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우리말 독립군 의병장 두 분을 기리는 잔치에 다녀오다
글번호 83
기사분류 우리모임
게재날자 2008/01/03
조회수 2228
김경희 (우리 모임 공동 대표)

큰 스승 이오덕님은 “오늘날 우리말을 살리는 운동은 겨레독립운동”이라고 일찍이 말했다. 그런 뜻에서 우리말 지킴이들은
모두 독립군이요,지난 시월 십삼일 전북 부안에서 칠순 잔치상을 받은 김명수님과, 같은 달 이십칠일 ‘가림다 한글’ 을 연 김명식님은 두 분 다 ‘우리말 독립군 의병장’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샘물 김명수님 잔치에는 박용수님과 함께 떠났다. 예정보다 출발이 좀 늦은데다가, 고속버스 안에서 필담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부안에 이르러서도 식장을 찾아 헤매는 바람에, 우리만 예정보다 늦어 본 행사는 이미 끝이 나고 사진을 찍을 무렵에야
당도했다. 이 날 잔치는 고희연만이 아니라 김명수님의 어머님 백수(아흔아홉 살 생일) 잔치를 아울러 하는 겹 잔치여서 더욱 풍성했다. 아마도 5백 사람이 훨씬 넘는

손님들이 그 고장은 물론 서울을 포함, 각처에서 모인 것 같았는데, 노명환님이 순천에서 둘도 없는 친구 잔치여서 하루 전에
올라왔었노라면서 주인공 못지않게 우리를 반겨 주었다.

자주는 못 만나지만, 샘물 김명수님은 동갑이자 생일이 몇 달 이른 나에게 ‘성놈’이라 부르며 서로 흉허물 없이 전화로 안부를
묻곤 하는 처지인데, 중국에 가 있는 이대로님의 간곡한 부탁도 있을 뿐더러 고희 기념 글모음에 글 부탁을 받고 여러 차례
독촉에도 끝내 쓰지 못해 미안한 터라, 잔칫날을 기리는 마당에 얼굴이라도 내밀었던 것이다.

그 글모음 《마르지 않는 샘물, 김명수를 말한다》에는 주인공이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고 꿈을 키우며 뜻을 펼쳐 왔는지를 오롯이 알 수
있는 주옥같은 글들 130여 편이 실려 사진들과 함께 잘 엮어져 있었다. 샘물은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지금까지 훌륭하신
어머님 장귀녀 여사의 사랑과 현명한 부인 강정순 권사의 헌신이 있었기에, 흥사단 지역 책임을 맡는 등 농촌 계몽과 고장의 발전에, 우체국장으로
또는 지방의회의 수장 등으로 온 정력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이요, 남다른 고장 사랑이 우리말 지킴이로 나서게 했을 것이다. 또한 그 연장선
위에 함석헌 선생이 이름 지은‘태극체’라는 독창적 붓글씨로 온 세계에 한글 자랑과 하느님(할렐루야) 선교에 나서게 되었을 것이다.

다사함 김명식님은 만나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솔직히 말해서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분이었다. 우리 모임의 간사로 글자 그대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유선희님이 “강원도 화천에서 이러저러한 모임이 있는데, 우리 모임에서 가실만한 분이 없어서 아쉽다”는
말을 아주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김수업님은 크고 작은 일에 물불 안 가리는데다가 《우리말 우리얼》 잡지 펴내는 데 너무 애쓰며 마침 미리 매인 일이 있어,
유간사는 “혼자라도 다녀오겠노라”고 했다. 이럴 때 이대로님이 우리 곁에 있었던들 그이가 나섰을 텐데 하다가 생각해보니,마침
토요일이고 가는 차편이 마련되었다기에 김수업님이나 이대로님 대신 나라도 가보자 해서, 유선생과 함께 구로동에서 일행과 만나
나로선 처음인 강원도 화천으로 길을 떠났던 것이다. 전방 지역을 구불구불 지나가는 3ㆍ8선 이북 화천군 상서면 노동1리 선이골 안흙이라는 곳은 참으로 후미진 곳이어서 물어물어 찾아 갔다.

가보니 마을 어귀에 ‘가림다 한글’이라고 새겨진 큰 돌을 세우고, 그 군의 행정 책임자와 의회 간부들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우리말 우리글을 지키고 가꾸는 작지만 큰 터전(토박이 말 연구소)을 여는 잔치를 시작한 참이었다.

다사함 김명식님은 해방되기 한해 전 제주에서 태어나 시인으로, 학술연구와 사회활동을 하다가 1998년 봄부터 뜻을 같이하는
부인(몇 해 전에 작고)과 3남매를 이곳으로 옮겨 가족들의 힘만으로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면서 지역 주민들과 어울려 우리말
지킴이로 앞장서 왔는데, 그 일로 해서 이번에 그 곳이 ‘강원도에서 가장 훌륭한 고장’으로 뽑혀 이런 잔치를 벌이게 되었던
것이다. 멀리 그의 고향 제주와 충주ㆍ괴산ㆍ서울 등에서 하객들이 모여들었고 전주에서는 버스 한 대에 여러 사람의 국악인들이
타고 와서 축하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 두 차례의 뜻 깊은 잔치마당의 주인공들은 각기 7~80년대 민주화 투쟁에서 핍박을 당하고 옥고를 치른 이들이라서, 그이들의
높은 의기가 더 빛나 보였다. 앞으로 70 고개를 넘은 김명수님과 60대 중반에 들어선 김명식님 두 의병장이 더욱 건강을 누리면서, 우리말 독립군 진영이
더 알차고 보람찬 행진을 이어가도록 계속 앞장 서 주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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