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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서평제목	시민의식인가 대등의식인가
신문사	대학지성 In&Out
게재일자	2020/04/26
관련기사 링크	http://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07

시민의식인가 대등의식인가

 조동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시니어 칼럼] 대등사회론 2

유럽 각국이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에 대응하는 한국의 방식이 뛰어나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해도, 시민의식의 성숙을 따를 수 없다고 한다. 시민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말이다. 이에 대해 평소부터 많은 불만이 있었다.

시민이란 무슨 말인가? 시민은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다. 도시의 저자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 귀족에 대항하는 역량을 지닌 시민계급이 되었다. 시민계급이 귀족을 대신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해 근대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시민이 주도하는 시민사회가 발전 단계에 들어서자, 그 주역이 존경을 받게 되었다. 시민은 정신적 품격과 도덕적 책임의식을 모범이 되게 갖추었다고 평가된다. 시민의식이라는 것은 이런 의미의 시민이 지닌 훌륭한 의식이다. 법을 잘 지키고, 공익을 존중하고, 봉사를 즐겨 하는 것을 성숙된 시민의식이라고 한다.

한국이 유럽 각국보다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에 더 잘 대응하는 것은 이런 의미의 시민의식이 더욱 성숙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시민사회의 발전에서 유럽 각국이 앞서고 한국이 뒤떨어졌는데, 시민의식의 성숙에서는 한국이 앞서고 유럽 각국이 뒤떨어져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한국이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에 더 잘 대응하는 이유를 시민의식의 성숙에서 찾는 것은 잘못된 진단이므로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사회는 어떤 점이 특별한가? 나는 말한다. 아무리 모자라는 사람이라도 자기 나름대로 창조주권을 경쟁적으로 발현해, 사회 협동이 더 잘 되도록 하는 데 참여하려고 한다. 창조주권이란 창조하는 주체로서 누구나 지닌 능력이고 권리이다. 각자의 창조주권을 사회적 협동을 위해 발현하는 데 한국인은 남다른 열의가 있다.

이것은 시민의식이 아니다. 도시와 거리가 먼 산촌에 사는 사람들이 더 절감하고 있으므로, 시민의식이라고 할 수 없다. 조상 대대로 이어온 의식이고 요즈음은 오히려 조금 위태로워졌으므로, 근대 시민의식이라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시민의식 이전의 민중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아무리 모자라는 사람이라도 창조주권을 경쟁적으로 발현해 사회적 협동이 더 잘 되도록 하려는 것은 민중의식의 발로이다.

이것을 민중의식이라고만 하면 막연한 논의에 머무르므로, 나는 대등의식이라고 다시 규정하고 시비를 분명하게 가리려고 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이론에 차등론ㆍ평등론ㆍ대등론이 있다고 하고 이 셋을 비교해 평가해온 작업을 확장해서 말한다. 차등론이 아직 드센 곳이나, 차등론을 평등론으로 극복하려고 하는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감퇴된 대등의식을, 한국인은 다른 어느 곳보다 더 잘 보존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에 일치단결해 대응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 납득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여긴다.

준법정신이 으뜸이라고 자부해온 독일인이 한국인의 준법정신이 자기네보다 앞서서 사태 수습을 잘 한다고 여기고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한국인이 실정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의식하고 언행을 조심하는 것은 아니다. 남들과 공유하는 민중의 공동체를 소중하게 여기고 함께 돌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여길 따름이다. 이렇게 사는 이유가 준법정신 준수라고 하는 것은 천연을 인공이라고 하는 오해이다.

지금까지 말한 대등의식을 한국인만 지닌 민족성이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누구나 지닌 의식을 장애 요인이 적어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을 따름이다. 과연 그런가? 14세기 아랍의 역사가 이븐 칼둔(Ibn Khaldun)을 만나보면, 사리 판단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

이븐 칼둔은 심오한 역사철학을 갖추고 역사 이해의 범위를 넓혀 세계사 서술을 처음 시도하면서, 역사 발전의 동력은 무엇인지 찾아냈다. 그것이 ‘아사비야’(asabiya)라고 했다. ‘아사비야’는 혈연적인 동질성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지닌 창조적인 의지를 뜻하고, ‘공동의 의지’라고 번역할 수 있다. ‘아사비야’가 경쟁자들보다 더욱 치열한 집단이 불리한 위치를 극복하고 역사 창조를 선도하는 커다란 과업을 수행했다고 했다.

나는 이븐 칼둔이 말한 ‘아사비아’를 ‘대등의식’이라고 다시 규정하고, 협력과 경쟁의 관계에 관한 새로운 논의를 보탠다. 공동체의 유대를 다지고 협력을 더 잘해 대외적인 경쟁력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상하의 구분 없이 누구나 자기의 창조주권을 경쟁적으로 발현하는 의식이 대등의식이다. 이런 사회가 대등사회이다. 한국사회는 대등사회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인은 인류문명의 소중한 자산인 ‘아사비아’ 또는 대등의식을 손상이 덜 되게 이어오면서 그 기반 위에다 둘을 더 보탰다. 하나는 현대문명의 자랑인 과학기술의 발달이다. 또 하나는 효율적인 행정력이다. 그래서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을 제압할 수 있는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결과만 알고 깊은 내막은 모르면 안 된다고 여기고 이 글을 쓴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등의식은 있으나 과학기술이 모자라는 곳은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면 된다. 과학기술은 갖추었으나 대등의식이 손상된 쪽은 손상을 회복하기 어려워 진통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시민의식이니 준법정신이니 하는 것을 내세우기나 하면 빗나가서 헤맨다.

조동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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