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내용

▣ 기사제목	중세 알면 계문학사 바로 보인다
▣ 글번호	12
▣ 기사분류	한겨레신문
▣ 게재날자	1999.05.16
▣ 조회수	1831
주체적인 시각에서 세계문학사를 다시 쓰고자 모색하고 있는 조동일 교수(60·서울대 국문과)가 `중세문학의 재인식" 삼부작을 내놓았다. 지식산업사에서 나온 <하나이면서 여럿인 동아시아문학> <공동문어문학과 민족어문학 > <문명권의 동질성과 이질성>은 90년대 중반 이후 조 교수가 몰두하고 있는 세계문학 사 구상의 허리 부분에 해당한다. 그는 내년부터 2002년까지 <세계의 철학사와 문학사>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 <세계문 학사의 전개>를 한 해 한 권씩 펴내 이 연속 기획에 일단 마침표를 찍겠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세계문학사의 허실>(1996)과 <인문학문의 사명>(1997) 등의 작업을 통해 주체적인 세계문학사 집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스스로 그 의욕을 밝혀왔다. 96년도 저서에서 그는 8개 언어로 이루어진 38종의 세계문학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그 결과는 근대문명의 발상지인 서유럽에서 나온 세계문학사가 보편성을 결여하고 서 유럽중심주의나 민족중심주의적 시각에 갇혀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 삼부작은 새로운 세계문학사의 모범이 중세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중세에는 어느 문명권도 세계를 제패하지 않고 다른 여러 문명권과 대등한 관계를 가졌”다. 중세는 고대의 극복이며 그 중세의 극복이 근대였다. 근대는 고대의 부정의 부정이었 던 셈이다. 따라서 근대의 극복이란 근대의 부정의 부정으로서 중세에서 그 근거를 찾 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중세의 가장 큰 가치인 보편주의를 근대가 유린하고 민족주의로 대치한 것은 지나쳐 서 잘못되었다.” 중세에 대한 그의 집착은 문명권이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문명권의 범위와 특성은 중세시기에 결정되었다. ” 서유럽의 라틴어문명권, 서아시아 및 북·동아프리카의 아랍어문명권, 남·동아시 아의 산스크리트문명권, 동아시아의 한문문명권이 수립된 것이 이 시기였다. 중세를 중시하는 조 교수는 민족문학사와 세계문학사 사이에 문명권문학사라는 중간 단위를 설정한다. 문명권문학사란 사실 그가 구상하는 세계문학사의 핵심 범주라 할 수 있다. “공동문어를 사용하는 문명권문학은 성립된 시기가 비슷하고, 기본성격이 일치하며, 민족어문학과의 관계가 또한 서로 같아서, 세계문학이 하나임을 입증해준 다. ” 우리의 경우 한문이 중국, 일본, 베트남 등과 함께 사용한 공동문어였는데, 조 교 수에 따르면 한문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중세문학은 문명권 전체의 공동문어문학이 민족어문학과 공존한 이중구조의 문학이 다.” 보편과 특수, 제국과 민족이 갈등하면서도 공존한 중세의 특성이야말로 문학사 의 장관이었다. 생성이 극복이고 극복이 생성이라는 모순적 원리로서 생극론(生克論)이 중요해지는 것 이 이 지점에서다. 하나가 여럿이고 여럿이 하나이며, 선진이 후진이고 후진이 선진이 다. 고대의 순환론과 근대적 발전론이 결합할 수 있는 것도 생극의 원리 때문이다. 조 교수는 동아시아의 건국신화와 불경에서부터 힌두교의 성자전과 아프리카 민족어문 학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적으로 대단히 넓은 범위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자신 의 가설을 입증하려 애쓴다. 그런 불굴의 노력을 가능케 하는 것이 약소민족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아픔과 거기서 비롯된 역설적인 사명감이라는 사실은 감동적이다. 한편, 지난 23일 저녁 서울 사간동 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는 이번 삼부작 출간과 함 께 조 교수의 회갑을 축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