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자연과학용어를 우리말로?
글번호 59
기사분류 스포츠투데이
게재날자 2000/10/08
조회수 5602


속성상 영어 등 외국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관행인 자연과학.그러나 과학 전문용어
도 얼마든지 순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

단기 4281년(서기 1948년) 한글날을 앞두고 간행된 한·일·영,일·한 ‘새 사리갈말
말광’(생물학술용어사전)이 발견됐다. 엮은이는 당시 서울사범대학 이기인 교수. 6·
25가 터진 1950년 납북돼 김일성대학 교수로 재직한 것으로 알려진 농학자 겸 생물학
자다. 생존해 있다면 94세.

이 사전은 학생 신분으로 편찬을 도운 이교수의 처남인 전 서울대 교수 신광순 박사
(67·식품의약품안전청 기술자문관)가 공개했다.

사전은 우리말의 보고다. 양막은 애기보,식물은 묻사리,동물은 옮사리, 청신경은 듣느
끼,마취제는 얼떨약,보호색은 강굼빛,단백질은 흰재탕,저온은 얕따수,분만은 애내,음
문은 암부끄리,난소호르몬은 알집속진,밀도는 빽빽가리,전자는 번개티,색소는 빛감,과
학자는 보배선비,촉수는 닿치개….

이교수는 특히 ‘모아된 말’(합성어) 한글화에 주력했다. “딴 나라 말로 얽어 만들
어진 말이면 제 나랏말을 배우는 사람이 제 나랏글보다 먼저 딴 나랏글을 배워야 하므
로 이런 말은 특수사회의 전용이 되거나 일반 나랏사람이 배우고 쓰기에 큰 곤란과 고
통을 주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신박사는 “자연과학자 이교수는 어문학에도 연구가 깊어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 등과
함께 에스페란토어학회를 결성하기도 했다”면서 “북한의 어문이 우리나라 한글보다
순수성을 더 인정받고 있는 데는 피랍된 이교수의 공이 큰 듯하다”고 밝혔다.

이교수의 부인 신좌경 여사(86)와 서울공대-미국 MIT공대 졸업 후 미국에서 환경공학
기업 ASPEN을 경영 중인 장남 이강필 박사(56) 등 2남4녀는 연좌제로 큰 고통을 겪었
다.

50여년 전 이교수는 ‘새 사리갈말 말광’을 통해 “한문글자나 일본말을 가지고 우리
말 우리글을 누르려는 것은 딴나라 사람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 중에 그것을 배워 쓰
던 사람들인 것이니 시대를 모르고 저들만 편하기 위하여 저도 모르는 동안에 우리를
누르고 잡아먹으려던 나라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임자 있는 딴 나라의 글과 말은 독하고 무서운 것이다. 딴 나라의 글과 말을 제
나라의 글과 말이 꽤 터가 잡힌 다음이면 어느 만큼 이용은 할지언정 제 나라의 말과
글을 배우는 데 먼저 딴 나라의 그것을 배워야 되게 하여 제 나라의 민주문화를 일으
키는 데 큰 걸림돌이 되게 하는 것은 안될 말이다.

제 나라의 말과 글을 붙들고 살리려는 것은 그 겨레가 살아보자는 첫 걸음이며 가장
거룩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말과 글이 없어진 겨레는 사람의 넋까지 흩어져 망하고
마는 까닭이다”고 설파했다.

이후 50여년이 흐른 현 시점,그의 지적은 아직도 유효한 상황이기도 하다.

오늘은 554돌 한글날이다.

/ 신동립 estmon@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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