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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유림 독립운동의 상징 심산 김창숙
서평제목 <신간소개> 심산 김창숙 "유교 지식인의 표본"
신문사 유교신문
게재일자 2018/02/12
관련기사 링크 http://www.cfnews.kr/coding/news.aspx/2/1/9831
<신간소개> 심산 김창숙
"유교 지식인의 표본"
김기승 지음/224쪽/14,000원
손경수 기자 mail mail@cfnews.kr



근현대 인물 연구가 활발한 가운데 유교 지식인으로서 심산 김창숙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한 평전이 경상북도독립기념관 인물총서 열네 번째로 출간되었다.

심산을 다룬 다른 여러 저술들과 비교해 볼 때, 이 책의 미덕은 심산 고유의 사상과 행동에 주목한 것을 들 수 있다.

김창숙은 유림의 일원으로서 민족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유교 지식인이었지만, 유교의 변혁을 추구했던 박은식, 신채호와 같은 혁신적 유교 지식인들과 달리 유교를 일관되게 자신의 신념체계로 견지했다는 것이다.

배성룡과 조소앙 등 근대 인물과 사상 연구에 정진해 온 저자는 심산의 삶과 일화를 꼼꼼하게 직조(織造)해 나감으로써 그가 왜 진정한 유림 독립운동의 상징인가를 논리정연하고도 명쾌하게 형상화하였다.

저자는 심산의 사상과 행동에 성주 지역 한주학파 이진상의 학문을 계승한 아버지 김호림의 가르침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심즉리설을 주장한 한주학파는 서양인들 마음에서도 보편적인 의리를 발견하고자 하면서 서양 문물을 개방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아버지는 너그러운 교육으로 아들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신분제가 해체되어 가는 시대상을 일깨워 주었다. 동학농민운동 전후 아이들을 농민들과 섞여 앉게 한 일화는 심산이 『주역』의 이치를 몸으로 터득하게 된 계기였을 것이다.

이로 볼 때 심산이 대한협회 성주지회 총무로서 구습 혁파와 계급 타파를 역설한 일이나, 중국에서 이념과 정파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방략을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선택하면서 독립운동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심산에게 유학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심산은 한국의 독립을 전 세계에 호소한 「파리장서」를 제출하여 제1차 유림단 사건을 일으켰다. 중국에 망명해 있다가 독립운동 기지 자금 마련을 위해 국내에 몰래 잠입하기도 하였으며, 상하이에서 활동하다 한국인 스스로의 독립운동 역량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임을 깨달아 북경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다.

과단성 있는 실천력의 소유자 심산의 일생은 1896년 항일의병 봉기를 시도했던 아버지의 용단과 겹쳐진다. 김창숙이 나태해질 때마다 곁에서 꾸지람을 서슴지 않았던 어머니 인동장씨도 심산이 평생 대의(大義)에 투신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또한 김호림이 아들 심산의 교육을 부탁한 이승희가 성주 지역 유학자들 통합 운동을 벌인 것도 제자 심산의 강한 실천력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의병 기의가 실패한 원인을 지역사회 공동체적 결속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고 유교를 그 결속의 실천적 가르침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의지는 이후 항일독립운동을 벌일 때나 이념의 차이를 가리지 않고 특정 이념에 대한 경도 없이 민주공화국 건설을 지향해 나가는 방법론의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해방 후 창립된 유도회와 성균관대는 심산의 그러한 정신의 소산이라고 하겠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곽종석이 작성하고 김창숙이 제출한 「파리장서」 내용은 근대적 국민국가 개념에 접근한 것이기는 하나 전통적 군주와 사직(社稷) 개념에서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김창숙은 부모님과 스승 이승희 등 성주 지역 유림의 전통을 한 단계 발전적으로 계승해 유교를 통한 조국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부단히 모색한 화신이자, 치열한 민족정신의 현현이었다.

그의 일생은 한국 민족주의 발전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심산의 거룩한 삶과 투쟁은 한국 근현대 민족주의 발전에 유교가 기여했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유학을 수호하되 근대정신을 아울러 수용하면서 유학의 진정한 발전을 지향한 유림의 바람직한 표상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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