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의 후궁
 
 도서분류 한국사
지은이 : 이미선
옮긴이
면 수 : 536
:  \30,000
출간일 : 2021/01/05
판 형 : 신국판
ISBN : 978-89-423-9084-7(9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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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결혼이 남녀 간의 인연으로 이루어지듯이 연구자와 학위논문 주제 역시 특별한 인연이 되어야만 그 주제로 학위를 받는다고 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두 번이나 주제가 바뀌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학한 뒤, 장서각 소장 의궤儀軌에 매료되었고, 자연스럽게 왕실 문가운데 하나인 가례嘉禮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례는 왕실 결혼식을 말하는데, 왕실 문화의 기록을 통해 조선 왕실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7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신문화연구여름호에 기고한 1681(숙종 7) 국왕 가례시 간택처자 연구가 발표되면서 필자의 관심사는 왕실가례보다 왕실여성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이 논고에서 왕비로 낙점받은 1명을 제외한 낙선된 나머지 처자들이 다른 곳으로 시집갈 수 없다거나 모두 국왕의 후궁이 돼 평생 처녀로 늙었다는 그간 학계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그 설이 그릇된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음을 강조했다. 이 논고는 연구자들과 언론의 공감을 얻게 되어 2008년 한국학술진흥재단 우수논문에 선정되었고, 세계일보(2007.7.5.)에 소개되었다. 그런 만큼 역사연구 방법론에서 기초적인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꼈다.

  이후, 왕실여성에 관한 자료를 하나하나 찾아 헤매면서 역사학에서 여성사 연구 성과가 다른 역사 분야에 견주어 매우 미약하고 그들의 삶 역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성에 대한 관련 자료가 매우 부족하고, 연구 방법에서도 그들의 삶의 양태와 가치를 남성 중심 사관에 맞추어 역사의 주변적인 인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사 연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라도 비교적 자료가 남아 있는 조선시대 상층부에 속한 왕실여성을 중심으로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왕실여성의 위상과 역할은 사실보다는 낮게 평가되고 간과되었으며 심하게는 부정적 이미지의 굴레를 쓰고 있었다.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자료에서마저도 남성들의 가치판단에 따라 천사형 여성 또는 악녀형 여성으로 이미지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유교적 여성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왕실여성의 경우엔 음모와 술수를 부린 악녀로 묘사되기 일쑤였다. 이것이 오늘날 왕실여성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현실이자,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따가운 시선이다. 따라서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이 현재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을 연구하는 작업은 그 시대 역사연구의 일환으로서 의미가 있다. 조선시대 왕실여성은 국왕의 최측근이자 왕실의 구성원으로서, 이들의 삶은 국왕의 삶과 직결되고 국왕을 비롯해 관료들과 공적인 공간에서 일정한 관계를 맺으며 활동하였기에 정치적 성격을 띤다. 왕실여성들의 삶과 활동은, 좁게는 500년 조선의 왕실여성 역사가 되었고 넓게는 500년 조선의 여성 역사가 되었다. 왕실여성들의 생애를 깊고 폭넓게 추적해 나가는 과정은 단순히 그들의 생애만을 정리하는 작업에 머무르지 않고 조선왕실의 역사를 정립하는 하나의 과정이라 하겠다.

  왕실여성의 생애를 밝혀 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조선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이정표가 된다. 하지만 조선시대 후궁에 대한 연구는 기초적인 자료조차 지금껏 정리된 적이 없었다. 관련 기록들이 대부분 여기저기에 분산되어 있어서 자료를 수합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후궁에 대한 선학들의 시도가 더러 있었지만 부분적인 저술로만 끝나거나 몇몇 주제에 주변 인물로 언급될 뿐이었다.

  지금까지 후궁에 대한 자료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후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많은 한계가 있었다. 필자가 그 자료들을 모으고 종합하기 위해 쏟은 시간과 노력은 말할 수 없이 길고 힘들었다. 그러나 단편적으로 또는 나름대로의 정리가 몇 차례 이루어져 학위논문을 쓰기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여러 선행 연구들을 수용하여 서툴게 엮어간 논문으로 2012년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학위논문을 제출한 이후, 필자의 학문적 역량 부족 때문에 후련함보다는 부끄러움과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학문적 역량의 한계를 절감하며 새로운 방향을 탐색하는 가운데 8년의 세월이 훌쩍 지난 뒤, 조선시대 後宮 연구를 저본으로 하여 이 책을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필자의 박사학위논문을 대폭 수정 보완한 책이다. 지난날 자료를 모으기 위해 쏟은 시간과 노력, 내용의 보강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있을까 염려스럽다. 무엇보다 아직껏 종합적으로 정리된 바 없었던 새로운 대상의 연구물을 세상 밖으로 내놓으려 하니 두려움이 앞선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논문들을 보강해 책으로 출판한 것은, 이 책이 조선시대 후궁, 더 나아가 왕실여성, 여성사 분야의 연구를 진전시키는 데 작은 디딤돌이라도 되기를 간절히 바라서이다. 또한 부족한 부분들은 차후 연구자들에 의해 수정 보완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가르침과 동학들의 도움을 받았다. 필자의 더딘 학문 성장을 묵묵히 지켜봐 주시고 신실한 가르침을 주신 지도교수 최진옥 선생님의 은혜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학위논문 심사 과정에서 부족한 논문을 꼼꼼히 지적해 주시고 세심한 가르침으로 논문 완성에 길잡이를 마련해 주셨던 심사위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권오영 교수님과 심재우 교수님, 단국대 김문식 교수님, 그리고 숙명여대 한희숙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네 분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자상하신 지도와 꼼꼼한 가르침 덕분에 이 모양새나마 갖출 수 있었다.

  모교 한신대학교 서굉일, 안병우, 유봉학, 이세영 은사님들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 필자는 공부와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학창시절, 은사님들의 연구실을 가끔 방문할 때마다 책 더미 속에 파묻혀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신 채, 오로지 연구에 전념하신 은사님들의 모습을 자주 뵈었다. 뇌리에 각인된 은사님들의 그 모습은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필자로 하여금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학문세계에 발을 내딛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날 필자가 선학들의 손때가 묻은 방대한 자료들을 접하며 공부하는 재미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그 당시 은사님들이 안목을 깨우쳐 주시고 학문 정진에 늘 힘쓰시는 모습을 보여 주신 덕분이었다.

  공부에 관심을 계속 유지해 간 데는, 물론 대학원의 동학들과의 인연이 한 몫했다. 조선사회연구회 모임에서 여러 동학 선후배와 동고동락하며 어울리는 것은 입문한 필자에게는 행운이고, 행복이었다. 조선사회연구회는 고 이성무 교수님의 지도 아래 한국학대학원 한국사학과 재학생 및 졸업생을 중심으로 한 연구 모임이었다. 이곳에서 조선사회의 정치, 경제, 사상, 문화, 여성 등 다양한 분야를 더욱 깊이 알게 되었고 선후배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토론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값진 시간과 소중한 경험을 주신 동문 선배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언제나 학문의 버팀목이 되어 주시고 늘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이영춘 선배님을 비롯해서 고문헌학과 김동석 선생님과 음악학과 성영애 선생님, 그리고 고 최재복 선배님에게는 특히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2011년 무렵, 긴 터널과도 같았던 학문의 여정 속에서 더딘 걸음과 끝도 보이지 않은 불안한 미래에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었다. 솔벗 재단에서 주신 연구비는 망망대해에서 작은 배를 타고, 길 잃고 헤매다 만난 등대만큼이나 소중한 선물이었다. 솔벗 재단에 힘입어 이 책을 출판하기에 이온규 이사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어려운 출판 여건 속인데도 무리한 요구를 받아 주시고 출판을 허락해 주신 지식산업사 김경희 사장님과 보잘것없는 원고를 예쁘고 아담한 모습으로 단장해 주신 김연주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동안 부모님께 많은 걱정을 끼쳐드렸다. 언제나 걱정하고 애를 태우시는 부모님의 간절한 바람이 이 책을 가능하게 하였다. 부모님께 무한히 감사드린다. 오빠네, 언니네 식구들의 격려와 성원도 큰 힘이 되었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사랑하고 감사한 마음과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2020. 8. 15.

이미선 씀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후궁을 통해 조선사회의 질서와 공고한 신분구조를 들여다보다

공사 영역을 넘나들며 파헤친 조선조 왕실문화의 뒤안

왕실에서 주변으로 치부되어 왔던 후궁과 그 제도를 최초로 체계화한 본격 왕실여성사

  

  후궁에 초점을 맞추어 조선 후궁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분석 정리한 솔벗재단(이온규 이사장)의 스물네 번째 총서가 출간된다. 저자 이미선 교수는 조선조 후궁 175명의 역할과 위상을 내명부內命婦제도와 조선왕실의 운영 원리 변천에 맞추어 명쾌하게 규명하고 조선사회의 성격을 조감한다. 후궁에 관한 이 정밀한 저작은 제도, 여성, 왕실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조선사 연구의 진작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비간택 후궁의 전후기 변화

 

  저자는 우선 후궁의 개념을 간택의 유무에 따라 간택 후궁과 비간택 후궁으로 나눈다. 학계에 알려진 간택 후궁-승은 후궁이라는 분류는 승은 이외의 다양한 입궁 경로와 출신 성분을 가진 후궁의 존재 양상을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왕실 혼례로 연구를(조선사회 이렇게 본다) 시작하여 정진해 온 저자이기에 가능한 명확한 개념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 저자는 조선시대를 세 시기로 구분하여 내명부제도와 시대 분위기에 따라 후궁의 위상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다. 전기(태조~성종조) 비간택 후궁에 노비, 과부, 첩녀 등 다양한 출신의 여성들이 포함되었으나 후기(영조~고종조) 이후 정식 절차를 거친 궁인 출신들이 많아졌음을 지적한다. 전기에는 유교의 명분론적 법체제가 미비했으나 중후기로 갈수록 성리학적 신분질서가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계비의 지위에서 후사後嗣 확대로

 

  성리학적 종법 질서와 명분론이 공고화되고 경국대전에 내관제도가 확립된(세종 10) 이후 내명부 법체제가 뿌리내리면서 중기부터 간택 후궁의 위상이 변화된다. 조선 초기에는 문종의 비에서 보이듯 후궁의 지위에서 왕비로 승격되었으나 중종 이후 숙종대부터 간택 후궁에서가 아니라 외부 간택에 의해서 계비繼妃가 선정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왕비 예비자로서 후궁의 역할이 축소되고 후사 생산자로서 의무가 강해지게 되었다. 저자는 연산군~숙종조대 간택 후궁의 가문에서 전기와 다르게 당상관과 공신세력의 비중이 낮아지는 현상을 각각 도표화함으로써 간택 후궁의 지위 변화를 실감나게 보여 준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간택 후궁 가문에서 왕비를 다수 배출한 가문의 성관인 파평 윤씨, 여흥 민씨 등이 보이는 것처럼(-4) 후궁 가문의 가격家格은 높은 편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중종 이후에도 숙의淑儀는 정치적 역학관계에 의해 선발되었다. 조선사회에서 혼인이 강력한 가계집단과 인척관계를 확립하는 중요 수단이었던바, 후궁의 선발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제도사적 측면에서 본 후기 후궁

 

  중종~숙종대 후궁에 대한 승작 범위가 이전에 견주어 확대되고 왕실여성의 후원을 얻거나 국왕 측근 세력에 연계된 출신들이 늘어났다. 따라서 장녹수와 김개시 등이 정치에 깊이 관여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에 따라 조선 후기에는 후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대두되면서 사대부가에서 후궁 간택을 꺼리게 되었다. 게다가 왕비와 후궁들의 출산율이 현격히 떨어지면서 왕실에서는 광계사匡繼嗣라는 당면의 목표를 위하여 후궁의 위상을 파격적으로 높여 주었다. 저자는 왕별 후궁의 지위 변화를 도표화하여 그 사실을 한눈에 보여 준다. 즉 간택 후궁의 초직을 정1품 빈으로 하고, 비간택 후궁의 경우에도 왕자녀를 출생하였을 경우 빈으로 승진이 가능해졌다. 무수리 출신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가 셋째까지 낳으면서 마침내 빈으로 책봉된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현왕의 후궁 지위가 상향되면서 선왕의 후궁을 예우하는 방안이 불가능해지자 사친私親을 추숭하는 궁원제宮園制가 시행되었다. 저자는 내명부가 후궁의 사적 지위를 생전에 공적 지위로 격상시킨 것이라면, 사친 추숭은 후궁 사후에 왕의 사적 영역의 공적 제도화를 이룬 것이라고 지적한다.

 

  2000년대에 들어와 왕실여성에 관한 학술·교양서가 다수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 땀 한 땀 옷을 짓듯 자료들을 하나하나 꿰어 후궁의 각각과 그 전체상까지 조명한 것은 이 책이 유일하다. 특히 이 책은 왕실소조정王室小朝廷의 일원이자 왕실 유지 존속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후궁의 본모습을 제시한다. 후궁의 실체를 밝히는 이 작업은 곧 진정한 조선조 여성사의 개시와 반쪽이었던 왕실사의 온전한 이해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목    차

서문 5

일러두기 16

 

장 서론 17

  1. 연구 목적 및 필요성 _19

  2. 선행 연구 현황 _22

  3. 연구 방법 및 이용 자료 _28

 

장 내명부內命婦 직제의 확립과 후궁 현황 35

  1. 후궁제의 연원과 개념 _37

   1) 후궁의 연원 _37

   2) 후궁 칭호와 용례 _63

   3) 후궁 유형에 따른 용어 검토 _82

   4) 후궁의 범주 _97

  2. 경국대전經國大典내명부 규정의 정립 _112

   1) 1428(세종 10) 내관 제도의 정비 _113

   2) 경국대전의 내명부 규정과 의미 _132

  3. 국왕별 후궁 현황 _141

 

장 태조~성종조 숙의淑儀 간택 관행의 성립과 지위 151

  1. 간택 후궁의 숙의 봉작 관행과 가문 배경 _153

   1) 왕비예비자로서의 숙의 _159

   2) 간택 후궁의 출신가문 및 가격家格 _180

  2. 비간택 후궁의 신분과 내명부직 제수 _200

   1) 입궁과 신분의 다양화 _200

   2) 작위와 승급 부여의 특징 _215

  3. 숙의 간택에 따른 후궁 작위의 봉작 방식 _223

 

장 중종~숙종조 간택 숙의의 위상 변화와 내명부직 상향 제수 229

  1. 중종의 계비 간택과 간택 후궁과의 지위 구분 _231

   1) 중종반정 이후 숙의 간택 _232

   2) 후궁 출신의 계비 선정 _236

   3) 외부 간택에 의한 계비 선정 _239

   4) 외부 간택에 의한 계비 선정의 정례화 _245

  2. 간택 숙의의 입궁 경위와 가문 _255

   1) 계사繼嗣 확대를 위한 숙의 간택의 시행 _255

   2) 숙의 간택자의 가문과 가격 _273

  3. 후궁의 내명부직 상향 승급 _290

   1) 간택 후궁의 1품직 승작 _290

   2) 비간택 후궁의 직위 상향_294

  4. 비간택 후궁 신분의 확대와 정치 관여 _302

   1) 비간택 후궁의 입궁 경로 _302

   2) 비간택 후궁의 정치 참여 _320

  5. 숙종대 후궁의 정비正妃 승격 금지 _343

   1) 희빈 장씨의 왕비 승격 _343

   2) 희빈 사사賜死 후 후궁의 정비 승격 금지 _352

 

장 영조~고종조 빈 간택으로의 전환과 국왕 사친私親의 추숭 361

  1.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한 후궁 간택과 친정 가문 _363

   1) 정조의 원빈元嬪 간택과 홍국영洪國榮 _369

   2) 정조의 화빈和嬪 간택과 윤창윤尹昌胤 _378

   3) 정조의 수빈綏嬪 간택과 박준원朴準源 _382

   4) 헌종의 경빈慶嬪 간택과 김재청金在淸 _389

  2. 궁인 출신 비간택 후궁과 궁인 신분의 규정과 실제 _395

   1) 속대전續大典의 내수사 노비로 한정된 법 제정 _395

   2) 비간택 후궁의 궁인 신분 고정 _399

  3. 내명부직의 상향 제수 경향과 사친 후궁 궁원제宮園制의 시행 _416

   1) 내명부직 상향 제수 양상 _416

   2) 사친 후궁 궁원제의 시행 _435

 

장 결론 455

 

부록

부록 1태조~성종조 후궁 일람표 468

부록 2 태조~성종조 후궁의 가문 477

부록 3 연산군~숙종조 후궁 일람표 489

부록 4연산군~숙종조 후궁의 가문 496

부록 5 영조~순종조 후궁 일람표 506

부록 6 영조~순종조 후궁의 가문 510

 

참고문헌 512

찾아보기 526

 

표 목차

-1 중국 역대 왕조 후궁제 54

-2고려 후비 호칭의 시기별 변화 60

-3의 내관·궁관과 고려의 내직內職 60

-4조선시대 간택 후궁 100

-5 조선시대 비간택 후궁 108

-6입궁 경로가 미확인된 후궁 110

-71397(태조 6)~1428(세종 10) 국왕 내관제도 개정안 128

-81430(세종 12) 동궁 내관제도 개정안 131

-91428(세종 10)~대전회통국왕 내관제도 개정안 134

-101430(세종 12)~대전회통동궁 내관제도 개정안 135

-11 입궁 경로에 따른 조선시대 후궁 현황 143

-1조선 초기 국왕과 왕비의 생몰년 166

-2 후궁 가계의 등제登第와 관품 183

-3태조~성종조 후궁의 성관姓貫 187

-4 태조~성종조 후궁의 가문 189

-5 왕실과 후궁 집안 간의 왕실연혼 현황 196

-6태조~성종조 비간택 후궁의 이력 201

-7비간택 후궁의 봉작과 지위 변화 217

-8 간택 후궁의 봉작과 지위 변화 224

-1조선 중기 국왕과 왕비의 생몰년 245

-2 조선 후기 국왕과 왕비의 생몰년 255

-3 간택 후궁 가계의 등제登第와 관품 274

-4 연산군~숙종조 후궁의 성관姓貫 281

-5연산군~숙종조 후궁의 가문 282

-6왕실과 후궁 집안 간의 왕실연혼 현황 287

-7 간택 후궁의 봉작과 지위 변화 290

-8비간택 후궁의 봉작과 지위 변화 295

-9연산군~숙종조 비간택 후궁의 이력 302

-1영조~순종조 비간택 후궁의 이력 400

-2간택 후궁의 봉작과 지위 변화 421

-3비간택 후궁의 봉작과 지위 변화 424

-4 조선 후기 왕위계승자의 모계와 계승 문제 438

 

도판 목차 

도판 -1 심양고궁 안 청녕궁 51

도판 -2 현덕왕후 추상시호 금보 103

도판 -3대전회통 140

도판 -1 건원릉 154

도판 -2 의정공주 묘역 158

도판 -3상침 송씨의 비문과 무덤 210

도판 -4 신빈 김씨의 묘역과 경모단 222

도판 -1장경왕후 상휘호 금보 238

도판 -2 백자청화 숙의 윤씨 묘지 256

도판 -3백자청화 숙의 정씨 묘지 266

도판 -4 백자청화 귀인 김씨 묘지 317

도판 -5회묘와 가봉태실비 323

도판 -6 성묘와 광해군과 문성군부인 유씨의 무덤 329

도판 -7경운궁의 석어당 334

도판 -8소경원과 영회원 337

도판 -9 장형의 신도비와 무덤 345

도판 -10 최효원의 무덤과 증직 교지 352

도판 -11대빈궁과 대빈묘 358

도판 -1영빈묘와 숙의가례청등록 366

도판 -2구 인명원 터와 원빈 홍씨 무덤 출토 화장품 그릇 374

도판 -3창경궁 집복헌과 휘경원 384

도판 -4 경빈 김씨 간빈책봉교명 392

도판 -5 소훈이씨제문과 수길원 402

도판 -6백자청화 영빈 이씨 묘지와 명기 403

도판 -7귀인 양씨와 덕혜옹주 414

도판 -8 경빈가례시가례청등록동뢰연배설도 422

도판 -9 소훈이씨교지소원이씨교지 426

도판 -10러시아 공사관과 순비책봉의궤 432

도판 -11육상궁 443

도판 -12영빈이씨증시교지의열묘도 445

 

 저  (역)   자   약   력

이미선李美善

 

한신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문학석사)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한신대학교 한국사학과 초빙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한신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의 혼례식 풍경을 담다-譯註 慶嬪嘉禮時嘉禮廳謄錄(2020, 민속원), 숙종대 왕실여성들의 정치적 행보와 역할(조선시대사학보93, 2020), 숙의가례청등록-숙종 후궁 영빈 김씨의 혼례 기록(공역,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5), 조선의 역사를 지켜온 왕실여성(공저, 글항아리, 2014), 조선사회 이렇게 본다(지식산업사, 2010)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