색채로 그 신비성을 드러내었다는 것은 경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벽화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궁무진한 고대철학의 보고寶庫

표현인문학의 지평으로 고구려인의 정신세계가 때로는 익살맞게, 때로는 장엄하게 드러난다

인간과 초월자, 존재와 우주, 삶과 죽음 등 거대한 스케일로 펼쳐지는 동서철학의 메타포

 

  고구려 고분벽화와 고대천문학에 대한 학계의 성과가 축적되는 가운데 비로소 고구려벽화의 고대철학적 의미를 탐구한 성과물이 출간된다. 하이데거 철학을 전공, 동서 철학을 종횡무진 넘나들어 온 윤병렬 교수는 고인돌 연구에 이어 한국고대철학의 재발견이라는 거대 프로젝트를 진수시킨다. 표현인문학적 방법론으로 벽화 속 심오한 상징들이 입체적으로 비-은폐, 재창조되어 나간다. 베일에 싸여 있던 고구려인들의 사유는 하이데거와 엘리아데, 플라톤 등의 개념을 입고 한 단계 명징하게, 그러나 특별하게 드러난다.

 

고구려인의 거주함

 

  저자의 필치는 사물(예컨대, 항아리)의 쓰임과 상징적 의미를 아울러 살펴보는 하이데거의 사유(건축가를 위한 하이데거)만큼이나 풍부하고 화려하다. 비문자를 포함한 문화활동을 인문학적 메시지로 읽어 내는 표현인문학적 방법론에 따라 독자들은 시와 그림, 예술작품들을 오가며 총천연색 벽화의 세계를 황홀하게 여행한다. 저자는 우선 고구려 벽화분의 다수를 점하는 생활풍속도 벽화분(강현숙, 고구려와 비교해본 중국 한, 진의 벽화분)을 소개하며, 고구려인들의 삶과 여가를 생동하듯 보여 준다. 안악 3호분의 부엌과 푸줏간, 수산리 고분의 교예놀이, 무용총의 손님 접대 등은 하이데거가 말한 거주함의 본질 평화로움, 보살핌을 떠올리게 한다. “탈신성화”(엘리아데)된 곳에서 거주하는 현대인들에게 안온한 힐링으로 다가온다.

 

고구려인들의 우주관, 벽화에 새겨지다

 

  풍속벽화에서 눈을 들어 천장까지 둘러보면,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우주가 펼쳐진다. 이곳은 언뜻 하이데거가 땅, 하늘, 신성과 필멸자 실존의 주요 환경이자 존재의 존재 조건으로 명명한 사방’(das Geviert)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 존재의 위상 면에서 사방과 고구려 코스모스의 차이를 지적한다. 고구려인들의 세계관에서 인간은 단순한 죽을 자가 아니라 천상(초월자)과 직접 교류하는 능동적 주체인 것이다. 인간의 있음은 다양한 사이들을 잇는’ ‘잇음(이음)’이라고 보는 것(우리말 철학사전1), 천지인 합일의 세계관(우리말 철학사전5) 같은 맥락이다. 고구려의 사방은 서로 비추는 거울-놀이”, “반영놀이만이 아니라 수직, 수평의 전방위적 소통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저자는 이 장소를 여러 가지 상징으로 변주한다. 오회분 4호묘에서 비천하는 신선들의 환희의 송가연주로 향연과 축제의 장을 표현한다면, 진파리 1호 고분에서는 고향 같은 동화의 마을을 보여 주며, 강서대묘에서는 신선의 마을을 제시한다. 예부터 하늘을 우러러 제사를 드려 온 고구려인들의 경천敬天 사상은 유기적이고 조화로운 우주관을 낳았던 것이다.

 

선사인의 하늘관념과 불멸관

 

  동서양을 오가는 색다른 벽화 공간의 탐구는 곧 통시적 탐색으로까지 나아간다. 저자는 벽화에 그려진 천인天人들에서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지는 자생적인 원시도교의 원형을 읽거나, 천문도와 별그림으로부터 선사문화의 연속적 흐름을 파악한다. 25기의 고구려 고분에는 고인돌 덮개돌 위의 사수도(일월남북두日月南北斗)와 별자리가 발견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 북두칠성(죽음의 주관자)과 남두육성(생명의 수호자)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모습(오회분 5호묘)이나 사신도-사수도 체계가 불멸, 생사일여生死一如 사상과 함께 사방을 수호하고 보살피는 세계관을 담지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이에 저자는 인식론의 한계를 지적함과 동시에 존재론적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이 보살핌의 세계관의 의의를 천명한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가 전자라면, 고대 그리스의 피지스(자연)와 칸트의 공통감”, 하이데거의 비은폐성으로서의 진리(존재론적 현상학) 개념은 후자에 속한다. 이로써 근대 인식론에서 배제시켜 왔으나 더 근원적인 방식인 존재론의 가치를 복권시킨다.

  벽화 속 고구려인들은 죽음이 끝, 소멸이 아니었기에 그만큼 생을 충만하게 누리고 내세까지도 충일감으로 물들였다. 선인들(인간)이 환희의 심포니를 연주하는 가운데 신들, 자연과 어우러지며, 천공天空의 세계수에 달린 과일이 주르륵 떨어지며 봉황과 사람들이 기쁘게 모여드는 모습들이 그것이다. 동서고금의 철학을 가로지르는 저자의 이번 시도는 한국고대철학 광맥의 발견이면서, 시원적 사유, 의미의 존재론으로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존재망각과 고향 상실의 늪에서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고분벽화에서부터 흘러넘치는 생명수生命水 한 잔을 건넨다. 

 목    차

들어가는 말 _ 4

1장 문화망각과 고분벽화학 _ 17

2장 고분벽화의 표현인문학과 예술철학 _ 45

3장 생활세계의 철학 거주함의 철학적 지평 _ 63

1. 하이데거의 거주함의 철학 _ 65

2. 엘리아데의 성화聖化된 거주 _ 74

3. 고분과 고분벽화 및 거주함 _ 78

4. 고구려인들의 거주함에 관한 성찰 _ 83

4장 고향과 귀향의 철학 _ 93

1. 고향을 찾아가는 인간의 본래성 _ 94

2. 플라톤의 귀향의 철학 _ 99

3. 횔더린의 고향과 미지의 나라 _ 106

4. 하이데거의 귀향의 철학 _ 109

5. 성서의 귀향과 영원한 고향 _ 135

6. 혜초의 망향가 _ 141

7. 고구려인들의 고향 _ 146

8. 고구려인들의 경천사상 _ 154

5장 잃어버린 축제 _ 173

1. 귀향으로부터의 축제 _ 174

2. 고대 한국인들의 축제인간과 초월자의 한마당 _ 174

6장 불멸하는 하늘나라의 세계수와 신선들 _ 191

1. 세계수가 있는 낙원 _ 192

2. 원시도교原始道敎의 향연 _ 196

3. 불멸을 밝히는 별무리들 _ 214

4. 하늘나라에 건립된 유토피아 _ 233

7장 문명의 창조 _ 247

8장 땅에서와 같이 하늘에서도 이원론의 극복 _ 259

9사방으로서의 코스모스

플라톤과 하이데거 및 고구려의 고분벽화의 사방세계 - 265

10장 사방세계로 파악된 고구려인들의 코스모스

불멸의 사방-놀이 _ 281

11 사신도四神圖와 사수도四宿圖의 철학적 세계관 _ 295

1. 사신도와 사수도의 세계관에 대한 개요 _ 296

2. 고구려 고분벽화와 백제 및 신라의 사신도와 사수도_ 305

3. 동양의 천문도에서 적도 28수의 사신도와 사수도 _ 318

4. 해와 달 _ 329

5. 북두칠성과 남두육성(남두칠성) _ 340

6. 사수도(해와 달, 북두와 남두) _ 357

12장 보살핌의 철학에 대한 인식론적 정당성 물음 _ 361

1. 근대적 인식론과 자연관 극복 _ 362

2. 하이데거의 비은폐성으로서의 진리Aletheia와 피지스 개념의 복권_368

3. 칸트의 반성적 판단력공통감에 의한 자연에의 새로운 접근_381

4. 사신도와 사수도 사상에 대한 인식론적존재론적 접근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를 중심으로 _ 398

5. 사신도-사수도의 세계관 이해 -인식론에서 의미의 존재론으로_405

 

13장 철학과 종교의 과제로서 불멸성 _ 425

1. 인간의 궁극적 과제로서 불멸성 _ 426

2. 선사시대의 성혈고인돌에 새겨진 불멸사상 _ 432

3. 수메르의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불멸에 대한 물음 _ 451

4.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하데스와 인간의 불멸성 _ 458

5. 오르페우스의 신화에서 영혼의 불멸 _ 463

6. 플라톤의 영혼불멸론 _ 466

14장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드러난 불멸사상 _ 471

나오는 말 _ 489

참고문헌 _ 492

찾아보기 _ 503 

 저  (역)   자   약   력

윤 병 렬尹秉烈

 

  독일 본Bonn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하이데거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홍익대학교 교양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철학의 센세이션》(2002년 문광부 추천도서), 《정보해석학의 전망》, 《노자에서 데리다까지》(공저), 《감동 철학 우리이야기 속에 숨다》, 《산책로에서 만난 철학》, 《한국 해학의 예술과 철학》(2014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철학적 인문학의 길》, 《배낭 속에 담아온 철학자의 사유 여행》, 《선사시대 고인돌의 성좌에 새겨진 한국의 고대철학 ―한국고대철학의 재발견》(2019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플라톤 철학과 형이상학 논쟁〉, 〈존재에서 존재자로?: E. 레비나스의 존재이해와 존재오해〉, 〈하이데거의 존재사유에서 고향상실과 귀향의 의미〉, 〈하이데거와 도가철학의 근친적 사유세계〉, 〈‘말하는 돌’과 ‘돌의 세계’ 및 고인돌에 새겨진 성좌〉, 〈장자와 플라톤의 위상학적 인식론을 통한 근대 인식론의 딜레마 극복〉,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