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권과 법: 한국 고대 법제의 성립과 변천
 
 도서분류 한국사
지은이 : 김창석
옮긴이
면 수 : 380
:  \24,000
출간일 : 2020/11/27
판 형 : 신국판
ISBN : 978-89-423-9083-0(9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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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주문권수 입력: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이 책을 마무리하던 2020년 초에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새로운 독감 정도려니 여겼다가 전염성이 강하고 완치되더라도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세정제로 손을 소독하고 마스크를 사러 줄을 선 기억이 새삼스럽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여러 정보가 SNS를 통해 퍼져 나갔다. 그때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준 곳은 정부가 매일 여는 공식 브리핑이었다. 그리고 마스크, 손세정제 등 방역용품 수요가 폭증하자 우체국, 농협이 운영하는 도매상점, 공공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제한적인 공급이 이뤄졌다.

  비상상황이 되면 먹을 것을 챙기고 질병을 치료하려는 원초적인 욕구가 분출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정부와 같은 국가기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도 이런 상황과 진배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가 이럴진대 고대사회는 어땠을까? 자연재해가 닥쳐 기근이 들고 전염병이 창궐하면 역시 국가가 나섰다. 민간의 시설이나 재원財源이 부족한 여건에서 정부기구의 역할은 지금보다 더 컸을 것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고대사회에서 일찍이 우역郵驛과 관시官市가 설치되고 관도官道가 개설된 것이 마치 오늘날 우체국과 같은 공적기구를 통해서 방역용품을 공급하듯이, 중앙정부의 명령과 필수물자를 영역 안 곳곳에 안전하고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아니었을까 한다.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도 농민의 몰락을 막기 위해 왕명王命으로 진휼을 실시한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역사적인 재난이었지만 나에게는 기록과 명칭으로만 무미건조하게 남아 있던 고대의 제도를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 숨 쉬는 기구와 시스템으로 생동하게 실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필자는 사실 제도사 연구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다. 한국 고대의 경우 관련 자료가 적어서 제도에 대한 접근 자체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정치제도, 과거제도, 상속제도 등에 관한 자료가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 있는 고려, 조선시기의 경우에도 그것에 접근하는 방향과 방법론이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근저에는 제도는 제도일 뿐 현실과는 거리가 있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었으리라는 예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도가 성립되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실제로 껍데기만 남을 정도로 유명무실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작동하고 있을 때의 제도는 분명 그 사회를 틀 지우고 움직이는 중요한 장치였다. 마치 2020년의 질병관리본부처럼.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면 원래의 취지와 원리를 안 다음 그것이 형해화되어 가는 추이와 원인을 살피는 것이 순서이다.

  어떤 제도가 작동하도록 기준과 규칙을 제공하고 물리적·행정적 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 주는 것이 법률法律이다. 필자는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수업을 들으면서 고대의 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포항 냉수리비의 탁본을 보며 판독을 하고 해석을 시도할 때 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은 증거, 곧 판결의 근거를 의미한다. 증거에는 물적 증거, 증언, 자백, 정황증거 등이 있을 터인데 비문에서는 앞선 왕의 판결을 증거로 삼았음을 명언하고 있었다.

  이것은 재판의 판례判例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냉수리비가 신라에서 율령이 반포된 520년보다 앞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비문은 율령 반포 전 신라 법제의 실상을 핍진하게 보여 주는 일급 자료이다.울진 봉평비524년에 건립되어 율령 반포로부터 4년이 지난 뒤의 자료이다. 양자를 비교하면 고대국가에서 율령이 반포되기 전후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졌고, 율령이 기왕의 법체계와 사회,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근래 발견된 집안 고구려비〉〈포항 중성리비및 나주 복암리 목간을 포함하여 금석문, 목간과 같은 동시기의 자료를 적극 활용하였다. 그 속에서 고대의 법을 추출하고 율령의 구성체계를 떠올려 보았다. 또 이를 문헌사료와 연관 지어 법제의 시기별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등 출토자료와 문헌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한국 고대의 법 하면 으레 율령을 떠올리게 된다. 율령은 법전 형태의 새로운 법체계를 의미하므로 법제의 발전 역사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써 전국에 걸친 일원적 지배의 법적인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 내용은 중앙의 왕권王權이 주민 각각의 인신人身을 직접 지배하는 것이었다. 율령의 의의를 강조하다 보니 그보다 앞선 시기에는 마치 무법천지 혹은 법이 있더라도 원시적인 수준이거나 관습법만이 존재했으리라고 막연하게 인식하게 된 것이 아닐까? 나는 이러한 인식상의 편향을 바로잡기 위해서 율령 반포 전 고대국가의 법문화, 법제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본론에서 자세히 밝히게 될 교령법敎令法이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율령 또한 고대 법의 발전선상에서 등장한 법체계의 하나이므로 율령법律令法이라고 고쳐 불렀다.

  고대국가에서 법의 발포 주체는 국왕이다. 율령법은 물론이고, 그 전에 국법의 역할을 한 교역시 원래는 다수의 유력자가 공동 명의로 공포했으나 점차 국왕이 독점하여 발포했다. 법의 제정과 포고는 고대사회 왕권의 성립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을 왕권과 법이라고 지은 이유는, 고대법의 형성과 시행에 왕권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또 역으로 고대법의 체계화 과정 속에서 왕권이 성립되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왕권이라고 하면 신권臣權과 반비례 관계가 있어서 왕권이 강하면 좋고 약하면 나쁜 것이라는 소박한 이해가 통용되던 때가 있었다. 1970년대 유신체제 아래서 대통령 중심의 강력한 동원체제가 작동하던 시절에 이러한 정치체제를 고대에 투영하여 권력의 성장과 집중을 설명하려는 비역사적인 접근방식이 등장했다. 이 때문에 한편에서는 왕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백안시하고 기피하는 경향조차 나타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그러나 고대국가의 왕권은 신권과 대비되어 권력의 소재를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왕권에 관한 논의의 본질은 권역圈域 안의 인민과 토지 등 자원에 대한 장악과 통제력이 얼마나 집권화集權化되었나를 살펴보는 권력구조 또는 지배체제의 문제이다. 소국小國과 같은 지역 정치체가 고대국가로 성장하는 데 종래의 분산적인 권력구조가 어떻게 극복되어 중앙의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체제로 재편되는지를 왕권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치적 지배자가 권력의 집중을 위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것이 법이었다.

  나는 이와 같은 견지에 서서 이 연구를 밀고 왔다. 이렇게 볼 때 이 책은 법제사 연구라기보다는 법이라는 구멍을 통해서 엿본 고대의 정치사, 사회문화사를 담았다고 하는 것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관련 금석문, 목간 자료를 더 깊이 이해하고, 고대법의 생리와 왕권의 모습을 그려 보는 데 작으나마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국학 출판의 산증인이자 대학의 대선배로서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 김경희 사장님, 난삽한 원고를 이렇게 번듯한 책으로 만들어 주신 김연주 님께 깊은 감사를 표한다. 지식산업사에서 책을 내는 것은 35년 전 어린 학부생의 꿈이었다.

 

 

2020. 5. 6.

북한강변의 서재에서

김 창 석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율령 반포 전후 우리의 법문화는 어떠했는가?

고대 집권체제의 관제 및 행정 기능 변천에 따라 고대 법의 발달 단계를 체계화시키다

비문, 목간으로 실감하는 고대사이자, 옛 법으로 보는 사회문화사

 

  율령법 이전의 고법古法의 실체를 규명하여 한국 고대 법제를 체계화한 사학계의 역작이 나왔다. 고대 유통경제와 대외교역이라는 굵직한 주제에 몰두해 왔던 김창석 교수는 이번에 법이라는 창을 통해 우리 고대사회를 통괄하는 거대 작업을 내놓는다. 목간과 비문 등 동시대 일차사료와 사서를 총망라한 촘촘한 그물코로 고대 사회상社會像의 실제만이 아니라 그 법체계 수립이라는 활어를 낚아 올린다.

 

왕권과 고대법

 

  지금까지의 한국 고대 법제 연구에서는 대부분 신라 율령의 계통성에 집중해 왔다. 외래법(계수법繼受法)과 고유법을 상하관계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우선 율령 반포 이전의 고법古法에 착안하는 것으로 그 돌파구를 찾는다. 고유법 자체의 발전과정을 탐색함으로써 계수법을 상대화하는 것이다. 이때 왕권은 법제의 추이와 연관되는 핵심어가 된다. 이에 따라 제사장이기도 했던 단군왕검의 고조선이 제정 미분리 사회의 신정법神政法의 관습법 단계였다면, 점차 왕권이 세속권력화한 진한辰韓 소국 이전부터 이사금기는 소국법小國法 단계로 규정된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에는 국왕의 상황 판단과 명령 하달이 행정의 발단이며 가신家臣과 같은 존재들이 행정의 전면에서 활약했다. 인류학적 방법론 등을 활용한 저자의 폭넓은 접근은 영성한 자료로 말미암아 가려져 있는 시원기 법속을 막힘 없이 추론해 나가는 탄탄한 기초가 되어 준다.

 

왕명王命의 유효한 집약체, 교령법

 

 형성의 관점에서 고대 법속의 단계를 추적해 나가는 저자가 중요한 전환기로 꼽는 것은 3~5세기 사로국이 고대국가로서 성립되는 과정이다. 그간 이 시기의 법과 행정기능의 연관성은 주목받지 못한바, 저자는 가신이 아닌 관료집단, 곧 초기 관부 성립에 따른 행정구조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사로국이 연맹체에 소속된 소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자 남당南堂이라는 기구를 설치하여 6부의 협의체제가 성립되면서 주요 정책이 공론共論을 거쳐 의 흐름으로 하달된 것이다. 저자는 이를 교령법敎令法이라고 명명하고, 포항 중성리비포항 냉수리비에서 그 실례를 입증하면서, 소국법의 국지성局地性 극복과 함께 판례의 축적이라는 교령법의 의의를 언급한다. 부체제部體制 시기의 법체계인 교령법은 역설적으로 부의 사법권을 왕권으로 집중시킴으로써 부체제를 허무는 결과를 낳았고, 마침내 율령법의 성립으로 왕권 중심의 일원적 체제가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목간으로 보는 율령법의 성격

 

  고구려와 신라의 비문으로 교령법을 분석한 다음 저자는 목간을 통해서 백제와 신라 율령법의 성격을 논증해 나간다. 지방관부가 작성하여 수발한 공유지 요역 수취 공문서라고 할 수 있는 나주 복암리 출토 목간에서는 7세기 초 직접지배 방식을 통한 지방 지배의 단면이 확인된다. 가야5598 목간은 60일 동안의 역역이 도중에 중단된 경과와 내역에 대한 보고로, 지방 행정의 집행 과정을 추론케 하며 행정령 가운데 某法형식으로 표기된 법률의 추가 사례로 대법代法이 있었음을 증명한다(7참조). 저자는 신라 중대 율령 단계에서는 중고기와 달리 수·당의 제도를 지향했다면서, 7세기 중엽 당으로부터 수용된 격·식은 추보追補로 율령법을 보완해 나가는 방식을 더욱 수월하게 하였음을 10에서 한눈에 보여 준다.

 

  법체계 자체의 발전선상에서 율령을 재해석하는 이 책은 단선적 이해의 틀에 갇혀 있었던 기존의 율령 연구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풍성하고도 논리적인 방법으로 우리 법문화를 조명한다. 특히 저자가 언급했듯이, 고대 정치체에서 확인되는 교령법이 동아시아 차원으로 범위를 넓혀 고찰된다면 동아시아 율령 논의를 한 단계 성숙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저작은 학계의 큰 수확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 연구가 한국 고대 사학계에서나 법제사학계, 나아가 동아시아 학계에서 어떻게 외연을 확대시켜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목    차

책머리에 5

일러두기 12

서론: 동아시아 율령론律令論에 관한 비판적 검토 13

 

1조선과 부여의 법속法俗 27

    1. 범금팔조犯禁八條의 기원과 성격 _28

2. 신판神判과 속법俗法 _34

  3. 신정법神政法과 소국법小國法 _42

 

2 령법敎令法: 삼국 초기의 법제 59

  1. 행정체계와 집행의 구조 _60

  2. 포항 중성리비포항 냉수리비에 나타난 쟁송爭訟 절차 _69

  3. 교령법의 기능과 성격 _89

 

3장 고구려의 왕명체계王命體系와 교· 105

  1. 초기의 왕언王言과 왕명王命 _108

  2. 교령제의 성립과 시행 양상 _121

    3.집안 고구려비의 율과 교·_131

 

4장 율령법의 기능과 성격 139

  1. 교령법과 부체제 _140

  2. 호적제를 통해 본 백제 율령의 양상 _148

  3. 목간을 통해 본 신라 율령의 편목, 대법代法 _180

  4. 율령의 체계와 왕교王敎 _205

 

5집안 고구려비에 나타난 수묘법守墓法의 제정과 포고 215

  1. 비문의 구성과 서술방식 _218

  2. 수묘법의 제정과 율령 추보 _225

  3. 수묘제의 포고 방식과 수묘역守墓役의 차정差定 _237

 

6신라 중·하대 율령의 개수 245

  1. 중대 제도의 변화 양상 _247

  2. 수당 율령의 수용과 국제 개혁 _263

  3. 하대의 법률 제정과 격·_279

 

7장 복수관復讐觀을 통해 본 고대의 법문화 295

  1. 초기 고대국가의 법속과 복수 _298

  2. 유교 이념과 복수관 _304

  3. 집권체제와 복수관의 변화 _307

  4. 복수의 제어와 관용寬容의 상찬 _314

 

결론: 고대 법의 변천과 교령법의 의의 323

Abstract 339

표 및 사진 목차 345

참고문헌 346

찾아보기 360

 

 저  (역)   자   약   력

김창석金昌錫

 

1966년 전북 전주 출생.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신대학교 학술원 연구교수를 거쳐 2005년부터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Harvard대학교 방문학자(2011~2012), 강원대학교 중앙박물관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삼국과 통일신라의 유통체계 연구(2004), 한국 고대 대외교역의 형성과 전개(2013), 공저로는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의 한중관계사(2010), 한국고대사 연구의 시각과 방법(2014), 문자와 고대한국 1,2(2019)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