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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장미와 이카루스의 비밀
서평제목 [어린왕자]의 비밀을 아시나요
신문사 시사IN
게재일자 2018/10/13
관련기사 링크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2934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어린 왕자>(열린책들, 2015) 권말에 쓴 옮긴이 해설에서 “현재 한국에는 100여 종이 넘는 <어린 왕자>가 출간”되었다면서, 그 자신도 “한국어 결정판 <어린 왕자>를 상재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그 대열에 뛰어들었으나, 곧 “번역에 결정판 같은 것은 없다”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는 고백을 했다. 어쩌다 새로운 번역본을 내면서 ‘결정본’이니 ‘정본’이니 하는 수작을 내거는 출판사들이 있는데, 그러는 작자들은 다 사기꾼이다. 저런 발상은 국어도 텍스트 해석도 모두 고정되어 있다는 무모한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어린 왕자는 보아뱀 속에 있는 코끼리를 단번에 알아맞혔다.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조종사를 만나기 전 이미 상당한 수준의 득도를 한 ‘어린 성자’다. 하지만 그에게도 맹한 구석이 있다. 그는 보아뱀 속의 코끼리는 알아차렸지만, 정작 자기 별(소행성 B612)에 있는 장미꽃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 주위에는 고작 한 번 깨달은 것으로 일평생을 우려먹으려는 사람이 있다. 속인들은 단 한 번의 각오로 깨달음을 완성하는 선사들의 세계를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선사들은 그 깨달음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정진한다. 한 번의 깨달음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정도가 내가 평소 생각해온 <어린 왕자>에 대한 소감이다.

야스토미 아유미의 <누가 어린 왕자를 죽였는가-사랑이라는 이름의 학대, 모럴 해러스먼트> (민들레, 2018)는 생텍쥐페리의 동화를 끔찍한 방법으로 새로 해석한다. 지은이가 <어린 왕자>를 해부하는 데 사용한 도구는 ‘모럴 해러스먼트(moral harassment)’라는 개념이다. 그는 이 개념을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마리 프랑스 이리고옌이 1998년에 출간한 <보이지 않는 도착적 폭력>(북프렌즈, 2006)에서 발견하고, 어린 왕자를 모럴 해러스먼트의 피해자라는 색다른 주장을 하게 되었다.

이리고옌은 ‘정서적 학대’로 번역되는 모럴 해러스먼트를 통해 특히 부모와 자녀 사이에 벌어지는 지배와 종속 기제를 폭로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지배와 조종은 사랑이라는 은폐물에 가려져 있어서 정서적 학대의 정체를 좀체 간파하기 힘들다. 오히려 오랫동안 모럴 해러스먼트에 길든 피해자는 ‘나는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다’ ‘잘못한 건 난데…’라면서 가해자의 정서적 학대를 부정하고 나선다. 피해자가 자신이 입은 피해를 인식하지 못하고 가해자를 존경하게 되는 도착은 모럴 해러스먼트의 필수 조건이다.

총 27장으로 이루어진 <어린 왕자>에서 자신의 별을 떠난 어린 왕자가 지구에 당도하게 되는 것은 16장까지이며, 이 작품의 진정한 시작은 17장부터다. 사막에서 만난 뱀이 “여기는 왜 왔니?”라고 묻자, 어린 왕자는 “꽃이랑 사이가 틀어져서”라고 대답한다. 많은 해석자들은 장미와 사이가 틀어진 어린 왕자가 지구를 포함한 일곱 개의 별을 유랑한 끝에, 장미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다시 자신의 별로 되돌아가는 성장담으로 이 작품을 해석해왔다. 이런 귀환에는 불길한 것이 있다.

어린 왕자는 하루에 마흔네 번이나 노을을 쫓아다니며 보아야 할 정도로 우울했다. 어쩌면 그 행위는 벗어날 수 없는 학대로부터 도피하려는 강박 증세였다고도 할 수 있다. 어린 왕자의 우울과 강박의 핵심에 장미가 있다. 오만하고 허영심 많은 장미는 어린 왕자에게 자신은 연약하며 바람과 호랑이가 무섭다고 말한다(그러나 소행성 B612에 호랑이 따위는 없었다). 그러면서 어린 왕자에게 가책을 느끼게 할 의도로 항상 기침을 했다. 까다로운 장미의 여러 요구에 소진된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을 떠났다.

길들인다는 것은 사막에서 만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인다’라는 낱말을 가르쳐주면서,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과 동의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네가 길들인 것에 책임감을 느껴야 해.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해”라고 덧붙인다. 지은이는 여기에 작중의 여우와 이 작품을 쓴 생텍쥐페리의 기만이 있다고 말한다. 상식적으로 길들인다는 건 일방적인 것이고, 관계 맺음은 서로 대등한 사이를 뜻한다.

어린 왕자는 장미의 일방적 길들임에 혹사당한 끝에 별을 뛰쳐나왔는데, 여우는 그것을 관계 맺음으로 등치함으로써 가해자와 피해자의 비대칭성을 지워버렸다. 이런 기만은 어린 왕자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었고, 그 결과 자신을 벌하기 위해 뱀에게 물리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리고옌은 말한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폭력은 자식들로 하여금 특별한 방어 수단을 강구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상태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특화된다. 부모의 도착적이고 폭력적인 언사는 자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아이들은 일정의 세뇌를 당하게 된다. 그 결과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부당한 취급을 받아도 더 이상 불평을 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점점 더 위축되는 것이 보통이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살인 행각에 동조했던 그의 딸과 자살한 부인은 가정 내에서 벌어진 모럴 해러스먼트의 희생자일 가능성이 높다. 모럴 해러스먼트는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직장 내 성희롱에서부터 상하 관계가 성립된 모든 관계에서 벌어질 수 있으며, 여우와 같은 2차 가해자는 대개 피해자보다 먼저 정서적 학대를 당한 희생자일 수 있다.

정신분석 틀을 사용한 작품 해석은 어쩔 수 없이 작가에 대한 정신분석으로 끌려 들어간다. 카를 구스타프 융에 기울어진 분석심리학자 오이겐 드레버만은 <장미와 이카루스의 비밀>(지식산업사, 1998)에서 <어린 왕자>는 네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공생적 모자관계를 유지한 생텍쥐페리의 양가감정이 형상화된 작품이라고 말한다. <어린 왕자>는 “어머니한테서 도망간다는 중심 주제가 그 바닥에 깔려 있는” 작품이자, 생텍쥐페리의 “어린 시절의 문학적 재구성”이다. 소행성 B612에서 탈출한 어린 왕자에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으로 어머니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던 생텍쥐페리의 자아가 투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어린 왕자> 최대의 비밀을 말할 차례다. 어린 왕자는 조종사가 그린 모자 그림을 보고서 단박에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많은 독자들은 ‘어른에게 없는 상상력과 순수함’이 어린 왕자에게 있었기 때문에 모자의 비밀을 알았던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야스토미 아유미는 어린 왕자가 피해자였기 때문에 보아뱀 속의 코끼리를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서적 학대에 길들여진 어린 왕자는 보아뱀의 뱃속을 자궁으로 착각하고, 자신이 버리고 온 장미의 별로 돌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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