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발해사 연구
 
 도서분류 한국사
지은이 : 노태돈
옮긴이
면 수 : 348
:  \23,000
출간일 : 2020/07/03
판 형 : 신국판
ISBN : 978-89-423-9080-9(9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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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이 책은 고구려사와 발해사에 관한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고구려편에서는 첫 번째 논고가 고구려 초기의 천도에 대하여이다. 고구려가 처음 수도를 정한 곳이 어디이며, 그곳에서 언제 어디로 천도하였느냐를 살핀 글이다. 수도는 한 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군사의 중심지이다. 그 구체적인 수도로의 집중도는 각 시기마다 다르고, 고대 국가의 성숙도에 따라 뚜렷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국가가 성립한 이후, 수도가 국가의 중심지인 것은 다름이 없다. 자연 한 나라의 천도에 대해 그 과정이나 배경을 파악하는 것은 그 시기 역사상을 이해하는 데 긴요한 요소이다. 고구려 초기에 있었던 천도에 대한 기록이 워낙에 적고 모호한 면이 있어, 조선 후기 이래로 논란이 거듭되어 왔다. 고고학적인 발굴 성과가 늘어나면서 부족한 문헌 기록을 보완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나, 이 역시 발굴의 증가에 따라 상이한 결과를 전하는 것이 적지 않아 논의가 쉽게 진전되지 않는 면을 보이기도 한다. 다시 한 번 그간의 논의를 살펴 고구려 초기의 전도奠都와 천도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압록강 중류지역에 사백여 년 동안 수도를 두었던 고구려는 427년 평양으로 천도하였다. 평양 천도는 고구려사의 전개에서 획기적인 조처였다. 이 평양 천도가 결정된 과정에 대한 문헌 기록은 매우 소략한데, 이를 당대의 기록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 것이 광개토왕릉비의 정복전쟁 기사와 평양 천도논고이다. 흔히들 금석문의 사료적 가치를 역사서 등 문헌 기록의 그것보다 높게 평가한다. 문헌 기록은 그 전승과정에서 몇 차례 변개하여 기술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달리, 금석문은 한번 기술된 이후 후대에까지 원래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동시에 금석문도 처음 쓰여질 때 그 내용에 작성자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다는 점에서는 문헌 기록과 동일하다. 어느 면에서는 기술할 공간인 비면碑面이 한정되어 있고, 작성 시간이 특정하다는 점에서는 문헌 기록보다 더 작성자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414년에 세워진 광개토왕릉비의 비문은 평양 천도를 추구한 장수왕대 고구려 조정의 의지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사료가 될 수 있다. 그 면을 검토한 것이 두 번째 글이다. 427년 평양 천도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때 구체적으로 동평양 일대의 어느 지점으로 천도가 행해졌는지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고구려편의 세 번째 논고는 중국 남·북조와의 조공책봉관계를 통해서 본 고구려국의 성격이다. 이는 한국과 중국의 왕조 사이에 행해진 조공책봉관계의 성격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중국 학계에서 조공책봉관계에 따라 고구려를 중국왕조의 지방정권이나 속국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이를 논박하는 주장을 담았다. 비단 고구려뿐 아니라 조선과 청의 조공책봉관계의 경우도 포괄적으로 검토하였다.

  고구려편의 마지막 논문은 고구려 유민에 대한 고찰이다. 668년 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들의 향방을 추적하여 살펴본 글이다. 망국 유민들의 자취를 찾는 작업은 씁쓸한 여운을 동반하는 힘든 작업이지만, 유민을 매개로 거슬러 고구려의 위상을 되씹어 보는 계기이기도 하다. 2부 발해편은 네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첫째 논문은 발해국의 주민 구성과 발해인의 족원이다. 이 글은 발해사를 한국사로 보는 논거를 확인하고자 한 글이다. 먼저 발해국의 멸망 후 그 주민에 대해 요나라가 어떻게 조처하였는가를 검토하였다. 요나라는 발해국의 주민을 발해인과 여진인으로 구분하고, 그들에 대한 지배 방식 면에서 상이한 형태를 취하였다. 양자에 대한 구분과 차별은 금나라에서도 되풀이되었다. 발해국의 주민구성에서 보이는 이중성은 발해국 존립 당시부터 확인된다. ‘토인과 말갈’ ‘발해인과 말갈이란 구분이 그것이다. 양자의 족원을 거슬러 파악해 보니 발해인은 고구려인아 중심이 되고 일부 고구려화된 말갈인이 융합되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주민 구성의 이중성은 발해국의 지배체제에도 반영되었다. 고구려의 계승국이라는 발해국의 성격은 발해국에 대한 그 주변국인들의 인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발해편의 두 번째 논문은 발해 일본국서에서 운위한 고려구기에 대하여이다. 이 논고는 일본에서 발해에 보낸 국서에서 고려구기高麗舊記의 선례에 따라 발해가 일본에 신하의 예를 취해야 하는 번국蕃國임을 강조하면서 그렇게 할 것을 요구한 것을 검토한 글이다. 과연 고구려가 그러하였는지, 아니었다면 고려구기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밝혀 보았다. 아울러 이를 통해 발해와 일본이 과거 양국 관계에 대해 상이한 인식을 하면서도 상호 긴밀함을 유지하였던 특이한 일면을 살펴보았다.

  세 번째 글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말갈의 실체이다. 말갈은 읍루-물길-말갈-여진으로 이어지는 만주족의 조상으로서 만주 지역에 토착하여 살았던 족속이다. 고구려의 주요 피복속 종족이었으며, 발해의 주민의 한 부분을 구성하였던 이들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에선 백제본기와 신라본기에 그 초기부터 말갈이 등장한다. 이 말갈의 실체는 강원도 북부와 함경도 남부지역에 거주하던 동예였음이 일찍이 밝혀진 바 있다. 그러면 언제 동예가 말갈로 개서되었으며, 그렇게 한 배경과 상황이 어떠하였는가를 파악해 보았다. 8세기 중반 발해가 동류 송화강유역의 철리말갈과 흑수말갈 및 실위족의 일부인 달고 부족을 복속시키고, 그들 가운데 일부를 함경도 남부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신라 말 고려 초에 이들 족속들과의 접촉 경험이 거슬러 동예와의 접촉 기사에 투영되어 동예를 말갈로 개서하는 데 작용하였음을 논하였다. 네 번째 논고는 고려로 넘어온 발해 박씨이다. 발해와 신라 사이에는 교섭이 매우 뜸하였다는 것이 양국 관계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양국 간에는 적지않은 상호 교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일각에서 견지되어 왔다. 문제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 면에선 발해 멸망기에 남으로 고려로 넘어온 발해인들 가운데 박모라고 일컬었던 이들이 보인다. 이들이 과연 박씨 성을 가진 이들인지 검토하고, 박씨라면 어떤 경로로 발해에 살게 되었는지 등을 밝혀, 신라와 발해 간 교류의 한 예로서 주목해 보았다.

  이상에서 말한 바처럼, 이 책은 고구려사와 발해사에 관해 그동안 고찰해온 논고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각 논고가 발표된 시기도 각각이고, 그 가운데 이른 시기에 집필된 것은 수십여 년 전의 논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에 담은 논고의 주제들은 여전히 학계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새로운 연구의 진전은 그간의 성과에 대한 이해와 비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앞으로의 연구 진작을 위한 디딤돌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책머리에 부쳐 띄워 본다.

  이 책의 원고를 정리하는 데 애를 쓴 서울대 대학원의 박유정 석사와 고태진 석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아울러 갑작스런 요청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책의 출판을 맡아 주신 지식산업사의 김경희 사장님과 김연주 님 등 편집실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2067

명일동 우거寓居에서

노태돈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고구려·발해 연구 심화를 선도하는 다각적 접근과 시도

흩어져 있는 발굴 자료와 비문, 사서 등을 꿰뚫어 고대의 역사상을 재구축해 내다

역추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고구려·발해의 이동과 구성원, 대외관계의 심층

 

  고구려사 연구의 대가 노태돈 교수가 최신 발굴 조사와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연구서를 펴낸다. 고구려사 연구에서 국가구조와 정치체계 등 고대사 이해 체계를 구성하는 골간을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고구려와 그 계승국 발해의 시공간의 접점을 이루는 세 요인-이동·족원·대외관계-을 다각도에서 집중 고찰한다. 특히 논점을 분명히 한 다음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서술 방식은 나무만이 아니라 숲을 조망하도록 돕는다.

 

이동: 천도로 보는 고구려의 발전과 지향

 

  천도는 고구려사 전개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만큼 고구려사 연구 대상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국내성과 오녀산성 등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 어원학적 가설 및 사료 비판을 총동원하여 집안(국내성)으로 천도한 시기에 대해서 통설인 유리왕 22년설을 비판하고, 산상왕대 천도설을 제시한다. 또한 광개토왕비문의 행간을 철저하게 분석함으로써 장수왕대 평양 천도의 배경과 의의를 밝힌다. 평양 천도는 고구려 세력권이 된 광활한 판도를 원활하게 운영하고 서진西進보다 남방에 주력하기 위해단행되었으므로, 광개토왕대 정복활동의 결과이자 성과라는 것이다. 광개토왕비문 분석에서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대후연전對後燕戰에 대한 기술이 없는 것의 함의를 포착한 부분이다. 곧 서부 방면의 대외적 안정을 도모하는 광개토왕 후반의 대외정책의 방향과 후연을 이은 북연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 장수왕대 고구려 조정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국제 정세 속 고구려 외교의 방향을 면밀히 추출해 내는 저자의 예리한 시각은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대외관계 및 외교사 연구의 심화를 보여 준다.

 

관계: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면면

 

  4세기 이래 전개된 다원적·중층적 국제질서를 활용하여 중국왕조와 조공책봉관계를 체결한(한국의 대외관계와 외교사) 고구려에 대해 일부 중국 학자들은 중국의 지방정권이자속국屬國이라고 본다. 저자는 피책봉국에 수여된 관직이 실제적 의미가 없었으므로 조공책봉관계의 명분(이상)과 실제 사이의 괴리를 보아야 하며, 근대 국제공법 아래 속국의 개념으로 전근대 조공국을 규정하는 것은 부적절함을 논파한다. 중국 중심의 질서와 다른 고구려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오래 연구한 저자이기에 더욱 설득력이 높다. 발해의 대외관계로서는 우선 발해와 일본 사이에 오간 국서를 분석, 교섭 사례를 살펴본다. 7세기 말 이후 동북아 방면에 대한 당의 세력 확대 추세에 발해 무왕은 대당 강경책을 취하면서 일본과 우호관계를 맺는다. 이때 표명한 고구려 계승 의식은 당시 발해 조정에 현실적인 기반을 지닌 것이며 발해의 지향을 담은 것이었다. 이 의식과 일본의 고구려 번국관蕃國觀이 서로 충돌하면서도 양국의 교섭이 지속된 점은 저자의 언급처럼 흥미로운 예라고 할 것이다. 고려로 넘어온 신라계 발해 박씨 사례 고찰은 발해와 신라가 상호 대립하여 교류가 거의 없었다는 일본 학계의 주장(새로 쓰는 한국사 길잡이)에 대한 반론이면서 발해-신라 교류사 연구의 진전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주민: 고구려 유민과 발해의 족원 및 구성

 

  저자의 시야는 고대 동아시아 시공간 속 주체들의 족원과 이동에까지 미쳐 있다. 고구려 유민사에서는 당의 고구려 유민집단 통치 전개 과정을 치밀하게 서술하는 한편, 당의 신민이자 고구려인으로서 의식이 교차되는 유민들의 자의식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또한 발해의 주민 구성에서 보이는 이중성(발해인-여진인)은 발해인의 족원(고구려인-말갈인)에 닿아 있으며 통치구조, 지배체제의 이중성과 연결되어 있음을 밝힌다.

  고구려사 연구로 출발한 저자는 이 책에서 고구려와 발해사 전반에 걸친 논의를 진지하게 재검토하고 새 활로를 모색한다. 그 범위는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중국과 북방을 포함하므로, 사실상 고대 동아시아사의 실체에 대한 탐구라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각국의 천하관에 근거한 대외관계사와 삼국의 정치체와 국가구조, 경제·전쟁사를 아울러 천착해 온 저자의 온축蘊蓄에 최신 발굴 조사와 금석문 분석 등 새로운 방법론이 결합된 성취이다. 따라서 고대사 연구의 전범이자 다채롭고도 획기적인 방향으로 연구를 진작시키는 하나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목    차

책을 내면서 5

1부 고구려사의 전개 13

1장 고구려 초기의 천도에 관한 약간의 논의 15

   1. 머리말 15

  2. 집안 지역으로 천도한 시기 16

     1) 고구려 초기의 천도 관련 기사 16

   2) 유리왕대 천도설 검토 21

   3) 산상왕대 천도설 검토 27

  3. 국내 위나암성과 흘승골성 35

   1) 오녀산성과 주변 지역 35

   2) 졸본과 흘승골성 40

  4. 맺음말 45

2장 광개토왕릉비의 정복전쟁 기사와 평양 천도 47

  1. 머리말 47

  2. 광개토왕의 정복활동 48

   1) 641400촌의 실체 48

   2) 영락 5년조의 기사의 함의含意 54

  3. 정복전쟁 서술과 평양 천도의 연관성 60

  4. 맺음말 63 

3장 중국 남북조와의 조공·책봉관계를 통해서 본 고구려국의 성격 65

  1. 머리말 65

  2. 피책봉 관작과 지방정권론 66

  3. 속국론 80

  4. 자주국론 88

  5. 맺음말 95 

4장 고구려 유민사 연구-요동·당 내지 및 돌궐 방면의 집단을 중심으로- 99

  1. 머리말 99

  2. 요동지역의 유민 102

  3. 당 내지에 옮겨진 유민 121

   1) 관내·농우도 방면의 고구려인 121

   2) 영주 지방의 유민 131

  4. 돌궐 방면의 유민 138

  5. 맺음말 149

2부 발해사 연구 153

1장 발해국의 주민 구성과 발해인의 족원族源 155

  1. 머리말 155

  2. ·금대의 발해인과 여진인의 존재 양태 157

  3. 발해국의 주민 구성 173

   1) 철리부鐵利府와 남해부南海府 지역의 예 173

   2) 토인土人과 말갈 180

  4. 발해인의 족원 185

   1) 발해국의 주민이 된 집단들 185

   2) 발해 왕실의 출자 191

     (1) 기존의 설들 191

     (2) 별종別種의 성격 197

     (3) 걸사비우 집단과 대조영 집단 202

   3) 발해인의 귀속의식 208

  5. 발해국의 성격에 관한 인접국인의 인식 223

  6. 맺음말 234

2장 대발해 일본국서에서 언급한 고려구기高麗舊記에 대하여 237

  1. 머리말 237

  2. 고려구기에 담긴 내용 238

  3. 고구려와 왜국의 교섭 243

  4. 금마저 고구려와 일본의 관계 253

  5. 일본의 고구려 번국관蕃國觀 형성 258

  6. 맺음말 긴밀한 우호관계와 상이한 과거 인식-263

3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말갈의 실체 271

  1. 머리말 271

  2. 말갈靺鞨과 동예東濊 273

   1) 백제본기의 말갈 273

   2) 신라본기의 말갈 281

  3. 삼국통일전쟁기의 말갈 283

  4. 부여·옥저·동예와 예맥말갈론 296

  5. 를 말갈로 개서改書한 시기와 그 배경 301

   1) 말갈로 개서한 시기 301

   2) 신라와 고려의 북경北境에 인접한 철리鐵利·달고達姑·흑수黑水306

  6. 맺음말 318 

4장 발해 박씨에 대하여

-신라와 발해 간 교섭의 한 사례 연구- 321 

참고문헌 336

찾아보기 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