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내용

▣ 기사제목	서양근대주의 극복 문명 새원리 찾기
▣ 글번호	15
▣ 기사분류	문화일보
▣ 게재날자	1999.05.16
▣ 조회수	2594
서양근대주의 극복 문명 새원리 찾기 중세문학의 재인식 /조동일지음/지식산업사 조동일(61)교수는 더이상 국문학자가 아니다. 그가 ‘중세 문학의 재인식’시리즈로 내놓은 새 저술 3권은 통상적인 의미의 국문학 연구서 차원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 다. 대학 학제상 서울대 국문학과 소속인 것이 분명하고,그가 국문학사의 핵심저술인 ‘한국문학통사’(전6권)를 펴낸 중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6∼7년전 ‘우리 학문의 길’과 ‘동아시아문학사 비교론’을 펴낸 이후 그는 ‘문·사·철 (文·史·哲)을 포용하는 종합학문 연구자’의 면모를 보여왔다. 분과학문의 벽에 철 저하게 가린 학계가 그를 경이원지(敬而遠之)하는 분위기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사 실 최근년간 국문학계는 그의 신간에 대해 서평·비평등 형식의 학문적 응답을 채 못 하고 있다. 그러나 신간 3권은 지향점이나 스케일 측면에서 학계에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 운 대작이다. 특히 이번 신간은 조동일 종합학문이 한걸음 더 내디뎌 ‘문학을 포함 한 문명론’으로 줄달음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루는 시기는 중세(中世). 한국 문학 이 포함된 동아시아의 한문 문명권은 물론이고 당시의 세계문명권 전부를 포괄한다. 남아시아의 산스크리트어 문명권,서유럽의 라틴어 문명권,북동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아랍어 문명권. 각권의 제목 역시 전대미문의 작업규모를 드러낸다. ‘하나이면서 여 럿인 동아시아 문학’ ‘공동문어 문학과 민족어 문학’ ‘문명권의 동질성과 이질 성’. 따라서 저자의 저술행위는 건축으로 치면 소목수(小木手) 아닌 대목수(大木手)의 일이 다. 아니 새로운 원리로 도시와 문명을 설계한다는 의미를 높이사 ‘학문의 디자이 너’라고 해야 한다. 목표는 ‘균형잡힌 세계문학사 서술의 기본원리’. 신간 3권은 중세시기를 중심으로 한 세계문학사의 설계도에 해당한다. 그가 말하는 균 형이란 패권주의 내지 대국주의 이데올로기로 색칠된 지금까지의 서유럽 근대학문사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말한다(박스기사 참조). 그런 의미에서 ‘중세문학의 재인 식’시리즈의 문제제기 방식은 이마누엘 월러스틴의 Unthinking이라는 용어를 연상시 킨다. 기존 학문행위 내지 학문게임의 룰에 대한 전면적 부정 혹은 총체적 반성이란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즉 서술의 양이나 역사의 주체를 철저하게 서유럽 우선의 자국 중심주의로 편중시키 고 나머지 문명권은 주변부의 들러리로 세우는 기존의 문학사에 대해 저자는 ‘시효만 기’를 선언한다. 그렇다면 그의 의도란 서유럽 대신 아시아중심주의로 대체하자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 이다. 그런 협애한 애국주의는 안중에 없다. 저술에는 각 국가별 민족문학의 독자성이 나 우월성을 평가하는 대목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요소들은 보편성의 지평속 에서 철저하게 배제된다. 즉 역사학과 민족문학이 국가 이데올로기를 부추겨온 지금까지의 과정에 대한 비판저 술의 기본방향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의 독자적인 문명관이 나오고,서유럽의 핵 심 저술가들과 선명한 입장 차이를 보인다. ‘문명의 충돌’의 저자 새뮤얼 헌팅 턴,‘역사의 종언’의 프랜시스 후쿠야마,‘세계체제론’의 이매누엘 월러스틴과 정면 에서 부닥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월러스틴의 경우 자본주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근대적 세계체제가 이룩됐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완전히 뒤집는다. 중세 시기에 서유럽,동아시아 등 4개의 공동 언어권별 로 이미 상호공존의 세계체제가 이룩됐다고 본다. 그것의 공존 양상과 주고받음의 구체적인 모습 규명이 바로 이번 신간 3권의 내용이 다. 따라서 ‘근대 이후 새로운 역사 전개란 없다’는 후쿠야마식의 ‘오만한 허무주 의’도 비판된다. 문명권 사이의 패싸움 전개를 예견한 헌팅턴도 마찬가지다. 과연 이번 저술에서 보여 주는 저자의 시선은 넓고 크다. ‘중세적 보편주의를 계승한 진정한 역사전개와 문학 을 통해 서양근대를 넘어서자’는 문명비판적 메시지까지 담겨있기 때문이다. <조우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