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문 서 평 내 용 보 기

도서명 노거수전
서평제목 "작품값은 100만원… 나 죽거든 부조금으로 내도 돼"
신문사 문화일보
게재일자 2018/06/12
관련기사 링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61201032618067001
문화일보 26면 TOP기사



붓을 든 국문학석학 조동일 교수 개인전


“천대받지 않을만큼 보증금만
그림은 해몽보다 보기 좋아야”
‘누구나 쉽게’ 대중적 미술철학

인사동 조형갤러리 100점 전시
시련에도 정정해지는 老巨樹
작가의 풍경화 속 핵심 소재



“그림을 그냥 주면 그림이 천대받을 수 있죠. 그렇다고 돈 많이 받는 것도 적당치 않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손상하지 말고 잘 간직하라는 보증금 조로 100만 원을 받는 것이죠. 많은 사람에게 그림을 나눠주는 것이 내 바람이기 때문에 친분이 있는 모든 분에게 후불제로 그림을 드릴 계획입니다. 특히 대학원생들에게는 장기후불제인데, 나를 다시 만날 수 없게 됐다는 소리가 들리면 그림값을 들고 빈소에 와서 부조금 대신 내도 된다고 말해줄 생각입니다. ”


조동일(79) 서울대 명예교수가 오는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조형갤러리(02-733-4792)에서 개인전을 연다. 경기 군포시의 자택 겸 화실에서 만난 조 명예교수는 그림값을 100만 원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 그렇게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그가 직접 그린 100점의 작품이 내걸려 있다. ‘老巨樹展’(노거수전, 지식산업사)이란 타이틀로 얼마 전 내놓은 화집에 실린 그림들이다. 화집에 실린 그림이 300점이기 때문에 그림이 팔려나간 빈자리는 나머지 화집 속 그림들로 채워진다. 이번 전시에는 모두 액자 표구가 안 된 작품들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유리 액자가 자칫 그림 감상을 방해할 수 있어 일부러 표구를 안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시장에 서면 수백 그루의 노거수가 생생하게 살아 숲의 향기로 관람객을 압도하는 듯하다.


조 명예교수는 국문학 연구와 문학비평에서 독보적 업적을 이룬 학자다. 1968년 계명대 교수를 시작으로 영남대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을 거쳐 2004년 서울대에서 정년 퇴임했다. 특히 조 명예교수의 저서인 ‘한국문학통사’는 우리 문학계에서 불멸의 명저로 통한다. 그러나 조 명예교수의 원래 꿈은 화가였다. 대구 경북고 2학년 때 친구 둘과 전시회도 열었으나 부모의 반대로 학자의 길을 걸었다

“교수 시절에도 그림을 간혹 그렸지만 너무 빠져드는 것 같아 자제했어요. 그리고 퇴직 후 본격적으로 붓을 잡기 시작했죠. 2004년 서울대 퇴직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2009년 계명대를 퇴직하고서는 그림에 더 많은 시간을 바치고 있습니다. 문학창작과 그림을 비교하면 문학은 내 마음속으로 바깥의 것을 잡아 오는 것이고, 그림은 바깥의 것으로 내 마음을 씻어내는 일입니다. 그림은 마음속 찌꺼기를 다 씻어줘요. 계속 괴로움이 따라붙는 문학 창작과는 다르죠.”


우리 근현대 화가 중 겸재 정선과 소정 변관식을 가장 존경하다는 그는 애초에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그리고 역시 산수화를 즐겨 그리다가 올초 세상을 뜬 부인 허정 씨와 2010년 부부합동전을 열기도 했다. 조 명예교수는 5년 전부터 수령이 오래된 거목인 ‘노거수’를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다. “나이 먹을수록 모든 시련을 겪으면서도 더욱 정정해지는 것이 노거수”라며 “사람도 노거수처럼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린다고 그는 설명했다.


“최근 그림이 이상하게 되는 것에 대해 은근히 반발심이 들어요. 누구나 봐도 좋은 그림이 좋은 그림입니다. 그러나 요즘 그림은 자연을 떠나 있어요. 불행한 일이죠. 바깥의 것을 가지고 내 마음을 씻어내야 하는데, 추상화는 바깥의 것 없이 자기 마음속에서 헤매기만 합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어려운 작품보다는 ‘즐거운 꿈’ 그 자체를 그려 보여주겠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철학 같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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