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의 탄생2: 한일 역사가 26인이 말하는 나의 시대, 나의 삶
 
 도서분류 수기
지은이 : 한일역사가회의 한국운영위원회
옮긴이
면 수 : 556
:  \25,000
출간일 : 2021/03/19
판 형 : 신국판
ISBN : 978-89-423-9091-5(0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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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주문권수 입력:
 책 의   줄 거 리 ( 머 리 말 )

  1995, 96년 두 차례의 한일 양국 정상회담은 두 나라의 역사 인식의 갈등을 해소해 나가기 위해 민간 역사 연구회의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19977월 한·일 역사연구 촉진 공동위원회가 발족하여 2년 동안 협의 끝에 두 나라의 전문 역사 연구자들의 교류 장치를 발족시키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두 나라 역사학자들은 국제역사학위원회(Comité International des Sciences Historique:CISH)의 한, 일 각각의 국내위원회가 한일역사가회의(Korea-Japan Conference of Historians)’를 운영하기로 하였다. 이런 경위로 2001년에 제1회 회의를 개최한 이래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일본으로 장소를 번갈아 가면서 202012월 현재 제20회를 맞았다. , 일 사이의 민간 학술 모임으로 이만큼 장수한 예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한일역사가회의는 두 나라 역사 충돌의 현안이 아니라 역사학 전반에서 주요한 연구 주제를 선정하여 해당 전공자를 발표자 또는 토론자로 초청하여 서로의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는 기회로 삼았다. 두 나라의 역사학자들이 서로를 아는 것이 곧 양국의 역사 인식 충돌을 해소해 나가는 첫걸음이리라는 기대를 건 모임이었다. 이런 취지를 더 잘 이끌기 위해 양국 공동 운영위원회는 2002년부터 전야제로 역사가의 탄생프로그램을 가지기로 하였다. 두 나라의 대표적인 역사가를 선정하여 서로 역사학자로서 걸어온 길과 생각을 털어놓아 상호 이해를 배가하는 기회로 삼았다.

  21세기 벽두에 시작된 한, 일 두 나라 역사학자의 만남은 그 자체가 역사적인 일이었다. 두 나라가 근대국가를 출범한 초기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하는 관계가 펼쳐져 역사학자 사이의 만남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한국이 일본의 강제 병합 통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 국가로 재기한 뒤에도 두 나라 사이에는 지난 역사에 대한 현격한 인식 차이로 교류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에도 역사 인식의 충돌은 여전하여 역사학자들의 순수한 학술 모임은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한일역사가회의가 출범하여 20년 동안 순항한 것은 그 자체로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전야제 역사가의 탄생의 무대는 서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이해를 넓혀 나가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한일역사가회의의 양국 운영위원회는 2007년에 6년 동안의 역사가의 탄생발표문을 한자리에 모아 출판에 붙이기로 하였다. 그동안의 발표자 13인의 글을 모아 두 나라 역사학계가 공유하는 기회로 삼기로 한 것이다. 한국어본은 약속대로 서울 지식산업사가 출판하기에 이르렀지만, 일본어본은 끝내 출간을 보지 못하였다. 이 책이 나온 뒤, 2008년부터 2020년까지도 매년 빠짐없이 서울과 동경을 오가면서 전야제로서 역사가의 탄생이 열리고 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역사가 회의가 열렸다. 그 사이에 양국 운영위원회 구성에 다소의 변화가 있었지만, 체제나 취지에는 변함이 없었다. 2013년부터 한국 측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태진은 창립 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6년의 위원장 임기를 마치면서 한국어본 역사가의 탄생의 후편을 출간하여 맡은 바 책무를 다하는 정성의 일단을 표하기로 하였다.

 ‘한일역사가회의는 한·일 사이의 역사문제를 직접 다루는 다른 여러 위원회가 대부분 5년을 넘기지 못한 것과 달리 장수하였다. 두 나라의 문제를 동아시아사의 차원에서 조명하거나 세계사적으로 역사학 일반의 주요 주제를 다룬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이 회의를 거쳐 간 두 나라의 역사학자는 거의 350명에 달하였다(발표자 140, 토론자 120, 사회 50명 등). 참가한 학자들이 가진 소감은 서로 달라 한마디로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서로를 아는 기회가 되었던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010년 한국병합 100주년을 맞아 ·일 양국 지식인 공동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성명서는 한국 학계가 밝힌 병합의 불법성을 일본 측이 인정하고 이를 따라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두 나라의 서명 참가자는 한국 610, 일본 540명이었다. 일본제국의 한국병합이 불법이라는 표현이 엄연하게 들어간 성명서에 일본 측 서명자가 540명이나 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 회의가 출범하기 전까지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의 대다수는 도덕적으로 책임이 있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이른바 부당 합법론에 서 있었다. ‘불법 부당론을 주장하는 지식인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 숫자가 이렇게 크게 바뀐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540명 가운데 역사학 전공자가 무려 230명에 달하였다. 이 성명서가 나오기 전 열린 한일역사가회의9회였고, 이에 참여한 발표자, 토론자, 사회자 등은 도합 159명이었다. 이 회의가 그 성명서를 주도한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일본 측 서명자의 수를 크게 늘이는 배경적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지식인 성명서 발표를 주도한 한국 측의 김영호 교수, 일본 측의 와다 하루키 교수 두 분은 2014, 2007년에 각각 역사가의 탄생에 초대되어 훌륭한 발표를 해 주었다.

  한·일 두 나라의 특별한 역사 인식의 충돌을 해소해 나가는 데는 학자들의 이성적인 판단, 노력이 앞서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 쌓은 노력에 대한 당국의 지속적인 지원이 요망된다. 20201211~12일에 열린 제20회는 코로나 19’ 사태로 양측이 직접 만나지 못하고 영상으로 회의를 열게 되었다. 이런 비상적인 사태라도 이 회의의 취지와 연륜을 가로막지 못하였다. 20년의 실적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5년에 작성했던 한일역사가회의 요람2020년까지로 증보하여 자료 한일역사가회의 2001~2020으로 이름을 고치고 이 책의 부록으로 붙여 새로운 도약의 자료로 삼고자 한다.

한일역사가회의한국 측 운영위원회는 초대 위원장 차하순 선생을 비롯해 여러분이 수고하였다. 국제역사학 한국위원회의 모태 역할도 컸다. 2013년부터 운영위원회를 함께한 김영한, 배경한 두 교수, 오정섭 간사의 노고와 협력을 기억한다. 무엇보다도 한일역사가회의를 20년 동안 지원한 한국의 동북아역사재단, 일본의 일한문화교류기금의 지원에 크게 감사를 표하여야 하겠다. 일한문화교류기금은 일본 정부 외무성으로부터 역사가회의 실행 기구의 임무를 부여받아 이번 출판에도 일본 측 발표자들에 관한 제반 연락을 기꺼이 응해 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표한다. 2007년의 역사가의 탄생에 이어 이번 후속판 출판을 기꺼이 맡아 준 지식산업사 김경희 사장, 김연주 편집장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202131

한일역사가회의 한국 운영위원회

위원장 이태진

 

 서 평 / 저 자(편 집 부)로부터의 글

역사가들의 회고이자 시대적 소명의 응답

고대사부터 국제관계사까지 일한 학자들이 터놓는 사색의 조각들로 근현대를 되돌아보다

교류로 맺어진 우호 속 다양한 탐구와 공감이 주는 희열

 

  한일 두 나라 역사가들의 자전적自傳的 고백의 장이 한자리에 펼쳐진다. 20년 동안 활동해 온 한·일역사가회의의 전야제인 이 무대는 위원장 이하 한국 운영위원회의 숨은 노고로 그 피날레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전작 역사가의 탄생1(2008)1945년 전 학문에 입문한 역사가들의 여정이 담겨 있다면, 이번에는 그 이후 세대인 한일 역사가들의 인생 이야기와 학문적 모색이 그려진다.

 

두 세대의 교차와 계승

 

  이 책의 연사들(필진)은 해방 후 제1세대 연구자들의 가르침을 물려받은 제자들이다. 이들은 한우근, 천관우, 이기백, 김준엽, 조기준, 김용섭, 고병익, 김상기, 김원룡, 김철준, 이병도 등 스승들의 학은을 입어 어떻게 학문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는지를 밝힌다. 안휘준 교수, 민현구 교수의 글에는 스승들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잘 표현되어 있다. 권위주의 권력이 자유로운 학문 연구를 억압하던 시절 치열하게 고민하며 연구에 매진하는 한편, 한 인간으로서 삶의 여정도 되돌아본다.

  

문제의식과 방법론

 

  사학도들이 학문 세계에 첫발을 내딛을 즈음인 1960년대 초반은 정체성론과 유교망국론 등 식민주의사관이 학계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때였다. 따라서 이들은 해방 이후 척박한 풍토에서 근대 학문으로서 사학을 수립해야 하는 임무를 떠안고 있었다. 한국근대경제학에 내재한 식민사학의 전통을 민족사학으로 극복하려 한 김영호 교수의 초기 연구가 그러하다. 또한 이 시기에는 유럽 중심적인 마르크스의 유물사관, 동양사회 정체론이 아시아 역사 연구의 주된 논리로 인정되고 있었다. 이에 사가들은 그 이론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연구에 뛰어들거나(한영우 교수, 고타니 히로유키 교수), 인도사회의 정체론에 정면으로 도전했다(카라시마 노보루 교수). 그런가 하면 사료 활용과 의미 및 가치에 주목한 노명호 교수와 민현구 교수, 김태영 교수, 이시가미 에이이치 교수의 방법론은 사학에 입문하는 이들에게 역사학의 본령을 되짚어 준다.

 

교류와 모색의 장

 

  사학자들은 전인미답의 주제·사료를 발굴하거나 독창적인 이론 모델을 세워 새로운 연구의 물꼬를 틀기도 한다. 한국회화사를 개척해 나간 안휘준 교수, 서명 위조 등 외교문서로 한국병합을 파헤친 이태진 교수, 신사료로 베트남문화의 고유성을 밝힌 유인선 교수가 전자라면, 동아시아 지역질서 원리인 조공시스템론을 설정한 하마시타 타케시 교수나 동아시아 법문명권을 제기한 후카야 카쓰미 교수 등은 후자이다. 탈근대 사학으로서 생활사, 사회문화사 연구 경향도 여러 글과 연구서들을 참고할 수 있다(주명철 교수, 츠노야마 사가에 교수, 오카도 마사카쓰 교수).

 

  “역사는 국제관계사적 관점, 세계사적 구조 속에서 보아야 한다는 김용덕 교수, 최문형 교수의 말과 세계화시대 국경을 초월한 공감권을 동아시아에서 만들자는 유이 다이자부로 교수의 주장처럼, 역사학의 미래는 소통과 공감, 교류에 달려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일 역사가들의 우정 어린 만남은 뜻깊다. 특히 동아시아 차원의 거시적 안목을 보여 주는 일본 역사가들의 시도는 새로운 역사가 탄생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새 씨앗의 성장이야말로 곧 두 나라 정부의 협의로 만들어진 한·일역사가회의의 열매이자 도약이 아닐까.

 

 목    차

서언   _4

 

제1부 한국 역사가편

  ● 안휘준, 〈미개척분야와의 씨름―나의 한국회화사 연구―〉   _13​

  ●​ 이성무, 〈양반 따라 40년〉   _33

  ●​ 최문형, 〈역사 인식의 공유를 위하여〉   _51

  ●​ 윤병석, 〈한국 역사학계 주변에서〉   _63

  ●​ 한영우, 〈내가 걸어온 역사학의 길〉   _79

  ●​ 민현구, 〈한국사학의 성장과 고민을 지켜보면서〉   _101

  ●​ 유인선, 〈나의 베트남 역사 연구 여정〉   _121

  ●​ 김태영, 〈나의 한국사 연구 여정〉   _139

  ●​ 김영호, 〈비교경제사에서 비교일반사로〉   _159

  ●​ 이태진, 〈식민주의 역사관, 그 통설 통론에 대한 도전〉   _177

  ●​ 김용덕, 〈한 역사학 연구자의 자술自述―객관성과 보편성의 추구―〉   _209

  ●​ 주명철,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_223

  ●​ 노명호, 〈고려사의 ‘술이부작述而不作’과 ‘직서直書’의 실상을 찾아 떠난 길〉   _247

 

제2부 일본 역사가편

 

  ●​ 카라시마 노보루, 〈‘아시아란 무엇인가’를 찾아서〉   _269

  ●​ 츠노야마 사가에, 〈《차茶의 세계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_285

  ●​ 후카야 카쓰미, 〈일본은 어떻게 아시아인가라는 화두〉   _297

  ●​ 고타니 히로유키, 〈토지제도사에서 지역사회론으로―인도사 연구의 새로운 방법을 찾아서                          ―〉   _313

  ●​ 아라이 신이치, 〈근대역사학의 형성과 식민주의colonialism〉   _325

  ●​ 하마시타 타케시, 〈조공시스템론으로 보는 동아시아〉   _343

  ●​ 후루타 모토오, 〈나의 베트남 현대사 연구〉   _363

  ●​ 이시이 간지, 〈근대 일본 경제사에서 전체사로〉   _377

  ●​ 다시로 가즈이, 〈나의 근세 조일무역사 연구〉   _391

  ●​ 이시가미 에이이치, 〈사료 편찬자史料編纂者로서의 행보〉   _407

  ●​ 기바타 요이치, 〈국제관계사·제국사 연구의 길〉   _437

  ●​ 유이 다이자부로, 〈탈근대의 역사 인식과 역사교육을 추구하며〉   _451

  ●​ 오카도 마사카쓰, 〈일본 근현대사 연구를 반추·갱신하려는 시도―1990년대 이후 역사 연구                         에 대한 방법론을 둘러싸고―〉   _467

 

부록 : 자료 한·일역사가회의 2001~2020   _481​ 

 저  (역)   자   약   력

한국 필진

 

  안휘준安輝濬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

  故 이성무李成茂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최문형崔文衡 한양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故 윤병석尹炳奭 전 인하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한영우韓永愚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

  민현구閔賢九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명예교수

  유인선劉仁善 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

  김태영金泰永 경희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김영호金泳鎬 경북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이태진李泰鎭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

  김용덕金容德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명예교수

  주명철朱明哲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노명호盧明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

 

일본 필진

 

  故 카라시마 노보루辛島昇 전 도쿄대·다이쇼대학 명예교수

  故 츠노야마 사가에角山榮 전 와카야마대학 명예교수

  후카야 카쓰미深谷克己 와세다대학 명예교수

  고타니 히로유키小谷汪之 도쿄도립대학 명예교수

  故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 전 이바라키대학 명예교수

  하마시타 타케시濱下武志 도쿄대학 명예교수

  후루타 모토오古田元夫 도쿄대학 명예교수

  이시이 간지石井寬治 도쿄대학 명예교수

  다시로 가즈이田代和生 게이오기주쿠대학 명예교수

  이시가미 에이이치石上英一 도쿄대학 명예교수

  기바타 요이치木畑洋一 도쿄대·세이조대학 명예교수

  유이 다이자부로油井大三郞 도쿄대·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

  오카도 마사카쓰大門正克 와세다대학 교육학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