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문 서 평 내 용 보 기

도서명 해방정국의 풍경
서평제목 모든 학문은 인문학으로 이어진다...한 서린 공부로 저술 번역 지속
신문사 교수신문
게재일자 2022/04/15
관련기사 링크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87202
인터뷰_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교수 퇴임 후 동서양 최고 영웅 고전 번역해낸 학술 활동
가난과 트라우마 극복하기 위해 평생 손에 책 들고 공부



“교수는 학과에 관계없이 인문학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갖춰야 한다.” 지난달 1일, 자택에서 만난 신복룡 건국대 명예교수(한국정치사상)는 이같이 말했다. 신 명예교수는 “모든 학문은 결국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석좌교수를 역임한 그는 교수 퇴임 후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인터뷰 당일도 빼곡히 적힌 메모장과 원서들을 보여줬다. 학자의 길이란 쉼이 없는 것일까.

신복룡 건국대 명예교수(80세)는 건국대에서 「동학사상(東學思想)과 한국 민족주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교수, 건국대 중앙도서관장·대학원장,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 『한국분단사 연구: 1943∼1953』(한울, 2001, 한국정치학회 저술상 수상),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선인, 2006), 『한국정치사상사』(지식산업사, 2011, 한국정치학회 인재 윤천주 상 수상), 『해방정국의 풍경』(지식산업사, 2017), 『전봉준평전』(들녁, 2019) 등이 있다. 사진=김재호
신 교수는 지난 1월 『잘못 배운 한국사』(집문당) 개정증보판 4판을 출간했다. 20여 년 전 『한국사 새로 보기』라는 책이 새 옷을 입은 셈이다. 그는 강단사학, 관찬(官纂) 사학, 문중·종교 사학을 비판하는 관점에서 이 책을 썼다. 책의 표지에는 “나의 글은 우상 파괴의 글이다”라고 박혀 있다. 또한 신 교수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유문화사), 『삼국지』(집문당)를 지난해 잇따라 번역하는 등 왕성한 학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영화 「서편제」의 송이 아버지는 딸의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자 그림 그리는 친구를 찾아가 방도를 묻는다. 그러자 친구가 이렇게 대답한다. ‘한이 깊어야 노래도 애절한 법이라네.’ 그 말을 들은 송이 아버지는 딸에게 부자(附子: 오두의 자근으로 맹렬한 극약으로 사용)를 먹여 눈이 멀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나 자신과 그 장면을 연상할 때가 많다. 내가 교수가 된 것은 처음부터 작정한 일도 아니고 다분히 운명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공부의 길로 들어섰을 때 나는 독하게 살며 내 젊은 날의 한을 풀리라고 생각했다.”

무엇이 그토록 신 교수에게 한이었을까. 그는 세 가지를 얘기했다. 첫째, 소작농의 아들로 서럽게 살았던 소년 시절의 트라우마. 둘째, 고드름으로 허기진 밤을 달래며 잠자리에 들어야 했던 가난과 허약. 셋째, 명문 대학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남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독기. 신 교수는 자신의 신조를 들려줬다. “‘내 평생토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리라’(手不釋卷)던 당태종(唐太宗)의 가르침과 ‘공부는 죽어야 끝난다’(學者歿身已矣)라던 이수광(李睟光)의 가르침 그리고 ‘대학 입시 준비하는 내 자식들보다 일찍 잠들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 약속을 지켰다. 나는 수재도 아니고, 타고난 학자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서생일 뿐이다.”

번역하려면 먼저 한국어에 능통하라

신 교수는 동·서양 최고의 고전 『삼국지』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동시에 완역한 유일한 학자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같은 경우 젊은 시절부터 번역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무영 을유문화사 대표는 기자와 인터뷰(「76년 이어온 ‘법고창신’ 출간 정신…“이젠 책 보완하는 영상도 제작”」, 2021년 12월 27일자)에서 기억에 남는 필자로 신 교수를 언급한 바 있다. ‘노년의 열정과 노고’를 기린 것이다.

신 교수에게 번역이란 무엇일까. 어려움은 없을까. 그는 다섯 가지를 말했다. 첫째, 번역을 외국어 잘하는 사람의 일로 치부하면 안 된다. 번역은 먼저 한국어에 능통해야 한다. 둘째, 번역은 연구도 아니고 창작도 아닌 보조 학문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번역은 주석(註釋), 훈고(訓詁), 의미론, 어원학 등 창작의 요소가 깊다. 일본 문화 토대는 빠르고, 정확하고, 예리한 선구안(選球眼)이 이룬, 번역이라는 종합 과학의 승리다.

셋째, 번역도 연구 실적에 포함되어야 한다. 외국어를 모르는 학자들이 더욱 번역을 우습게 아는 아이러니가 있다. 넷째, 번역은 반드시 주석(註釋)이 필요하다. 원저자가 틀릴 수도 있고 너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주석 없이는 일반 독자들이 이해할 수가 없다. 다섯째, 번역은 완역(完譯)이어야 한다. 원저자는 토씨 하나를 어찌 쓸까 고민했는데, 번역자가 임의로 빼고 더하는 것은 무례이며 건방이다. 신 교수 번역서 40권 가운데 주석 없는 책은 없다. 『삼국지』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같은 고전일 경우에는 번역과 주석에 소요된 시간은 거의 같다.

로마 장군 코리올라누스의 복수와 어머니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은 무엇이고 영웅은 누구일까. 신 교수는 “이 책의 정신은 학자가 아니라 의인의 삶을 그리는 것”이라며 “따라서 용맹, 우국심, 우정, 효도, 장엄한 죽음을 미덕으로 삼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52명의 영웅 재사들 가운데 코리올라누스(Coriolanus)를 가장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였던 코리올라누스는 조국을 위해 피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적들의 모함을 받아 조국의 버림을 받고 추방된다. 그는 적국 볼

스키족을 찾아가 그들을 대신하여 로마를 멸망시켜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병력을 얻어 조국에 복수 전쟁을 일으킨다. 로마의 패망이 목전에 이르렀을 무렵, 한 노파가 어린 손자들을 데리고 그 앞에 나타난다. 코리올라누스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조국의 배신에 복수의 화신이 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조국을 유린하려거든 이 어미의 시체를 밟고 지나가라.’ 그 말을 거역하지 못한 코리올라누스는 복수심을 접고 적국으로 돌아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죗값으로 죽음을 겪는다. 우리에게 조국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대학·교수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바로 ‘인문학’이다. 이 책은 장군·정치인만 등장한다고 결코 군담소설(軍譚小說)은 아니다. 신 교수는 “대(大) 카토(Cato, the Elder)와 소(少) 카토(Cato, the Younger)는 위대한 문인이요 철학자였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위대한 역사가였다”라고 강조했다.

“그들은 호메로스(Homerus)를 포함하여 그리스·로마 신화를 깊이 이해했고, 그리스의 희곡을 암송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사하라의 영웅이었던 패튼(George Patton)이 『일리아스』(Illiad)를 암송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그러면서도 전쟁이 나면 귀족의 사망률이 사병의 사망률보다 높았다. 시라쿠사이에 잡혀 온 그리스의 포로들은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시를 암송하여 포로에서 해방되었다.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의 파피루스 장서가 30만 권이었다. 이집트 문명이 노예를 혹사해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교수가 되겠다는 초심 잃지 않기

신 교수는 대학 사회와 교수의 역할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대학 입시생의 숫자가 고등학교 졸업생 숫자보다 많은 현실에서 답이 무엇인가는 이미 나와 있다”라며 “대학 입시 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생 숫자의 70%로 떨어질 때까지 대학 스스로가 뼈를 깎는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신 교수는 대학 스스로 자문하길 요청했다. “대학은 정부에 보조금을 요구할 만큼 도덕적이고 교육적이었나?”

이런 측면에서 대학의 역할에 대한 주문 역시 의미심장하다. 그는 “대학은 진리 탐구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라며 “대학은 가난하지 않게 사는 법, 더불어 사는 법, 공의롭게 사는 법, 그리고 착하게 살지말고 지혜롭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대학은 만남의 장소”라며 “대학 4년 동안에 의인(義人)을 알아보고 만나는 인연을 주선해 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비대면 시대가 온 것을 그는 안타까워했다.

신 교수는 교수들에게도 한 마디 전했다. 신 교수는 “처음 교수 원서를 제출하고 불전에서, 성당에서, 교회에서, 교당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약속과 서원(誓願)과 ‘저를 교단에 세워주신다면 평생 학문에 뼈를 묻겠다’던 초심을 잊지 말기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한국 역사부터 동서양 영웅전까지 저술·번역...고전 번역의 핵심은 바로 ‘주석’

신복룡 건국대 교수는 최근 『삼국지』(집문당),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유문화사), 『잘못 배운 한국사』(집문당)를 세상에 선보였다.

『삼국지』는 동양에서 정치철학, 전술·전략, 처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전히 읽히는 고전이다. 신 교수는 『삼국지』를 총 5권으로 번역했다. 5권은 도원결의, 삼고초려, 적벽대전, 출사표, 천하통일로 구성됐다. 그는 1천 개가 넘는 주석을 달며 전문을 온전히 옮겼다. 신 교수는 장년 30년에 걸쳐 『삼국지』의 주석을 완성했다. 『삼국지』는 현재 젊은이들에게 “역사의 모든 영웅은 당신이 겪고 있는 지금의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이라고 강조한다.

위대한 건 업적이 아니라 일상의 언행
중화주의 시좌가 가린 남의 글 한국사

신 교수가 『삼국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유비(劉備)가 한때 유표(劉表)에게 의지하며 사는 동안 하릴없이 허벅지에 살만 오르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다는 비육지탄(髀肉之嘆)의 대목을 좋아한다. 그리고 강유(姜維)가 중원 정벌을 꺼리는 중신들을 향하여, ‘인생이 흘러가는 것은 백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빨리 지나간다’(人生如白駒過隙, 인생여백구과극)며 정벌을 재촉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역시 총 5권으로 번역했다. 신 교수는 이 책을 『삼국지』와 마찬가지로 수양서가 아니라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경세서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이렇게 평했다. “플루타르코스가 이 책에서 쓰고자 했던 것은 역사에 명멸한 영웅들의 거대한 서사나 역사가 아니었다. 인간의 삶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위대하고 영웅적인 업적이 아니라 일상의 언행들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의 업적을 나열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사소하고도 인간적인 애증을 얘기하고 있다.”

『잘못 배운 한국사』(집문당)는 20여 년 전 신 교수가 쓴 책을 개정·증보한 책이다. 과연 우리나라 역사는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는 “나를 먼저 포함하여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공부를 게을리했다”라며 “우리나라의 역사는 다섯 가지 이유로 극심하게 굴절됐다”라고 비판했다.

첫째, 우리의 역사 문헌이 우리의 글이 아니라 남의 글인 한자라는 점과 그로 말미암아 사관을 흐리는 백내장과 같은 중화주의 시각이 시좌(視座)를 가렸다는 점이다.

둘째, 역사를 관찬(官纂)이 주도했고, 사찬(私撰)을 이단시하던 역사학의 국유화 과정이 너무 길었다는 점이다.

셋째, 일본 식민지사학에 의한 왜곡과 오염이 집요했고, 부일(附日) 역사학자들이 한국 사학계를 지배했다는 점이다.

넷째, 역사학자들의 좁은 대롱 시각(管見)이 실록만 들여다보며 외래어와 외국의 방법론을 외면했다는 점이다.

다섯째, 해방 이후 역사학자들이 이념에 동원되어 영혼의 노숙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
[ 신문서평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