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선생님, 선생님, 이오덕 선생님
글번호 42
기사분류 우리말, 우리얼 39호
게재날자 2003.11.27
조회수 2896
선생님이 우리 곁을 훌쩍 떠나신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문득문득 선
생님 생각이 나면서 한편으로는 긴 산자락이 무너져버린 듯한 허전함은 저만이 갖는
느낌일까요.
지난 일요일(9월 28일)에도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운영위원들이 대전에서 모였는
데, 오늘 저녁(10월 2일)에는 어린이문학협의회의 제2회 창작학교 수료식 모임이 있
습니다. 아마 그동안 한국글쓰기회 모임도 있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씨앗을 뿌리거나 심어놓은 논밭에서는 여러 싹과 푸나무들이 한창 무럭무
럭 자라고 숲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그토록 걱정하시고, 안타까
워하시던 우리 어린이들의 삶과 겨레의 말글살이는 갈수록 어려움을 벗어나기 어려울
듯합니다.
지난 한 달 동안에 알려진 안 좋은 소식만 한두 가지 들어보면, 일부 철없는 젊은 어
머니들이 새로 태어날 자식의 국적을 미국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수천만 원을 들여 미
국에 가서 출산하다가, 그 나라 관헌에게 붙들린 사건이 알려졌으며, 어느 종교에서
는 ‘학교에서 단군을 우리 겨레 시조로 가르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내용의 책
을 만들어 뿌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나라 안팎에서 세상 돌아가는 것이 어지럽고, 젊은이들이 직장을 찾지 못해 이
땅에서는 살아갈 희망이 없어 외국으로 이민 가겠다고 줄을 서고 있다 합니다. 이 마
당에 어떤 부류의 학자들은 이제 민족을 버려야 한다며 국사주의 교육을 해서는 안 된
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99년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어느 운영위원회에서 선생님께서 “우리말 살리
는 운동은 이시기 우리겨레의 독립운동이다”고 힘주어 말씀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
니다. 그리고 그 무렵 저에게 “김 사장, 우리말 살리는 모임 시작만 해놓으면 잘 끌
고 가겠다고 해놓고,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요?”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때도 건강
이 안 좋으실 때인데, 반년 동안이나 조르다 시피 하여 선생님께서 우리말 살리는 겨
레모임 꾸리기에 떨쳐나서셨지요.
시작한 지 내년 봄이면 만 여섯 해가 됩니다만, 이대로 공동대표를 비롯한 마산․창
원․진주․부산․대전 지역들의 여러 분들이 힘을 모으자고 굳게 다짐하고 있습니
다. 그리고 차츰 우리와 같은 뜻을 지닌 고마운 이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어린이문
학협의회도 어려움을 이겨내며 씩씩하게 나아가고 있으며,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잘하
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글쓰기회도 슬기롭게 가닥을 추려갈 것으로 믿습니다.
선생님이 아끼고 존경하고 사랑하셨던 권정생 선생님하고는 전화로라도 자주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뵌 지가 채 스무 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선생님은 저에게 참으로 소중한 것
들을 가르쳐 주셨고, 많은 훌륭한 이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러함에도 선
생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라하지 못했음을 못내 부끄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뒤늦게라도 선생님의 뜻을 이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시기 독
립군 전사’의 한 사람으로 동지들과 어깨동무하면서 말입니다.
선생님의 그 많은 구상, 꼭 선생님이 이룩했어야만 할 일들은 아쉽지만 이제 저희들
후학들에게 맡기시고 편히 쉬소서.
2003년 10월 초이튿날
김경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