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맞수 1: 백제 성왕과 신라 진흥왕
 
 도서분류 한국사
지은이 : 노중국
옮긴이
면 수 : 276
:  \17,000
출간일 : 2020/08/10
판 형 : 신A5
ISBN : 978-89-423-9081-6(9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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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주문권수 입력: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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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나라와 나라는 경쟁하다가 화호和好하고 화호하다가 대립하기도 한다. 모두 자국의 이익과 국제관계상에서 세력균형을 위해서다. 그래서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하였다. 이런 복잡한 국제관계 속에서 역사의 맞수가 생겨난다.

  역사의 맞수는 동시대에 용호상박의 대결을 펼친 역사상의 두 인물을 말한다. 사람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역사상 맞수는 중국의 삼국시대에 촉한의 제갈량諸葛亮과 조위의 사마의司馬懿일 것이다. 소설 삼국지연의: 삼국지의 덕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삼국시대에도 만만치 않은 대결을 펼친 맞수가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백제 성왕(523-554)과 신라 진흥왕(540-576)이 역사의 맞수다.

  역사상 맞수의 대결과 그 결과는 당시뿐만 아니라 그 이후 두 나라의 역사 전개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맞수의 대결이 어떻게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되었고, 결과가 어떠하였으며, 그것이 그 시대에 또 그 이후의 시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성왕과 진흥왕을 맞수의 관점에서 정리하는 목적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성왕은 스무 살 정도 되는 523년에 즉위하였다. 진흥왕은 540년 즉위할 당시 일곱 살이었다. 나이로 따지면 성왕은 진흥왕의 아버지뻘이었다. 그러나 두 왕은 14년 동안 재위 기간을 같이하였으므로 동시대의 인물이었다. 두 왕은 때로는 화호하고 때로는 대결하면서 이 시대를 이끌어 갔다.

  성왕은 아버지 무령왕이 다져 놓은 갱위강국을 토대로 사비 천도를 단행하여 새 시대를 열었다. 중앙과 지방의 통치조직을 정비하고, 강력한 왕권 중심 체제를 만들어 중흥을 이루었다. 중국 양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문화 수준을 높였다. 장육불상을 만들어 왕실을 신성화하였다. 그래서 백제인들은 그를 성왕聖王이라 불렀다. 성왕의 꿈은 백제를 더욱 강한 나라로 만들어 근초고왕-근구수왕대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진흥왕은 18세가 되는 재위 12(551)에 친정을 하면서 연호를 개국開國으로 고쳐 새로운 정치를 펼 것을 선언하였다. 왕권을 신성화하고 정복 활동을 적극 전개하여 영토를 넓혔다. 인도의 아육왕(阿育王: 아쇼카왕)이 만들지 못한 장육불상을 한번에 만들어 자신이 뛰어난 군주임을 과시하였다. 진흥왕의 꿈은 지증왕이 선포한 덕업일신 망라사방과 법흥왕이 이룬 대왕의식건원칭원稱元을 실천해 신라를 이웃 나라들이 신의를 지키겠다고 서약하는 천하의 중심국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성왕과 진흥왕은 처음부터 맞붙은 것은 아니었다. 삼국이 정족鼎足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강대한 고구려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두 왕은 손을 맞잡기도 하였다. 그래서 고구려가 백제를 치자 진흥왕은 원군을 파견하여 백제를 도와주었다. 이렇게 두 왕은 대고구려 공동전선을 형성하여 세력균형을 이루었다.

  그러나 두 왕은 점차 숙명의 맞대결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배경에 한강유역이 있었다. 한강유역은 삼국이 국경을 접한 군사적 요충지였고, 물산이 풍부하였으며, 대중국 해상 교두보로서 삼국의 쟁패지지爭覇之地였다. 이곳을 차지해야만 진정한 패권자覇權者가 될 수 있었다. 이리하여 두 맞수는 한강유역을 놓고 한판 승부를 펼쳤다. 어제의 동맹이 오늘의 적으로 바뀐 것이다.

  맞수의 대결은 관산성 대회전에서 판가름 났다. 백제의 대패였다. 성왕은 포로로 잡혀 죽었고, 진흥왕은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쟁의 패배로 근초고왕-근구수왕의 영광을 재현하려 한 성왕의 꿈은 산산이 깨어졌다. 반면에 진흥왕은 욱일승천의 기회를 잡아 한강유역은 물론 가야 지역과 함경남도 지역까지를 영역으로 편입하여 덕업일신 망라사방을 이루었다.

  관산성 대회전의 승리와 그 결과로서 진흥왕이 차지한 한강유역사방탁경은 훗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경제적, 군사적,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관산성 대회전이 한국고대사에서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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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성왕과 진흥왕을 역사의 맞수로서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절판된 저자의 첫 저서 백제정치사연구(일조각, 1988)를 개정증보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부터였다. 그 결과물이 2018년에 출간된 백제정치사(일조각)이다. 개정증보 작업을 하면서 저자는 관산성 대회전의 결과가 당시의 백제와 신라 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컸을 뿐만 아니라 훗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기반이 되었음을 새롭게 재인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역사적 대회전을 성왕과 진흥왕이라는 맞수를 중심에 두고 살펴보기로 하였다.

성왕과 진흥왕을 역사의 맞수로 설정하면서 고민되었던 것이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인물을 강조하는 것이 과연 한국고대사를 이해하는 데 얼마만큼의 도움이 되겠느냐는 문제였다. 맞수의 대결에서는 맞수의 능력과 지혜, 통솔력과 결단력이 강조되는데, 자칫 잘못하면 영웅주의에 빠져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가와 사회를 운영함에는 잘 짜여진 제도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의 능력이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국왕의 경우 판단력과 통솔력의 여하는 국가 전체의 명운을 좌우한다. 이런 측면에서 성왕과 진흥왕이라는 걸출한 두 왕의 대결을 맞수의 관점에서 정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다른 하나는 두 왕의 업적이나 활동을 일관성 있게 비교할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비교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비교의 기준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성왕과 진흥왕이 자신들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토대를 놓아 준 백제 무령왕과 신라 지증왕·법흥왕대를 먼저 개관하고, 그 다음 두 왕이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군사력을 키우고 왕권을 신성화하여 두 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어 가는 모습을 몇 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그리고 이 책의 핵심 주제인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두 맞수가 명운을 걸고 싸운 관산성 대회전의 전개 과정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였다. 관산성 대회전의 승패와 두 왕의 최후가 두 나라의 역사 전개 과정에 미친 영향은 두 나라 내부에 일어난 변화를 정리하는 것으로 갈음하였다. 맺는 글에서는 고대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국제전의 하나인 관산성 대회전의 승패가 관련국들에게 미친 영향과 이후 신라의 삼국통일에 끼친 역사적 의미를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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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고를 최종 정리하는 시기에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대구 지역에 피해가 심했다.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온 국민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스스로 조심하였고, 자원 봉사자는 자원 봉사자답게, 의료진은 의료진답게, 방역 당국은 방역 당국답게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난국에 처하였을 때 국민의 내적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몫이다. 국가 지도자의 통찰력과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가 처한 국난 극복 과정을 먼 과거로 투사시켜 보았다. 성왕과 진흥왕은 백제와 신라가 처한 국가적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갔을까? 어떻게 민들의 내적 역량을 묶어 냈을까? 역사는 결국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출간은 지식산업사에서 맡아 주었다. 어려운 출판 환경에도 인문학을 진흥시켜야 한다는 뜻에서 선뜻 출판을 허락해 주신 김경희 사장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내용을 꼼꼼하게 살피고 모양 좋은 책으로 만들어 준 편집부의 김연주 선생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글이라고 하면서 내용을 경청해 주고 때로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해 주기도 한 아내 전중기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20205

팔공산 아래 단산 저수지를 바라보며

미관未盥 노중국 삼가 쓰다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맞수의 결전과 삼국쟁패의 드라마

최초의 삼국통일, 그 대업의 계기는 언제 어떻게 마련되고 축적되었는가

인물로 보는 삼국사이자 새로 쓰는 삼국통일 흥망사

 

  백제사 연구의 대가 노중국 교수가 백제와 신라의 각축과 최후를 성왕과 진흥왕이라는 맞수의 결전으로 압축시켜 놓은 흥미로운 야심작을 선보인다. 삼국의 숨 가쁜 맞물림과 겯고트는 격전 현장이 한 올도 흐트러짐 없는 비단으로 직조된다. 6세기 두 왕의 한판 접전은 100년여 지난 삼국통일의 귀결을 암시하는 전초전이었던 것이다.

 

 

대결의 전야

 

  성왕과 진흥왕의 맞대결은 그 선대 왕들이 놓은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저자는 백제와 신라의 시기를 각각 구분하고 두 왕의 전성기를 가능케 한 무령왕과 지증왕·법흥왕의 체제 정비와 국정목표를 살핀다. 백제사에서는 한성기-웅진기-사비기 가운데 사비기, 신라사에서는 상고기-중고기-중대기-하대기-후삼국기 가운데 중고기의 성세 속에 비로소 두 나라를 대표하는 명왕明王시대가 열렸다. 성왕은 무령왕대의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바탕으로 사비로 천도를 단행하며 선진문화를 적극 수용하였고, 지증왕과 법흥왕의 체제 정비를 이어받은 진흥왕은 친정親政을 시작하면서 화랑도를 창설하여 인재를 등용했다. 신라에 항복한 금관가야 구형왕의 셋째 아들 김무력은 자신을 믿어 준 진흥왕에게 관산성 전투의 대승으로 화답한다.

 

맞수의 결전: 관산성 대회전

 

  황산벌, 안시성등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 일반 대중은 삼국역사 가운데 삼국통일을 이룩한 7세기에 주목한다. 그러나 저자는 554년 관산성 전투가 신라의 삼국통일 위업의 결정타였다고 본다. 학계에서 주로 논의되어 왔던 관산성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두 맞수의 대결로 승화시킨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저자는 한강유역을 둘러싼 삼국의 치열한 접전을 사료에 근거한 치밀한 논증과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그려 낸다. 진흥왕에게 지금의 서울 지역인 한성을 빼앗긴 성왕은 한강유역을 되찾기 위해 고구려와 벌인 백합야새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원로대신인 기로耆老들의 출병 반대에도 감행한 구타모라새 전투에서 성왕은 백제군 최고사령관인 아들 여창을 위문하러 가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성왕의 죽음은 지도자의 공과 사의 문제, 개전의 책임과 종합적인 판단력 등 최고지도자의 역할과 선택에 관한 많은 물음을 곱씹게 한다. 한편으로 그의 죽음은 첩보전에서 신라가 우세했음을 보여 준다. 고구려 내분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551년 고구려 공격에 나서기도 했던(노중국, 백제의 대외 교섭과 교류) 백제는 신라의 기민한 첩보망까지는 따라잡지 못한 것 같다.

 

삼한일통의 대서사를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다

 

  진흥왕은 이후 고구려의 의표를 찔러 동해안 방면으로 북진하는 등 영역을 크게 넓혀四方託境네 주에 사방군주四方軍主를 파견하였다.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網羅四方이라는 지증왕의 사방 의식에 바탕을 둔 진흥왕의 사방 관념은 일통 의식의 발현이자 일통삼한一統三韓 의식의 토대가 된 것이다. 기로들의 출병 반대를 질타했던 여창(위덕왕) 패전 이후 대성팔족 귀족들의 분화와(노중국, 백제사회사상사) 득세로 왕권의 미약화를 막지 못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관산성 대회전이 낳은 이 판이한 형세는 마침내 중국 왕조가 참여한 세 차례의 국제전(맺는 글) 끝에 신라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게 되는 근간이 되었다. 국제정세를 읽는 외교력과 인재 활용, 첩보능력 등이 승부의 관건이었다.

 

  명확한 시대 구분, 짜임새 있는 구성 및 삼국지를 연상케 하는 극적인 이야기가 합쳐진 이 책은 신선함과 알아가는 뿌듯함을 동시에 안긴다. 40여 년 연구 외길을 걸어온 저자의 저력은 두 인물의 대두와 클라이맥스, 그 이후 대미까지 독자들을 한껏 몰입시킨다. 특히 인물로 삼국 역사를 다시 보는 이 과감한 시도는 정치사적 시각에서 출발한 이후 고대인들의 삶과 사상으로 시야를 넓히고, 고대동아시아 속 교섭과 국제관계를 천착해 온 저자의 연구 지평의 확장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할 만하다.

 

 

 목    차

책을 펴내며 5

머리글: 맞수의 앞 시대 15

    . 사비기의 토대를 놓은 무령왕과 중고기의 기반을 다진 지증왕 17

    Ⅱ. 갱위강국을 선언한 무령왕 20

1. 무령왕의 즉위와 체제 정비 20

2. ‘갱위강국선언과 외왕내제표방 24

    Ⅲ. 지증왕의 덕업일신 망라사방선포와 법흥왕의 대왕건원28

1. 지증왕의 즉위와 덕업일신 망라사방선포 28

2. 법흥왕의 체제 정비와 대왕건원32

 

1부 맞수의 등장 39

  1장 성왕의 즉위와 정치 41

    Ⅰ. 즉위 41

    Ⅱ. 1: 사비 천도의 단행 43

1. 유불병치의 표방 43

2. 사비도성 조영과 천도 46

3. ‘남부여로의 국호 개칭 50

4. 선진문화의 수용과 전축분 축조 52

    Ⅲ. 2: 체제 정비 53

1. 중앙 및 지방 통치조직의 정비 53

2. 유학 교육과 인재 등용 57

3. 국가 제의체계 정비 58

4. 불교 교단의 정비와 전륜성왕 의식 60

5. 삼교 포함 사상과 백제금동대향로 64

  제2장 진흥왕의 즉위와 정치 67

    . 왕위계승 원칙과 즉위 67

1. 왕위계승 원칙 67

2. 진흥왕의 즉위 69

    Ⅱ. 섭정기: 섭정 태후와 보신輔臣 이사부거칠부 72

1. 섭정 태후 72

2. 보신 이사부 74

3. 보신 거칠부 76

    Ⅲ. 친정기 전기: 도약의 발판 마련 77

1. 국정 운영의 지표 77

2. 왕경의 재정비 80

3. 화랑도 설치와 인재 등용 83

4. 불교 교단의 통제와 승관 조직의 정비 87

5. 풍월도와 삼교 포함 사상 88

 

2부 맞수의 대결 93

  제1장 백제의 한강유역 회복 95

    Ⅰ. 백제신라가야의 대고구려 연합전선 형성 95

1. 성왕의 한강유역 회복의 꿈 95

2. 신라의 연합전선 참여 과정 97

3. 가야의 군사 지원 99

4. 왜의 군수 지원 103

    Ⅱ. 3국 연합군의 한강유역 진격 105

1. 고구려의 상황 105

2. 백제의 한성과 남평양 그리고 6군 회복 107

3. 신라의 10군 획득 110

  제2장 성왕과 진흥왕의 한판 승부 112

    . 려의 연통과 백제의 한성남평양 포기 112

1. 신라와 고구려의 연통 112

2. 백제의 한성과 남평양 포기 115

    Ⅱ. 관산성 대회전의 전초 117

1. 백제의 고구려 공격: 백합야새 전투 117

2. 가야와 왜의 군사 지원 120

    Ⅲ. 관산성 대회전의 전개 122

1. 관산성의 군사 지리적 조건 122

2. 1차 진성 전투: 백제군의 대승 125

3. 2차 구타모라새 전투: 성왕의 전사와 진흥왕의 대승 128

4. 관산성 대회전의 주역들 132

 

3부 맞수의 대결 이후의 백제와 신라 141

  제1장 흔들리는 백제 왕권 143

    . 위덕왕 즉위와 왕권의 동요 143

1. 3년 공위설의 의미 143

2. 왕권의 동요 146

    Ⅱ. 대성팔족의 대두와 6좌평 중심의 정치운영 148

1. 대성팔족의 대두 148

2. 6좌평 중심의 정치운영 150

  제2장 욱일승천하는 진흥왕 153

    . 비상위의 설치와 군사조직의 확대 153

1. 비상위와 중위제의 설치 153

2. 군사조직의 정비와 내정 기구의 확대 157

    Ⅱ. 왕권의 신성화와 호국 불교의 강조 159

1. 불교 치국책의 추진과 황룡사 159

2. 전륜성왕의 표방과 장육존상 주성 162

3. 호국 불교의 강조 165

    Ⅲ. 사방군주의 설치와 순수, 그리고 외왕내제 167

1. 사방척경과 사방군주의 설치 167

2. 순수와 봉선제 170

3. 외왕내제 표방 173

    Ⅳ. 한강유역의 경영 175

1. 신주의 경영 175

2. 국원소경의 설치와 충주 경영 177

3. 해문 당성의 운영 179

 

 

4부 맞수의 최후와 무덤 183

  제1장 성왕의 최후와 무덤 185

    Ⅰ. 성왕의 최후 185

1. 여창을 위문하러 간 성왕 185

2. 성왕의 사로잡힘과 첩보 187

3. 성왕의 최후 모습 189

    Ⅱ. 능산리고분군과 성왕의 무덤 191

1. 새로운 능묘제 시행과 능산리고분군 191

2. 성왕의 무덤과 능산리 2호분 195

  제2장 진흥왕의 최후와 그 이후의 신라 199

    Ⅰ. 진흥왕의 최후 199

1. 동륜태자의 죽음과 거칠부와의 갈등 199

2. 장육존상의 눈물과 삭발위승 그리고 죽음 202

    Ⅱ. 서악리고분군과 진흥왕릉 204

1. 능묘제 개혁과 서악리고분군 204

2. 진흥왕릉 207

    Ⅲ. 진흥왕 사후의 신라 211

1. 진지왕대 거칠부의 군국사무 자임과 흥륜사 211

2. 진평왕의 석가족 표방과 황룡사 214

 

맺는 글 221

1. 고대동아시아의 국제전 221

2. 관산성 대회전의 영향 224

3. 관산성 대회전의 역사적 의미 227

 

후주 234

찾아보기 260

 

 저  (역)   자   약   력

노중국盧重國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계명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계명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1979~2014)로 재직했으며, 인문대학 학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계명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이다. 한국고대사학회를 창립하여 1~4대 회장을 맡았고, 대구사학회 회장, 백제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1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한성백제박물관건립추진단 전시기획실무위원회 위원장,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장,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위원,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위원장, 백제문화사대계(25) 편집위원장,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 연구총서자료집(30) 편집위원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백제사회사상사, 백제의 대외 교섭과 교류, 백제부흥운동사, 백제정치사, 공저로는 개정 증보 역주 삼국사기 -Ⅴ》, 대가야의 정신세계, 한국고대의 수리시설과 농경, 한류 열풍의 진앙지 일본 가와치, 금석문으로 백제를 읽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