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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고구려 고분벽화에 담긴 철학적 세계관
서평제목	저자가 말하다
신문사	대학지성 In&Out
게재일자	2020/04/19
관련기사 링크	http://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0

저자가 말하다_ 『고구려 고분벽화에 담긴 철학적 세계관: 한국고대철학의 재발견』 (윤병렬 지음, 지식산업사, 2020.03)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결코 어떤 단순한 회화가 아니어서, 이 벽화를 보면 저절로 “아! 고구려”를 외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뭔가 철학적으로 규명하긴 어려워도 우리를 경탄케 하고 압도하며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우리는 주로 고분벽화의 역사(학)적 의미와 회화적 의미를 규명하는 데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여기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그 정신문화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읽어내어야 한다.

우선 필자는 약 1500년 이상이나 고분벽화에 대한 문화망각현상에 대해 개탄한다. 너무나 오랫동안 문화단절이 있었기에, 고분벽화의 존재의미를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전쟁이 잦았고, 고려 때에는 불교가 지배하던 시대여서 부처의 가르침이나 극락이 주요 관건이었으며, 또 유교가 지배하던 조선에는 현실정치나 윤리가 주요 이슈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문화망각 내지는 문화방치에 대한 후손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고분벽화의 위상은 결코 돈황학이나 간다라학에 뒤떨어질 수 없다.

우리에게 한국의 고대철학이라고 하면 중국에서 유입된 불교와 유교 및 도교가 ― 물론 이를 받아들여 재생산하고 재창조하여 학문의 꽃을 피운 것도 큰 의미를 갖고 있지만 ― 중심축을 이룬다. 그러나 문자로 전승되지 않은 것에서도 얼마든지 철학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선사시대 고인돌의 성좌에 새겨진 한국의 고대철학』(2019년 학술원 우수도서)에서 성혈고인돌에 새겨진 성좌도 해석을 통해 우리의 고대철학에로의 접근을 시도한 적이 있다.

어떤 역사적 전승을 ―그것이 엄청난 역사적인 사실과 내역을 갖고 있을지라도 ― 역사서술이나 자료설명 및 유물제시의 차원에만 머물고 있다면, 저 위대한 역사적 전승을 철학의 대열에 올릴 수 없다. 그 의미와 내용, 그 생명력과 혼 그리고 그 가치와 비밀― 이 모든 것을 철학이라고 하자 ― 을 펼쳐놓아야 만이 생명이 깃든 정신문화의 지평을 열 수 있는 것이다.

▲ 덕흥리 고분(김일권 교수에 의한 모사도)사신도(동청룡, 서백호, 북현무, 남주작)와 사숙도(일월남북두)는 온누리를 수호하고 보살피는 철학적세계관이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고대 한국인의 정신적 원형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거기엔 고대 한민족의 예술혼과 정신문화며 한국 고대철학의 의미가 농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드러난 철학적 의미를 추적하고 이를 세계정신사적 지평 위로 올리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우리 고유의 문화적 텍스트를 방치하지 말고 세계철학적 시각에서 읽어내는 것은 긴급한 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고분벽화의 역사적 회화적 차원을 넘어 그 표현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밝히는 일은 우리에게도 긴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더욱이 고구려의 고분벽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됨에 따라 인류에게 공감이 되는 정신문화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밝혀내어야 한다.

벽화가 그려진 고분은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 만큼 아주 훌륭한 독특성을 갖고 있다. 세계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동굴벽화나 무덤벽화는 동물의 그림이거나 해독이 불가능한 문자와 기호가 대부분이며, 대체로 알 수 없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그림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프랑스 베제르 계곡의 동굴벽화(라스코의 석기시대)는 생동감은 있지만, 단순한 동물들에 대한 그림이며, 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노르웨이 알타의 바위그림도 사냥꾼과 어부무리들을 묘사한 그림이 대부분이고 색채도 단순한 주황색이 주종을 이룬다. 또 유럽의 구석기 문화의 말기인 마들렌(magdalenian) 시기에 스페인과 남프랑스의 수많은 동굴에 그려진 암벽화들도 대부분 동물 그림이다. 이러한 그림들에서 비록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큰 가치는 발견할 수 있지만, 어떤 분명하고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주워 담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분명한 문화적․사상적 메시지를 갖고 있으며, 그 예술적이고 종교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심오하고 신비롭게 그려내고 있다.

고분벽화는 그야말로 벽화인 만큼 문자로 전승되지 않은 편이어서, 어떤 엄격한 논리나 이론적 주장이며 명제의 형태로 그 정신적 내용이 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벽화로 표현된 것을 표현인문학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그 접근방법론으로 현상학자 롬바흐(H. Rombach)와, 셸링과 하이데거의 예술철학 및 월시(W.H. Walsh)의 형이상학으로부터 길 안내를 받았다. 예술을 곧 철학의 본질적인 것을 드러내는 유기체로 본 셸링과 예술을 “존재의 진리”가 발현하는 장(場)으로 파악한 하이데거는 벽화를 다시 보게 한다. 특히 ‘흔적’에서도 “정신의 소인이 찍혀 있는 것”으로 읽어내는 롬바흐는 그림과 철학과의 관련여부를 세심히 검토하고서, 이를 “그림철학”으로 승화시켜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고 있는데, 그의 “그림철학”은 우리의 고분벽화 해석에도 좋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는 예술적인 그림을 위시하여 암벽화와 동굴벽화며 신화와 전설, 동화와 문학작품, 시(詩)와 의례에 현존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 철학적 분석을 시도하고서, 이를 통해 “그림철학”의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롬바흐에 의하면 그림이란 전통적으로 이해해온 단순한 모사(Abbild)의 차원이 아니라, “정신의 소인이 찍혀있는 것”, 총체적인 것의 생생한 임재(Realpräsenz des Ganzen), 혹은 총체적인 것의 직접적인 현현(Präsentation)으로서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있는 정신이 녹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그렇지만 지나친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해독되고 이해될 수 있는 명쾌한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범상치 않는 철학적 테마가 그려져 있다. 생활세계의 철학, 축제문화, 고향과 귀향의 철학, 죽음의 철학,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 신선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초월자에 관한 철학, 원시도교의 철학, 문명창조론, 천문사상, 우주론(불멸의 사방-놀이), 이원론의 극복, 융합변증법, 불멸론, 보살핌의 철학 등등 세계철학사에서 굵직하고 심오하게 다뤄지는 테마들인 것이다. 고분벽화에 그려진, 철학과 종교의 피할 수 없는 과제(칸트)인 인간의 불멸성과 자유며 초월자의 존재에 관한 성찰은 한국 고대철학의 깊이를 재조명하게 한다. ‘불멸성’은 플라톤과 칸트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에게서 “철학의 근본과제”로 받아들여진다. 고분벽화에는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다양한 세계와 철학적 세계관이 그려져 있다.

윤병렬 홍익대·철학

독일 본(Bonn)대학교 학·석·박사. 한국하이데거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홍익대학교 교양과 교수 역임, 현재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철학의 센세이션』, 『정보해석학의 전망』, 『노자에서 데리다까지』(공저), 『감동철학 우리 이야기 속에 숨다』, 『한국 해학의 예술과 철학』, 『철학적 인문학의 길』, 『배낭 속에 담아온 철학자의 사유여행』, 『선사시대 고인돌의 성좌에 새겨진 한국의 고대철학 ― 한국고대철학의 재발견』 등 다수가 있다.

출처 : 대학지성 In&Out(http://www.uni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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