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문 서 평 내 용 보 기

도서명 그림에 부치는 시
서평제목 <8> 신안 김환기 화백 민족 정서와 서구 모더니즘 접목한 한국의 피카소
신문사 광주일보
게재일자 201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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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21일(수) 00:00






“고향 우리집 문간에 나서면 바다 건너 동쪽으로 목포 유달산이 보인다. 목포항에서 백마력 똑딱선을 타고 호수 같은 바다를 건너서 두 시간이면 닿는 섬이다.

그저 꿈같은 섬이요, 꿈 속 같은 고향이다. 겨울이면 소리 없이 함박눈이 쌓이고, 여름이면 한번씩 계절풍이 지나는 그런 섬인데 장광(長廣)이 비슷해서 끝에서 끝까지 하룻길이다.

친구들이 “자네 고향섬이 얼만큼 크냐”고 물으면 “우리 섬에선 축구놀음들은 못한다”고 대답한다. 공을 차면 바다로 떨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섬에는 수천석씩 나는 평야도 굽이굽이 깔려 있고 첩첩산도 겹겹이 들려 있어 열두골 합쳐 쏟아지는 폭포도 있다.“(김환기, 「고향의 봄」, 『그림에 부치는 시』, 지식산업사, 1977)



천사섬이 배출한 현대미술의 거장. 바로 수화(樹話) 김환기를 이르는 말이다. ‘신안 안좌면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라는 말은 가장 명징하게 김환기를 표현하는 수사다.

김환기(1913∼1974)는 신안군 기좌도에서 출생했다. 후일 기좌도는 인근 안창도와 연륙돼 안좌도로 바뀐다. 김환기가 태어나던 무렵의 기좌도는 작은 섬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좌도와 연륙돼 우리나라 섬 가운데 열한 번째로 큰 섬이다. 물론 그의 유년의 기억 속에, 섬은 협소하고 외로운 이미지가 각인돼 있을 터다.

그럼에도 그는 “순하디 순한 마을 안산에는 아름드리 청소이 숨막히도록 총총히 들어차 있고 옛날엔 산삼도 났다지만 지금은 더덕이요 복령, 가을이면 송이버섯이 무더기로 난다”며 “낙랑장송이 울창하게 들어찬 산을 바라보며, 또 그 산속에서 자란 나에게는 고향 생각이란 곧 안산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흔히 목포 앞바다에 점점이 늘어선 4개의 섬(자은, 암태, 안좌, 팔금)을 아트 아일랜드라고 한다. 네 곳은 ‘1004’의 섬 신안이 자랑하는 보석들이다. 그 가운데 김환기의 고향 안좌도는 아트 아일랜드 중에서도 가장 수려하면서도 예술적인 섬이다.

꽃바람이 부는 안좌도는 봄 기운이 완연하다. 이맘때 회자되는 말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은 왔으나 시국이나 상황이 좋지 않아 봄 같지 않다는 말인데, 그럼에도 바다 건너 남녘으로 봄은 줄달음쳐 와 있다. 세상의 번잡과 소음과 수다한 상황과는 다르게 바다는 모든 것을 뛰어넘어 봄을 맞이하고 봄을 포옹하는 것인가 보다.

시퍼런 바다 물빛은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수많은 점들의 그것과 오버랩된다. 그가 보았을 오래전의 바다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을 터다. 어쩌면 뉴욕의 밤하늘을 벗 삼아 화폭에 찍었을 그 수많은 점들은 이곳 파도의 물방울이었는지 모른다. 이역만리 타향의 외로움을 그림으로 승화했을 수화의 절절함이 다가와 눈앞의 바다가 시퍼런 캔버스로 느껴진다.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김환기의 고향에 앞서 남도의 섬들은 그 자체로 작품이다. 예술가는 어디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창작의 세계가 결정되는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다. 한편으로 축복받은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찌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을 타고 난 슬프고도 가없는 존재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예술을 영혼의 작업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안좌도에 당도하면 곳곳에서 김환기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예술의 섬답게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과 벽화는 수화의 작품을 떠올릴 만큼 정겹다.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는다는 지극히 소박한 명제를 이곳에서도 확인하는 것이다.

김환기는 초등학교까지 고향에서 생활했다. 이후 서울로 올라간 후 동경에 유학해 일본대학 미술과를 졸업했다. 대학재학시절인 1930년대 후반 일본화단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 자유전 출품과 아마기화랑에서의 개인전을 통해 신미술 운동에도 참여했다. 해방 이후에는 유영국, 이규상 등과 신사실파를 결성해 모더니즘 운동을 펼쳤다. 또한 서울대, 홍익대 미대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등 교육자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김환기의 시선은 그 너머를 지향했다. 가슴에는 남도와 섬으로 대변되는 한국적인 정서를 품고 있었지만 예술적 심미안은 경계를 넘어 서구에까지 이르렀다.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화한 근현대미술사의 거장이라는 일련의 평가가 따르는 이유다.

“미술평론가들에 따르면 김환기의 예술세계는 초기인 동경시대와 중기인 서울, 파리시대, 그리고 후기인 뉴욕시대로 나뉘어진다. 초기에는 입체파, 구성파의 영향을 거쳐 추상미술에 도달하였으며, 광복 후는 추상적 바탕에 자연적 이미지를 굴절시킨 독특한 화풍을 펼쳐 보였다.”(최성환, 『천사섬 신안, 섬사람 이야기』, CREFUN, 2014)

이 시기에 김환기 화백은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그림을 그린다. 달, 산, 항아리, 학 등 우리의 고유한 정서를 상징하는 소재를 형상화했다. 안좌도의 바람과 파도, 빛과 어둠이, 섬이 환기하는 특유의 아우라가 그의 작품에 웅숭깊게 녹아들었다. 김환기 화백의 그림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환기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뉴욕에 정착한 시기에 탄생했다. 김광석의 시 ‘저녁에’가 모티브가 됐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로 시작되는 시는 순수한 추상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선, 점, 면이 앙상블을 이룬 작품은 뉴욕의 외로운 밤하늘을 화폭 삼아 고향으로 보낸 ‘무언의 편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점으로 형상화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림 속에는 신안의 풍광과 안좌도의 산수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소박하면서도 친근한 모습들이 투영돼 있을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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